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 美 반독점법 벌금만 1.6조…“초일류 삼성, 그동안 뭐했나”

천문학적 벌금에 민사소송, 브랜드이미지 타격 등 부작용…“트럼프 집권 땐 상황 더 심각”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그동안 미국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내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된 벌금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삼성전자 위기론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 실적을 갉아먹는 법적인 리스크부터 차근차근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20년 동안 낸 반독점법 관련 벌금만 1조6000억원…민사소송에 브랜드 이미지 타격도 심각

지난주 3분기 실적 발표와 동시에 전영현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임원진이 최초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3분기 실적이 예상치보다 훨씬 밑돌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대비 매출은 6.66%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12.84%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증권가 전망치(10조7717억원)보다 약 15% 밑도는 어닝쇼크 수준이다. 이로 인해 주가도 5만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각종 악재가 겹치고 있다.

여론 안팎에선 삼성전자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위기 원인을 찾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조직분위기, 사업체질, 리더십 부재 등 다양한 원인이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던 사안들도 위기의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 중에는 미국의 ‘반독점 법에 대한 안일한 대응’도 포함돼 있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누적 벌금이 천문학적 수준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문제인식부터 대응방식까지 ‘총체적 난국’이라는 평가와 함께 ‘삼성전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국의 반 독점법은 특정 기업이 관련 시장에 독과점적인 지위를 행사할 경우 제재를 가해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한 법이다. 제도적 특성상 구글, 애플, 삼성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해당 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삼성전자도 미국에 진출한 이후 지금까지 해당 법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기업의 위반 사안을 추적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바이올레이션 트레커(Violation Tracker)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미국 정부에 총 11억9520만9182달러(한화 약 1조6300억원)의 벌금을 냈다. 이 중 11억8786만2242달러(약 1조6200억원)는 반독점법 관련 벌금이었다. 벌금 대부분이 반독점법 위반 관련 벌금인 것이다.

삼성전자와 반독점법과의 악연은 2005년 미국 법무부가 반도체 가격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3억달러(약 4089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시작으로 무려 20년이나 지속돼 왔다. 이후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반독점법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 받은 사례는 12회에 달했다. 반독점법 위반을 문제 삼는 주체는 미국 정부부터 소비자 단체까지 다양했다.

▲ 미국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하면 과징금에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 타격과 심각할 경우 보이콧 등 시위까지 직면할 수 있다. 사진은 독점기업 비판 시위에 나선 미국의 한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MorningSide Center]

문제는 반독점법 위반이 결정되면 단순히 벌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반독점법을 위반하면 보통 부가적인 민사소송도 함께 휘말리게 된다. 제품의 직접소비자와 간접소비자, 제품이 판매된 주(州), 해외소비자 모두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독점 행위가 적발되면 몇 년간 송사에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 이유다. 소송과 관련된 각종 보도가 쏟아지면서 브랜드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삼성전자 반독점법 리스크는 현재진행형…“트럼프 집권 시 기업길들이기 카드 활용 가능성”

삼성전자의 반독점법 리스크는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전에도 포트나이트 게임을 개발한 에픽게임스가 삼성전자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 법원에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 에픽게임스는 삼성전자 제품 사용자가 게임을 다운로드할 때 ‘자동 차단기(오토 블락커)’가 작동한다며 삼성전자가 제3자로부터 애플리케이션과 게임을 받는 것을 어렵게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에픽게임즈는 소장을 통해 “우리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에픽게임스 스토어를 설치하려던 사용자의 50%가 마찰로 설치 전 포기하는 것을 보았다”고 적시했다. 이어 “자체 스토어를 열기 한 달 전 삼성전자가 갑자기 차동 차단 기능을 ‘기본 활성’으로 변경했다”고도 주장했다.

▲ 삼성전자는 최근에도 에픽게임즈에게 반독점법관련 고소를 당했다. 사진은 기자회견중인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가. [사진=뉴시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에픽게임스의 주장과 달리 삼성전자는 시장 경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소비자 선택과 그 작동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며 “기기에 통합된 기능은 보안·개인정보 보호 등 핵심 원칙에 따라 설계됐으며 사용자는 언제든 오토 블로커를 비활성화 할 수 있다” 해명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 반독점법 위반으로 300억달러의 벌금을 납부한 이후 준법 강령을 제정하고 직원 교육을 시키는 등을 시행해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독점법 감시 및 규제가 더욱 계속해서 강해지는 만큼 삼성전자의 태도 변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확실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 규제당국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기업 견제할 때 가장 쉽게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반독점법인데 기업 규모가 클수록 위반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트럼프처럼 자국 우선주의가 강한 인물이 정권을 잡으면 기업 길들이기용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미국은 반독점법에 대한 적발 능력과 제재 수준을 매년 강화하고 있다”며 “해외 기업의 경우는 기업의 소속 국가의 관계부처와 협조하는 방식으로 조사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추세에 맞춰 국내 기업들도 반독점법 대응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독점을 인정한 것을 보면 반독점법은 특별한 기준이 있다기 보다는 사실상 기업을 길들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삼성전자가 자국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증명하고 미국 정부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반독점법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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