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진단, 포기는 일러요” 의사가 전하는 담담한 위로

"유방암 환자분들은 병과 싸우는 과정 자체를 힘겨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여성으로서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그런 분들께는 기회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걸 제공하는 게 의사의 역할이고요."
유방암은 국내 여성 암 발생률 1위를 차지할 만큼 흔하지만, 조기에 발견할수록 생존율이 높은 암으로 알려져 있다. 2기 이내에 병을 발견한 환자 100명 중 95명이 5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통계 결과도 있을 정도다.
문제는 유방암의 종류가 많고 환자들의 특성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유방을 절제하거나 머리가 빠지는 등 외형적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환자도 많다. 이 때문에 의료진이 환자의 특성과 성향을 세밀하게 살피고,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 전략을 함께 짜나가야 한다.
2026년 '세계 암의 날'을 맞아, "환자들에게 희망 고문이 아닌 진짜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안성귀 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외과 교수를 만났다.
세상에 '착한 암'은 없다
유방암은 종양의 생물학적인 성질(위험도)에 따라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종양에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 등 여성 호르몬 수용체가 있다면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이라고 부른다. 이때는 여성 호르몬 작용을 차단하는 치료가 가능하고, 종양이 자라는 속도도 상대적으로 더디다. 전체 유방암의 약 60~8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세포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수용체 단백질인 HER2(인간 표피 성장인자 2형)가 종양에서 너무 많이 발견되면 'HER2 양성' 유방암으로 칭한다. 전체 유방암의 15~20%가량을 차지하는 이 유형은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HER2 단백질을 역으로 이용해 암세포만 찾아내고 공격하는 표적치료제가 발달하면서 치료 성적이 좋아지고 있다.
호르몬 수용체와 HER2가 모두 없는 암은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하는데, 유방암 환자의 약 15%가 이에 해당한다. 종양이 가장 공격적인 형태를 띄고, 항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분류만 놓고 보면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진행 속도가 느리고 예후가 좋은 '착한 암'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유방암 치료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암 치료에서 착한 암은 없기 때문.
안 교수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 처방하는 '난소기능억제제'는 인위적으로 환자의 몸 상태를 폐경으로 만들어버리는 약"이라며 "부자연스러움을 넘어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30, 40대 젊은 환자들은 이 약을 경험한 후 "몸이 할머니가 된 것 같고 로봇처럼 뻣뻣하다"고 토로한다. 안면 홍조나 관절통, 불면증 등 실제 갱년기 여성에게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가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런 호르몬 치료가 길게는 5년 이상 이어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 결국 재발을 겪게 된다.
조금의 가능성을 믿음으로
그렇다면 유방암 환자는 왜 늘었을까. 안 교수는 "전반적인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전통적으로 유방암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출산과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여성이 많아졌고, 하더라도 부모 세대보다 시기가 늦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그는 "그렇다고 유방암 예방을 위해 결혼-출산-모유 수유를 장려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설령 출산을 하더라도 체질에 따라 모유 수유가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며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 본인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전략을 짜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다양한 환자들을 대면하면서 어떤 치료법을 선택할지, 그 과정에서 환자의 의사를 어떻게 반영할지, 타협 불가능한 부분은 어떻게 설득할지에 따라 의료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꼈다고 털어놨다.
"결국에는 선택과 집중이예요. 어떤 치료법을 선택하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죠. 절대 머리카락 빠지는 걸 못 견디겠다는 환자도 많아요. 종양이 유두까지 침범해 유두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낙심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가족이 항암 치료 중 세상을 떠난 경험 때문에 절대 항암 치료는 못하겠다고 버티는 분들도 계시죠. 이건 모두 환자의 고유한 영역이고 철학이라서, 의사가 강제로 권할 수 없어 답답하거나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이에 안 교수는 '환자를 존중하되, 대안을 찾는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환자의 의사를 꺾을 수 없다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러 치료 전략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직장을 빠질 수 없는 환자나, 형편상 비급여 치료제 처방이 어려운 환자들도 의료진과 함께 납득할 만한 치료 전략을 세운다면 충분히 치료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안성귀 교수는 '세계 암의 날'을 맞아 환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방암이 알려진 것처럼 쉬운 암은 아니지만, 분명 예전보다 치료법이 더 발전했고 더 다양해졌습니다. 의사로서 '희망 고문'은 정말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희망을 환자께 보여드리고 믿음으로 발전시키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힘들지만 충분히 나을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장자원 기자 (jang@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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