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삼아 여장하고 길거리 걷다 한 남성에게 고백받은 남자스타

(Feel터뷰!) 영화 <파일럿>의 조정석 배우를 만나다

영화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조정석)가 파격 변신 이후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생 정미(한선화)의 도움을 받아 한정미 행세로 취업에 성공. 인생 2막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은 코미디다.

2004년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으로 데뷔해 20년째 쉼 없이 달려온 조정석을 7월 18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정석은 절박한 마음에 의도치 않은 1인 2역을 하게 된 정우를 연기했다.

여유롭다기 보다 다소 긴장한 상태였다. “언론배급 시사회 전날은 항상 떨려서 한숨도 못 잘 정도다. 잘 봐주시길 간절한 바람 때문인 듯하다. 그날 영화를 처음 본 거라 더욱 떨렸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그려 놓은 여성성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려 했다. <헤드윅>의 드래그 퀸 화장법이나 몸짓과는 달랐다. 희화하지 않고 세심한 스타일링을 구축했다. 예쁘게 보였으면 해서 7kg 감량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뭐든 열심히 하는데 잘 안 풀리는 사람이 있다. 최근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도 20대 취준생 이미진과 50대 시니어 인턴 이정은은 밤낮없이 일하고 싶어서 안달이지만 쉽지 않다. 영화 <파일럿>의 한정우도 한 집안의 가장, 장남, 파일럿으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한순간에 무너지고야 만다. 그렇게 재취업의 문을 두드릴 수 있던 신의 한 수는 뜻밖에도 여장남자였다. 절박함은 사람을 움직이고 무엇이라도 하게 독려한다.

7kg 감량으로 만든 예쁜 정미

-<파일럿>은 마냥 웃기려 밀어붙이지 않는다. 여장, 반전, 우정 등 다채로운 소재로 웃음과 감동을 준다. <파일럿>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너무 재미있었다. 웃음만 담긴 게 아니라 (저의)자아 성찰 계기로 다가왔다. 정우가 너무 열심히 사는 데 괜히 웃펐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실직하고 정미가 되어서도 또 너무 열심히 하니까 그것도 웃펐다. 시나리오의 재미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뺑반> 같은 경우 빌런 역할에 호기심이 생겨서 하게 되었다. 메시지가 중요할 때도 있지만 메시지가 있어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쪽은 아니다”

-정우와 정미를 동시에 소화하는 여장남자 설정이다. 비밀을 알고 있는 관객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속이느냐는 외모와 연기 다 잡아야 한다.

“(정우가 여성처럼 보인다를) 이해시키는 건 모두의 고민이자 중요 설정이었다. 부담되는 설정이었지만 사실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헤드윅>도 해봤고, 여성 속옷도 입어 봤던 터라 생경한 경험은 아니었다. ‘정미의 진정성이 스크린을 통해 온전히 전달된다면’ 이란 믿음으로 연기했고 모두가 준비했다.

특히 현석(신승호)의 플러팅을 받으려면 다이어트는 필히 해야 했다. (웃음) 시사회 후 외모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 말에 인정까지는 아니고.. 다들 예쁘다고 해주시니까. 뿌듯하긴 하다. (웃음) 아내도 예쁘다고 하더라.

정우가 정미를 연기하는 설정에도 작위적이지 않게 자연스러운 제 목소리를 쓰려고 했다. 하이 음역을 많이 썼고, 분장팀과 의상팀과 오랜 시간 테스트를 거치며 가발, 액세서리, 힐 등을 신경 썼다. 긴 머리도 생각했었는데 지금 기장의 중 단발, 원피스, 쿨톤이 가장 잘 어울렸다. (웃음)”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도 유방암에 걸린 남성 설정으로 여성 속옷을 착용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유독 여장을 자주 하는 남성 배우란 생각도 든다.

