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이자 여행작가로서의 삶이란? 배나영 여행작가 인터뷰
브릭스 매거진에서는 배나영 작가를 만나 어떻게 여행작가가 됐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는 물론, 취재 노하우와 가이드북 집필 과정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동남아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 여행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배나영 작가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Q. 여행 작가가 되기 전, 자유기고가로 활동을 하셨습니다.
7년 이상의 경력 단절이 있었어요. 아무 경력도 인정을 못 받는 상황에서 할 일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다가 2010년 말에 자유기고가 과정 아카데미에 들어갔어요. 할 수 있겠다 싶은 일이 글쓰기밖에 없었어요. 신문방송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블로그 초창기 시절부터 꽤 열심히 글을 썼고, 꾸준히 일기도 썼거든요.
아카데미 과정을 마친 뒤 프리랜서 기고가를 모집한다는 온갖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어요. 맨땅에 헤딩하듯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어요. 하나씩 하나씩 원고 청탁이 오기 시작하고, 천천히 일이 늘어났어요.
Q. 의뢰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나요?
일단 저에게 충분히 인풋을 주기 위해 매일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 출근했어요. 1년 동안 365권의 책을 읽자고 다짐했어요. 그 결심을 지켰기에 경력 단절의 기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빠르게 사회화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원고 의뢰는 주로 기업 사보에서 와요. 원고만 쓸 때도 있지만, 사보를 많이 펴내던 시절에는 아예 사보 전체의 기획을 맡기도 했어요. 기업 사보에는 매달 자기계발의 내용이 들어가요. 그래서 북칼럼을 쓰고, 자기계발서를 요약하고, CEO를 위한 조언, 명사 인터뷰도 정리했어요. 매일 도서관 서가를 탈탈 털었지요.
Q. 그러다가 여행 작가로 방향을 바꾸신 계기가 있나요?
아침에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도시락을 먹고 저녁까지 책 읽다가 글 쓰다가 하는 게 일과였어요. 그렇게 계속 틀어박혀 있다 보니까 너무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획안에 여행 꼭지들을 하나둘 넣기 시작했는데, 여행 기사를 쓰다 보니 사진을 더 배워야 할 것 같은 거예요.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여행작가 아카데미에 등록했어요. 유연태 교수님, 윤광준 선생님을 비롯해 원재훈 작가님,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등 매주 다른 선생님에게 수학하며 여행 글쓰기와 사진찍기를 배웠어요. 그렇게 여행 원고를 쓰는 비중을 늘려 나갔지요.
Q. 여행 글도 자유기고로 먼저 시작하신 건가요?
저는 제 블로그를 클라이언트들이 제일 많이 보는 블로그라고 소개해요. 원고료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의뢰를 받으면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요, 블로그는 저의 포트폴리오 같은 거지요. 본격적으로 여행 분야 글을 쓰게 된 건 티웨이항공 기내지 의뢰를 받으면서부터예요. 자유기고 형식이었지요. 제일 처음 갔던 곳이 방콕이었을 거예요. 티웨이 취항 지역이 중국, 일본, 동남아였는데, 저는 일본, 중국보다 동남아 쪽이 좋았어요. 정말 즐겁고 재밌게 첫 번째 출장을 다녀왔고, 다음 해부터는 고정으로 일을 맡게 되었어요. 매달 제가 가고 싶은 지역을 골라서 제가 원하는 기간만큼 다녀올 수 있었어요. 항공권이 제공되었으니까요.
Q. 한 달에 한 번이면 꽤 힘든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1년 내내 12번을 갔다 와야 했는데, 너무나 즐겁게 다녀왔어요. 베트남 다낭에 첫 취항을 하던, 아무도 그곳이 어딘지 모를 때 다낭에 가 볼 수도 있었고요, 오키나와, 홋카이도, 비엔티안, 칭다오, 괌, 사이판 등 티웨이 항공이 닿는 지역 어디든 다녀올 수 있었어요. 2년 반을 정말 열심히 했지요.
