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 ‘삶을 다시 일으키는 힘’, 심리적 회복탄력성이란 무엇인가
- 낮아진 회복탄력성,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
- 정신건강에 대한 나 자신의 인식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
인간의 몸은 다쳤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의 상처는 자연스레 아무는 것이 일반적이며, 너무 크거나 깊은 상처가 아니라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는 신체에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상’으로 규정된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성질이므로, 항상성(Homeostasis)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회복탄력성은 신체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적용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등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는 다시 편안함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처럼 정신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분위기에서는 이러한 ‘심리적 회복탄력성(Psychological Resilience)’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옳다.
실제로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높을수록 자살, 자살시도 및 계획에 덜 노출된다는 점이 확인됐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훈·한창훈 교수 연구팀은 약 5,500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뒤 이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스트레스 만연의 시대, ‘수용’과 ‘회복’이 중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이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본래 회복탄력성은 무척 포괄적인 개념이다. 신체적, 심리적 문제부터 사회적, 환경적 요소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기와 같은 일상적 질환에 걸렸을 때를 생각해보자. 어떤 이는 하루이틀 사이에 곧장 회복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며칠씩 앓고 나서 한동안 잔기침을 달고 사는 경우도 있다. 이를 두고 면역력이라는 관점에서 보기도 하지만, 회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회복탄력성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심리적 회복탄력성이란 심리적 요인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특정하는 말이다. 현대사회는 변화속도가 몹시 빠르고 세대간에 서로 다른 점들이 촘촘하게 얽혀있다. 이는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업무나 도전과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계, 업무, 목표에 있어서의 스트레스, 실패, 정신적 충격 등이 흔히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심리적 문제를 경험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우수한 사람은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래지 않아 털어낸다. 회복하고 적응하거나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흔히 쓰이는 말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가짐’이라 볼 수 있다. 반대로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결과를 확대해석하거나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괴로워한다. 쉽게 잊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곱씹는다. 제대로 치유하거나 소화하지 못해, 마음 속 상처로 남거나 응어리가 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심리적 회복탄력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사회는 스트레스 요인이 지금도 많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감내해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신건강 및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높을수록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을 적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회복탄력성, 자살 성향과 반비례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훈·한창훈 교수 연구팀은 2021년 한국 국가정신건강조사(NMHSK)를 통해 확보된 5,511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대상 데이터의 연령대는 18세부터 79세까지 다양하게 포함됐으며, 연구팀은 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적 회복탄력성과 자살 성향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여기서 ‘자살 성향’이란 실제 자살부터 계획과 시도까지를 포함한다. 평생, 1년, 1개월 단위의 발생률과 회복탄력성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분석해,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자살 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자 했다.
연구 결과, 대체로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자살 성향이 높게’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의미다. 반대로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자살 관련 위험이 낮았다. 즉, 심리적 회복탄력성과 자살 성향은 반비례 관계라 볼 수 있다.
긍정적 성향이 극단적 생각을 완화시켜
지난 8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96.6%는 사전에 ‘경고 신호’를 보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식의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즉, 대체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한 스트레스, 충격, 절망 등이 수차례에 걸쳐 누적되면서, 이를 도저히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없을 때 견디다 못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이 낮다는 것은 이러한 심리 문제를 스스로 극복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만약 주위에서 이를 이해하거나 지지해주는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나아질 여지는 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신호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개인은 철저한 고립감을 느끼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마저 잃게 된다.
심리적 회복탄력성에 관한 연구 결과는 대개 한결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성향이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정신적으로 바닥까지 가라앉은 사람이 스스로 긍정적인 마음을 품기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높여주기 위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회적 인식 변화는 계속돼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성향은 선천적인 ‘기질’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성장 환경에 따라 습관처럼 자리잡기도 하며, 본래 그렇지 않다가도 특정한 사건이나 경험 등을 통해 갑작스레 성향이 변할 수도 있다. 누군가 회복탄력성이 낮다고 해서 그것을 오로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이유다.
과거에 비하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심리적 문제에 대해 인색하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부정적인 경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변화의 노력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아직 한참 부족하다. 타인의 스트레스까지 나누기에는 자신의 것을 소화하기에도 너무 버거운 사회적 분위기 탓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심리적 문제 또는 정신건강 문제를 도울 수 있는 전문 인프라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사회적 분위기는 점진적으로 변해갈 것이고, 개인 입장에서는 주위를 둘러보려는 노력 정도면 좋겠다.
꼭 직접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심리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눈을 가린 색안경을 벗으려는 시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작은 노력이 모여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더욱 빠르게 이끌어낼 테니 말이다.
회복탄력성 높이기, 어떻게 하면 될까
회복탄력성은 누구에게나 내재된 능력이다. 다만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높았다가도 낮을 수 있고, 반대로 낮았다가도 높아질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감정 표현, 목표 설정과 문제 해결능력, 자기관리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유달리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어쩌면 이것이 한 개인의 마음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근본적 원인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주위에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두는 것이 몹시 중요해진다.
평소 느껴지는 작은 감정을 묻어두지 말고 표현하는 습관은,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는 것을 예방하는 길이다. 감정이 아직 작을 때 표현할 수 있게 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일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또한, 스스로 해야할 목표를 정하는 것, 이를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약한 경우도 많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습관화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해냈을 때의 성취감과 자아효능감은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훌륭한 요소다. 이는 시간을 들여 쌓을수록 더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는 성질이다.
이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내가 직접 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결정해보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이번 달까지 영화 3편 보고 소감 적어보기, 1주일 동안 저녁 6시 이후로 간헐적 단식 실천해보기 등이 있겠다.
여기에 건강을 위한 기본적인 습관들이 더해지면 좋다. 식단, 운동, 수면 등 기초 체력을 갖춰주는 요인들은 회복탄력성을 길러가는 과정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늘어가는 우울증, ‘내 문제’가 될 수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우울증 환자 수는 계속 늘어왔다. 5년 전에 비해 약 33%가 증가해, 100만 명 가까이가 됐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과 그 치료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를 생각해보면, 이미 증상을 겪고 있으면서 병원을 찾지 않은 환자 수도 적지 않을 테니까.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를 인지한 후 3개월 이내에 전문가에 의한 치료를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약 31%만 3개월 내 치료를 받는다. 즉, 환자 3명 중 2명이 제 시기를 놓쳐 증상이 훨씬 심각해진 채로 병원을 찾거나, 아예 병원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답답한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내 옆 사람이 우울증이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혹은 ‘내가 우울증이라고 한다면 내 옆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치료를 고민하는 이유’의 1위가 ‘주변의 부정적 시선 때문’이었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살기에 참으로 팍팍한 세상이다. 앞으로도 마음을 다치는 사람은 늘어갈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그게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의 심리적 회복탄력성은 여전히 부족해보인다.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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