“어느 순간 여장을 즐기고 있더라. (웃음) 배우가 무언가를 했을 때 웃어주고 재미있게 봐준다면 즐거운 일이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여러 가지 역할을 해본다는 것도 배우로서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하이힐 신고 뛰는 장면은 너무 힘들었다. 여성 속옷은 착용경험이 있어 어색한 부분은 아니었으나 촬영 시간이 지속될수록 답답함이 느껴졌다”

-조정석하면 코믹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조정석의 원맨쇼’, ‘조정석이 조정석 했다’란 말도 들린다. 이번 영화의 부담감이 크겠다.

“부담은 항상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게 배우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시나리오는 대부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부분이 웃겨서였다. 코미디물을 계속해 온 이유도.. 제가 느낀 재미를 타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거다. 누군가를 즐겁게 한다는 게 기분 좋다. 때로는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악역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희로애락을 조금씩 느끼고 사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원맨쇼라는 말은 너무 극찬이라 부담이 크다. 어떤 상황이 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코미디가 가장 재미있다. 정우로서 평상시 습관이 불쑥 튀어나올 때 같은 허술한 지점을 코미디적 재미로 활용했다. 코믹 배우로 굳어지는 걱정은 없는데 주변에서 하고 있다. (웃음) 얌체공 마냥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성공이나 실패로 나누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긍정적이지는 않은 성격이지만 긍정적으로 살려고 한다”

-코믹 연기 잘 짜인 대본에서 본인의 센스를 발휘하는 건지, 따로 연습하는 건지 알고 싶다.

“가장 편안한 상태일 때 제일 좋은 연기가 나오더라. 현장에서는 저만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슛 들어가면 에너지를 분출한다. 그래서 동료, 선후배와 긴장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장에서는) 모두 잘할 수 있게 말도 많이 하고, 사소한 일상도 나누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려고 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배우라는 믿음을 품고 있었다. 보는 사람은 안다 배우의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우의 간절함과 진심이 드러난다면 여장남자라는 설정은 신경 쓰지 않고 잘 받아주시리라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웃기려고 달려들다 보면 상대가 웃지 않아 드러나는 조급함도 커진다. <파일럿>의 코믹 연기는 어쩐지 <엑시트>때보다 여유가 드러난다. 웃수저란 별명도 생겼는데 마음에 드는지 궁금하다.

“웃수저란 말에 동의 못 하겠다. (웃음) 웃수저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빵빵 터지는 재능을 근본적으로 타고난 사람 아닌가. 저는 생각보다 말이 느려서 상대방이 답답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의) 주도권을 뺏길 때도 많다. 저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가 생각나는 순간 포인트를 말하는데 그게 터지는 스타일이다. 혼자서 재미있게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못한다. 상대와 호흡, 앙상블이 정교하게 생길 때 웃음이 극대화되고, 그게 쌓이면 시너지가 생긴다”

데뷔 20년 차 앞으로의 20년

-한선화와 찐남매 케미, 이주명과는 찐친이자 언니 케미, 신승호와는 미묘한 설렘(?) 호흡을 나누었다.

“한선화 배우는 왜 이제야 만났나 싶을 정도로 첫 만남이지만 호흡이 잘 맞았다. 초반에 등장해서 극을 따라오게 만드는 길잡이 역할을 잘해주었다. 배우 자체의 에너지도 좋고 고마운 부분이 많았다.

이주명 배우는 저와 함께 찍지 않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 때 경호의 전 여자 친구로 잠시 등장했었다. 그 회차를 집에서 시청하는데 너무 좋은 거다. 그때 바로 경호에게 전화해서 (연기 호흡이) 어땠는지 물어볼 정도로 눈여겨봤던 배우였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좋았고 직접 호흡을 맞춰 보니 더 좋더라. 저보다 어리지만 제가 계속 ‘언니’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닐 정도였다. (웃음)

신승호 배우와 현장은 매 순간 장면마다 웃음이 터져서 진정하기 힘든 상태였다. 저와의 케미는 그냥 블랙 코미디(?)로 생각하려 한다. (웃음)”

-김한결 감독이 기자간담회 때 ‘성덕’이란 표현을 했다. <가장 보통의 연애> 이후 차기작 캐스팅 리스트에 늘 조정석을 담아두었는데 역으로 성사되어 놀랐다는 말도 했다.

