"엄마가 돌아왔다" 신세계 위기 자초한 정용진 부회장, 이명희 회장이 '소방수'될까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돌아왔다.

이 회장은 지난 20일 단행된 정기 인사에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그룹을 보다 못해 ‘인적쇄신’ 칼을 빼 들었다. 그간 아들 '정용진 부회장의 사람들'로 중용됐던 경영진을 포함해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40%가 전격 교체됐다. 이 회장은 경영권을 각각 아들과 딸인 정 부회장(이마트 부문), 정유경 총괄사장(백화점 부문)에게 넘기며 한발짝 물러나 있었으나 최근 가중된 재무부담과 수익성 악화로 ‘신세계 위기론’이 현실화되자 결국 전면에 나섰다. 이 회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유통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기간 오히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수조원의 실탄을 쏟아부으며 그룹의 위기를 자초한 정 부회장에 대한 '소방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예년 보다 약 한달 빨리 진행된 이번 인사를 계기로 본격적인 이명희식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의 새 수장으로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를 간택했다. 한 대표와 함께 김홍극 신세계까 대표가 공동 대표로 이마트 경영을 책임진다. '정용진의 남자'로 불려온 컨설턴트 출신 강희석 대표는 4년 만에 물러났다. 백화점 부문인 신세계 대표에는 박주형 신세계센트럴시티 대표가 선임됐다.

특히 그룹 주축인 이마트 향방을 책임지게 된 신임 대표의 어깨가 무겁다. 이마트는 유통 부문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21년부터 SCK컴퍼니(옛 스타벅스코리아) 추가 지분(4860억원), 지마켓코리아(3조6000억원), 신세계야구단(1000억원), 패션 플랫폼 W컨셉(2616억원),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3000억원) 등의 인수를 위해 4조5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했으나 계열사 간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며 재무 상황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마트 재무건전성 악화 추이(그래픽=박진화 기자)

M&A 전인 2020년 3조3087억원이던 이마트 차입금은 이듬해인 2021년 6조6835억원으로 급증하더니 이후 지난해 7조3472억원, 올해 상반기에는 7조8087억원에 이르며 지속 증가세를 보였다. 이 기간 부채총계 역시 20년 말 11조8438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9조4892억원으로 3년 만에 7조6454억원 상승했다. 부채비율은 112.84%(2020년)에서 143.57%(2023년 상반기)까지 치솟으며 재무 건전성에 흠집이 났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회장이 '재무통'으로 분류되는 한 신임 대표에게 이마트를 맡겼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조선호텔앤리조트 수장 시절 흑자전환을 비롯해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진두지휘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실적 반등이 절실한 그룹의 의지를가 엿보이는 인사"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의 불안정해진 재무구조와 이로 인해 악화 일로를 걷던 수익성은 이 회장이 철저한 성과 중심의 인적쇄신을 요구한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그룹의 미래를 우려한 이 회장의 이번 조치 앞에선 아들 정 부회장으로서도 마땅히 목소리를 낼 수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이 오랜 세월 두터운 신임을 보내온 최측근 강희석 이마트 대표가 임기를 3년 남기고 경질된 것은 물론, 사실상 재무구조 악화의 장본인으로 정 부회장이 지목받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들의 인수 전략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엄마가 참다못해 나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사의 높아진 재무부담은 자연스레 수익성과도 직결되며 '위기론'을 촉발했다. 최근 3년간 이마트가 받아든 성적표는 철옹성처럼 단단했던 '유통 공룡'의 포지션이 흔들릴 만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이마트의 영업이익은 지난 2021년을 마지막으로 지속 하락세다. 2021년 연결기준 3168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1357억원으로 57.2% 감소했고, 급기야 올해 상반기에는 394억원 적자를 냈다. 특히 상반기의 경우 영업이익은 물론 매출(14조4065억원) 마저 신흥 공룡 쿠팡(15조739억원)에게 1등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쇼핑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에도 이마트의 온라인 사업 실적은 부진하다. SSG닷컴의 경우 2020년 473억원 수준이던 영업손실이 2021년 1079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더니, 지난해 1112억원으로 지속 불어났다. 3조 6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지마켓 역시 신세계그룹에 인수되기 직전인 2021년 43억원 흑자를 거뒀지만, 인수 후인 2022년부터 매 분기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지마켓은 지난해 655억원, 올해 상반기 22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재계 안팎에선 흔들리는 그룹이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은 여전히 이마트와 신세계의 지분 10%씩을 쥔 대주주이자 그룹 총수기 때문에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은 계속해서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또 다른 신세계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투자했다면 이제는 경영 효율을 최우선으로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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