Q.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하게 되신 건가요?
책을 내고 싶은 생각은 늘 있었어요. 블로그, 사보, 잡지에 글을 쓰는 사람과 자기 책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지요. 자기 이름으로 된 에세이를 내는 건 모든 여행 작가의 꿈 아닐까요?
30대 초반, 에세이 기획안을 열심히 썼어요. 예를 들면 영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벽에 자신의 비밀을 묻잖아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겪고 나면 비밀을 묻기 위해 앙코르와트에 간다는 식으로 여행지와 사랑 이야기를 엮는 이야기를 기획하기도 했어요. 제 첫 해외 여행지가 앙코르와트였는데, 참 좋았던 기억도 있었고요.
하지만 조금 나이가 들고 나니 ‘사랑’이라는 주제가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에 맞게 글의 주제도 성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출판 시장에서는 정말 유명한 사람, ‘셀럽’의 에세이가 아니면 잘 팔리지 않잖아요. 제가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하면 그에 맞는 다른 결의 에세이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고 보니 처음 낸 책이 공교롭게도 『앙코르와트 홀리데이』라는 가이드북이었네요. 정말로 실연을 하고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요. (웃음)
Q. 첫 책이라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 깨달음은 없었나요?
앙코르와트로 한 달 동안 취재를 하러 갔는데 우기 끝 무렵이어서 머무는 동안 일출을 한 번도 보질 못했어요. 앙코르 유적지 가이드북에는 일출 보는 법, 아침에 몇 시에 나가서 어떻게 일출을 보러가야 하는지 써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출 사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큰 결심을 하고 일주일 동안 일출 사진만 찍고 오리라, 계획을 하고 앙코르와트로 떠났어요. 새벽 1시쯤 공항에 도착했는데 호텔 방에 누우니까 2시가 넘었더라고요. 4시 반에 나가야 일출을 볼 수 있는데, 두 시간만 자고 나가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내일만 해가 쨍하고 다음 날부터 또 비가 오면 일출을 못 볼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든 나가야지 마음먹고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앙코르와트 뒤로 떠오르는 일출을 봤어요. 너무나 황홀한 일출이었어요. 필요한 촬영을 마쳤기 때문에 다음 날부터 늦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나갔어요.
매일 다른 사원, 다른 자리에 앉아서 일출을 바라보는데, 일출 자체도 아름답지만 인간의 힘으로 1천 년 전 만들어 놓은 조형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우주가 너무나 경이로웠어요. 이런 경험이 무척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됐지요.
Q. 책 출간 뒤 정말로 작가와 블로거의 차이를 느끼셨나요?
제가 처음 여행 글을 쓸 때만 해도 블로거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막무가내로 글을 써 줄테니 무료로 협찬해 달라는 블로거들이 많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블로거나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많이 커졌죠.
수많은 인플루언서나 유명 블로거와 비교했을 때 여행 작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해요. 어떤 블로거들은 신속함, 정보력은 물론이고, 여행 작가에 비해 글솜씨가 떨어지지도 않거든요.
이 와중에 여행작가가 특별히 가져야 할 덕목이라면 아마도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아닐까요. 블로그나 SNS와 달리, 책이라는 미디어에는 틀린 정보가 있으면 안 되는 거죠. 제 책을 믿고 여행을 가신 분들에게 혹시나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지도라던가 촘촘한 정보를 드려야 하고, 해외에서 말이 안 통할 때도 어쨌든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든든함을 주는, 그런 글과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두 번째 책도 역시 동남아 지역인 『호치민 홀리데이』였어요. 동남아를 주력 분야로 선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사실 일부러 동남아를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시작이 티웨이 기내지였기 때문에 취항지를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요. 제가 정말 뜬금없이 어디를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한 번도 못 가본 곳이었다면 책을 못 썼을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티웨이 기내지에 기고하며 축적한 자료와 사진이 있으니까 책을 쓰는 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물론 다시 한번 가서 취재하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제가 가진 데이터가 충분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한편으로 동남아 쪽을 택한 것은 취재 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해요. 북유럽이나 프랑스 남부라던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책을 쓴다면 한 번 나갔을 때 오랫동안 많은 것들을 취재해 오려고 하겠지요. 이동 시간도 기니까요. 저는 시간을 엄청나게 쪼개서 적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취재를 하는 편인데, 동남아 지역들은 국경을 넘어 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돌아오는 게 빠르고 쉽지요. 예를 들어 일주일 안에 방콕에 갔다가 국경을 넘어 비엔티안을 다녀오는 게 가능한 거예요.