“일단 웃음이 많으신 감독님이다. 어떤 신인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더 이상 연기 지속이 어려울 정도로 컷을 안 해주시더라. 그래서 제가 못 들었나 싶었는데 컷 여부를 물어보니. 웃느냐고 컷을 못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웃어주셨던 제1호 관객이다.

슬기(이주명)랑 밤새 놀다가 수염이 올라온 장면은 실제 수염이다. 붙인 게 아니다. (웃음) 하루 종일 촬영 일정이었고 그때가 새벽 2시쯤이었다. 정우의 간절함이 튀어나오는 중요한 장면에서 아무리 메이크업으로 메워도 그 녀석들(?)이 올라오더라. (웃음) 감독님이 모니터로 보고 있었고 이거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이다”

-주옥같은 대사의 향연이다. 현장 분위기도 즐거웠던 것 같아 애드리브도 많았던 순간이었을 텐데.

“애드리브는 감독님, 상대 배우와 약속해서 만들어가는 타입이다. 몇몇 의견을 냈었는데 그대로 갔던 게.. 쇼핑할 때 슬기가 발 사이즈 크다고 말하니까 ‘발 볼이 넓어서요’라고 했던 거다. 그리고 정미로 면접 볼 때 안간힘을 쓰며 뛰면서 넘어졌던 행동이다. 원래는 움직임이 없었는데 간절한 상황이기도 하고, 정미로 회사에 들어가는 데 부합되는 의미가 커 직접 제안하고 해봤다”

-정우는 실직, 이혼을 경험하며 인생을 돌아본다. <파일럿>으로 배우 조정석도 인생을 반추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나.

“20대에 연기를 시작했다. 20년이란 과거를 거슬러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종착지가 어디일까 생각해 봤지만 답은 한결같았다.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자는 것, 재미있게 살자는 생각이더라.

그래서 스스로 슬럼프, 트라우마, 징크스란 단어에 곁을 두려 하지 않고 루틴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 상태에서도 무언가 기막힌 게 나올 거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런 생각들은 2004년부터 공연하면서 무대에 오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캐릭터를 오랫동안 분석하고 레퍼런스를 찾기보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과 느낌에 충실한 타입 같다.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타고난 배우란 생각이 든다.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감이 오는 역할이 반드시 있다. 처음 드는 느낌대로 할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인간 조정석을 대입했을 때 술술 읽히면서 재미있고 머릿속에 구현되는 장면과 톤도 생각하는 상황이라면 오케이다. 클라이맥스까지 어떻게 연기할까 상상하게 된다. <파일럿>은 레퍼런스까지는 아니고,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재관람하면서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를 눈여겨봤었지만 제 식으로 결국 만들어갔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정우처럼 배우 조정석도 20년 동안 열심히 연기했다. 연기의 원동력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20년은 어떤 역할로 대중과 만나고 싶나.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으면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더 커진다. 연기를 하다 보니 더 잘하고만 싶어진다. 어제보다 더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고 동료들과 완벽한 팀플레이도 나누고 싶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나서 가장이라는 또 다른 원동력이 생겼다고나 할까. 나이가 좀 더 들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코미디 말고 장르나 캐릭터도 바뀔 수 있겠다. 어쩌면 비슷한 장르를 연달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이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돈 많고 정장을 차려입은 기업의 CEO인데, 비리와 의혹으로 가득한 사람.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지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사람이다. 늘 입어보지 않은 옷을 입어보고 싶다. 그 옷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런 작품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니까. 행운 같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이도 무시할 수 없잖냐. 앞으로 한 번만 더 정우 나이대의 캐릭터를 연기해 봐도 되지 않을까. (웃음)”


글: 장혜령
사진: 잼엔터테인먼트

파일럿
감독
출연
평점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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