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반팔, 절대로 안 입어” MVP가 된 빨간 머리
4시간 내내 울면서 진행된 인터뷰
‘E60’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ESPN이 제작하는 TV 매거진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출연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콘텐츠다.
3년 전, 그러니까 2021년 4월에 방영된 에피소드다. 개막을 앞두고 전년도 MVP를 주인공으로 모셨다. 32세의 프레디 프리먼이 마이크를 찼다.
방송 시간은 60분 안쪽이다. 실제 녹화는 그보다 훨씬 길었다. 참여했던 한 제작진이 전한 얘기다. “프레디가 스튜디오에 머문 시간이 4시간 정도는 됐던 것 같아요. 그동안 어땠는지 아세요? 프레디는 내내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죠. 몇 번이나 (녹화를) 끊어야 했는지 몰라요.”
특히 감정이 격해진 부분이 있다. 12살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때다.
“잠들 무렵이었어요. 아버지 안색이나 거동이 조금 이상한 거예요. 물어보면 ‘피곤해서 그래. 괜찮을 거야’라고 하시는데…. 지켜보다가 영 안 되겠더라고요. 병원에 연락했어요. 급하게 모시고 갔죠.” (프레디 프리먼 ‘E60’)
진단 결과는 울혈성 심부전이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병이다. 응급 처치로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의료진이 이런 말을 남겼다.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병원을 찾지 않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으면, 큰일 날 뻔하셨어요. 아드님 덕이예요.”
2년 전에 이미 어머니를 잃었다. 막내 프레디(프리먼)가 10살 때였다. “그때가 겨우 12살이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될 뻔했던 거예요.” 그가 녹화 중에 펑펑 눈물을 쏟은 이유다.
10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아버지는 각별했다. 친구이자, 둘도 없는 훈련 파트너다. “아들 셋이 모두 야구를 했죠. 그런데 막내가 워낙 특출했어요. 쳐내는 타구가 심상치 않았죠. 그때부터 그 녀석에게 집중했죠. 하루도 쉬지 않고 배팅 볼을 치게 했어요.” (아버지 프레드 프리먼)
학창 시절 코치의 기억이다. “프레디의 아버지는 매일 나오셨어요. 우리가 휴가를 간 적은 있어도, 그가 빠진 적은 없었죠. 그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어요. 언제나 훈련장 한편에서 조용히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죠.”
이번 월드시리즈(WS) 1차전 때다. 역사에 남을 끝내기 만루홈런이 터졌다. 그라운드는 폭발 직전이다. 동료들의 뜨거운 환영이 그칠 줄 모르게 계속된다.
그 순간이다. 주인공이 갑자기 어디론가 향한다. 포수 뒤쪽 관중석이다. 늘 아버지가 앉는 곳이다. 그야말로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자리다. (프레디의 아내와 아들들은 구장 스위트룸을 이용한다.) 거기로 달려가서 가장 큰 포효를 터트린다. 그물을 사이에 두고 부자간에 가장 격정적인 포옹을 나눈다.
“다섯 살 때부터였어요. 뒷마당에서 매일 형들과 야구를 했죠. ‘월드시리즈, 투아웃, 만루’. 그런 꿈들을 꾸기 시작했어요. 야구가 뭔지, 어떻게 배트 쥐는지. 모든 걸 알려준 건 아버지였어요. 그가 아니었으면 오늘 이 자리는 없었죠. 이 홈런은 아버지를 위한 겁니다.” (1차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친 뒤 기자회견.)
그 무렵이다. 처음 스윙을 배운 5살짜리가 친 공이 제법 멀리 날아간다. 지켜보던 어머니의 찻잔을 깨트릴 뻔했다. “여보, 우리가 드디어 홈런 타자를 만나게 됐네요.” 부부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먼 훗날 MVP의 생애 첫 장타였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추억은 길지 않다. 10살 때가 마지막이다. 그때도 병실이었다. 마르고 지친 모습으로 이별을 맞아야 했다. 어린 막내아들이다. 오죽 안타까웠겠나. 이마에 입을 맞출 때다. 힘겨운 중에도 목소리를 짜낸다. 그렇게 간절한 당부를 끝으로 떠났다.