Q. 최근 개정판이 나온 『리얼 다낭』이 처음 나왔던 시기는 지금처럼 다낭이 유명해지기 전이었어요. 당시 다낭은 어떠했나요?
다낭에 처음 발 디뎠을 때는 정말 시골이었어요. 이런 곳에 한국 항공기가 왜 들어오는 건지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어요. 당시는 호이안에도 한국 사람이 없을 때라 정말 이런 곳이 다 있네, 베트남의 찐 속살을 본 느낌이었어요.
『리얼 다낭』을 쓰면서 만나게 된 서양 배낭 여행자들 중에는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기차를 타고 오가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다들 다낭을 모르더라고요. 호이안도 가고, 후에도 가는데 다낭은 모르는 거예요. 결국 왜 한국인들이 다낭에 가기 시작했는가 따져보면 그곳에 공항이 있기 때문인 거지요.
Q. 그런데도 다낭을 선택하신 이유가 뭘까요?
정말 잘나가는 배우들은 작품을 고를 수 있지만, 보통은 자신한테 의뢰가 와야 일을 할 수가 있잖아요. 다낭 작업이 저에게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다낭은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준 책이거든요. 감사하게도 편집자님이 굉장히 일을 잘하시는 분이라 멋진 『리얼 다낭』 책을 낼 수 있었고, 그분과 함께 『리얼 방콕』과 『리얼 국내여행』 두 권을 더 작업할 수 있었어요.
『리얼 다낭』 초판에서는 후에의 비중이 적은 편이었어요. 이후 개정판에서는 후에의 내용이 부쩍 늘었고, 다낭뿐만 아니라 호이안과 후에에 엄청 공을 들였어요. 특히 후에를 이렇게 많이 다룬 가이드북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한국 사람이 많아서 다낭이 싫다는 분들이 꽤 많지요.
패키지는 한국 사람들과 떠나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 사람을 많이 마주치겠지요. 또, 99%가 한국인이 줄을 서는 식당이라면 이유가 있을 거예요. 한국인들의 입맛에 최적화되어 있거나, 주인이 한국인이거나. 그래서 좋은 점도 있어요. 직원들이 한국말을 해서 소통이 쉽다든가, 위생이라든가, 바가지를 쓰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인이 작성한 블로그를 검색해서 한국 사람들이 소개하는 장소를 찾아가시면 한국인이 많을 수밖에 없죠.
한국 사람이 많기는 해도, 다낭은 매력적인 여행지에요. 한 번도 안 갔다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갔다 온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다낭은 만족도가 높은 여행지잖아요. 4시간 반 만에 한국에서 따뜻한 나라로 휴양을 떠날 수 있고, 괌이나 사이판처럼 입국 절차가 복잡하지도 않아요. 공항에서 10분이면 숙소에 도착하고요.
태국 음식이 유명하지만 향이 세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있는데, 베트남 음식은 남녀노소 거부감이 별로 없어요. 심지어 2천 원이면 정말 맛있는 쌀국수를 먹을 수 있어요. 3박 4일 휴양지 여행이면 꽤 비용을 쓰게 되는데, 같은 비용으로 다낭에서는 더 높은 퀄리티의 숙소를 선택할 수 있어요.
인터뷰 | 이주호
장소 협조 | 20세기적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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