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류현진, 20년 여정의 끝에서 역사를 다시 썼다 한·미 통산 200승

2026년 5월 24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순간, 더그아웃에서 굳게 다물었던 류현진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20년 세월이 그 미소 하나에 압축됐다. 한국 야구 역사상 단 두 번째로 나온 한·미 통산 200승. 숫자로는 세 자리지만, 그 무게는 어떤 단어로도 쉽게 환산되지 않는다.

류현진이라는 이름이 처음 야구판에 등장한 건 2006년 4월 12일이었다. 잠실 LG 트윈스전 데뷔 무대에서 그는 7이닝 1/3을 3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고졸 신인이 그런 투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선 이례적이었다. 그해 그는 18승을 거두며 고졸 신인 최다승 기록을 새로 썼고, 평균자책점(2.23)·탈삼진(204개)·다승 트리플크라운을 독식했다. KBO 역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한 선수. '괴물'이라는 별칭은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이후 7시즌 동안 KBO에서 98승을 쌓은 그는 2013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첫 시즌부터 14승을 올리며 빅리그에서도 통했다. 2014년에도 14승, 2019년에도 14승.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한 2021년에도 14승을 챙기며 꾸준함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팔꿈치 수술로 공백이 생긴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매번 마운드로 돌아왔다.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2024년 한화 이글스로 복귀했을 때, 그의 MLB 통산 성적은 78승이었다. 복귀 첫 시즌인 2024년 10승, 이듬해 9승. 그리고 올 시즌 9경기 만에 5승을 추가하며 마침내 200이라는 숫자에 닿았다.

이날 경기 내용은 '200승다운 투구'였다. 5회까지 단 1안타만 허용한 류현진은 6회 원아웃 후 정수빈에게 3루타를 맞고 박찬호에게 적시타를 내주며 1실점했다. 7회에도 투아웃 상황에서 강승호·윤준호·임종성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해 1점을 추가로 내줬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 버텼다. 무엇보다 6이닝 2/3를 사사구 없이 소화한 것이 이날 투구의 핵심이었다. 39세 투수가 보여준 제구력은 여전히 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한화 타선도 일찌감치 분위기를 잡았다. 1회 이원석의 좌중간 2루타로 물꼬를 튼 뒤 문현빈의 희생 플라이로 선취점을 올렸다. 4회엔 요나단 페라자가 시즌 9호 솔로 홈런을 쏘아 올렸고, 이도윤의 우전 적시타로 추가점을 냈다. 5회에도 이원석과 페라자가 연속 적시타를 치며 5-0으로 앞서나갔다. 이원석은 2안타 1타점 2득점, 페라자는 홈런 포함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8회 김종수가 2사 만루 위기를 만들었고, 9회 마무리로 오른 박상원은 윤준호·대타 김인태·정수빈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평균자책 11.08이라는 불안한 성적으로 2군을 다녀온 지 이틀밖에 안 된 투수였다. 더그아웃에 앉은 류현진의 표정이 굳어질 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박상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박찬호를 땅볼, 박지훈을 파울 플라이, 카메론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3명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637일 만의 세이브였다. 경기 후 포효하는 박상원의 모습은 류현진의 200승만큼이나 이날 경기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위기에서 버텨낸 불펜진이 없었다면 역사적인 이정표는 다시 한 번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숫자만 놓고 보면 류현진의 200승은 송진우의 뒤를 잇는 두 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두 기록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송진우는 국내에서만 210승을 달성한 반면, 류현진은 KBO 122승과 MLB 78승을 결합한 한·미 이중 도전의 완성이다. 단순한 누적이 아니라, 두 개의 최고 무대에서 각각 존재감을 증명한 뒤 합산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특히 39세 1개월이라는 나이에 이 기록을 완성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송진우가 200승을 세울 당시 나이는 40세 6개월. 류현진은 그보다 1년 이상 빠른 속도로 같은 이정표를 넘었다. 팔꿈치 수술로 시즌을 통째로 날린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기록이 더 눈길을 끄는 건 단순히 대기록이어서가 아니다. 한국 야구의 '세대교체 서사' 속에서 류현진이 여전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팬들의 감정을 건드린다. KBO 복귀 이후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팬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단지 기록 때문이 아니다. 그가 투구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시간 여행'이기 때문이다. 2006년 괴물 신인의 기억을 가진 팬들이, 2026년 원숙한 에이스의 투구를 보면서 20년치 감정을 한꺼번에 소비하는 것이다. 김경문 감독이 경기 후 "팀의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승의 경계를 넘은 류현진은 다음 경기를 향해 다시 준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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