반 팔을 입지 못한 캐나다 대표팀
작년 봄이었다. WBC 준비가 한창이다. 캐나다 대표팀도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애리조나에서 첫 합동 훈련이 시작됐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유니폼 제작이 늦어졌다. 별 수 없다. 첫날은 간편하게 하기로 했다. ‘날도 뜨거운데, 반팔에 반바지. 가벼운 차림으로.’ 그렇게 드레스 코드가 정해졌다.
그러자 누군가 반발한다. ‘아니요. 난 긴 팔에 긴 바지 입을 거예요.’ 모두가 돌아본다. 프레디 프리먼이다.
잠깐의 술렁임이 생겼다. 감독(어니 위트)도 곤란한 표정이다. 팀의 간판스타다. 합류해 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 선수의 반발이다.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다.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다들 들었지? 긴 팔에, 긴 바지로. 오케이?”
아무리 대단한 선수라도 그렇다. 한 명 때문에 전체의 의견이 뒤바뀐다.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안타까운 사정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떠난 것은 10살 때였다. 병명은 흑색종(melanoma)이었다. 흔히 말하는 피부암이다. 몇 차례의 재발 끝에 결국 가족들과 이별하게 됐다.
마지막 인사 때다. 이마에 입 맞추는 막내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온 힘을 짜내며 이런 말을 남긴다. “아들아, 짧은 옷은 절대 안 된다. 언제나 긴 팔,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밖에 나갈 때는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하게 바르고….”
그 이후로 무더운 여름에도, 아무리 햇볕이 뜨거워도. 그의 사전에 반팔은 없다. 절대로 짧은 옷차림으로 플레이하지 않는다. “2016년에는 작은 사마귀 제거를 위해 병원 신세를 져야 했어요. 담당의사는 매년 정기 검진을 빼놓지 말라고 당부하죠.” (프레디 프리먼)
양키스 극성팬의 몰상식한 야유
이번 월드시리즈 4차전(한국시간 30일) 때다. 5회가 끝났다. 살벌한 그라운드에 잠시 평화가 깃든다. 선수도, 심판도, 관중도 모두 일어섰다. 모두의 손에는 작은 팻말이 하나씩 들렸다. 'I stand up for ○○○○'라고 쓰였다.
FOX TV와 마스터 카드가 마련한 이벤트다. 2008년부터 시작됐다. 후원금을 모아 암 환자 치료, 연구하는 단체에 전달하는 캠페인이다. ‘○○○○’ 자리에는 각자의 기원이 담긴다. 이를테면 암과 싸우고 있는 가족, 친구의 이름을 적는다.
TV중계 카메라가 그라운드 곳곳을 비춘다. 프리먼 앞에도 왔다. 'I stand up for’ 아래에는 ‘My Mom’이라고 적혔다.
그때였다. 중계방송에 거친 오디오가 잡혔다. 관중석에 설치된 음향 마이크를 통해 전해진 것 같다. 멀지만, 분명하게 들린다. “You suck, Freeman!” 극성맞은 양키스 팬의 목소리다. 무키 베츠의 손목을 비튼 것보다 훨씬 비열하다.
엄마 붉은 머리카락을 목걸이에
다시 그 10살 때의 병실 얘기다. 마지막 어머니의 신신당부는 이유가 있다. 막내가 자신을 ‘너무’ 닮아서다. 빨간 머리에 유난히 흰 피부를 물려받았다. (붉은 머리는 멜라닌 색소의 화학작용으로 피부암에 걸릴 위험성이 더 높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
게다가 이미 야구 선수로의 꿈을 꾸고 있다. 야외에서 활동하는 직업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모정이다.
2023년 당시 캐나다 대표팀이 그를 존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실력과 경력이면 미국 대표도 충분하다. 그게 훨씬 더 좋은 결과도 기대된다. 그럼에도 굳이 캐나다를 택했다. 그곳 태생임을 끝까지 자랑스럽게 여겼던 어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스파이크에는 ‘ROSEMARY’라는 글자가 새기고 달린다. 어머니의 이름이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십자가 목걸이다. 자신과 같은 어머니의 붉은색 머리카락이 몇 가닥 들어있기 때문이다.
30년 전, 어느 집 뒤뜰이다. 5살짜리의 타구가 어머니 찻잔을 깨트릴 뻔했다. “여보, 우리가 드디어 홈런 타자를 만나게 됐네요.” 활짝 핀 가족의 웃음이 다시 생각난다. 이번 가을에 기억될 고전(Fall Classic)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