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넘어선 특별함, 자동차 맞춤 제작의 시대

자동차 브랜드는 제품을 잘 만들고 잘 파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수요가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닌 만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판로를 늘려야 한다. 대표적으로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가 아닌 곳에서 별도의 고성능차를 만드는 것도 새로운 시장 개척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장 역시 블루오션이라 부르기엔 어려울 만큼 다양한 브랜드들이 도전하고 있어 또다른 시장을 찾아야 하는데, 최근 제네시스가 진출을 선언한 맞춤 제작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맞춤 제작이란 무엇이고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브랜드 중 어떤 곳에서 나만의 차량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비스포크(bespoke)’, 혹은 스페셜 오더(special order)라고도 하는 맞춤 제작은 흔히 옷을 맞춤 제작하는 것처럼 고객이 원하는대로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이다. 흔히 ‘한정판’이라고도 하는 스페셜 모델이 일정한 숫자로 출시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 희소성이 높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차량을 원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 맞춤 제작이다. 바탕이 되는 차량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내외장에 변화를 주는 것이 일반적으로, 기존에 선택할 수 있었던 색상이나 소재 외에도 차량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 나만의 차량을 만들 수 있다. 일부 브랜드에서는 페인트에 보석 가루를 혼합해 차량을 도장하는 방식도 제공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서명을 내장재에 새기는 등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다.

맞춤 제작 차량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과정이 늘어나는 만큼 차량의 가격은 기본 차량의 가격보다 훨씬 비쌀 뿐 아니라, 차량의 제작 과정도 사전에 어떤 곳을 어떻게 바꿀지 등을 상의하는 시간부터 실제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더해져 제품을 인도받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소요된다. 이처럼 비용이나 시간만을 따져보면 당연히 손해일 수밖에 없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위해 만들어진 차량을 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맞춤 제작에 대한 수요가 서서히 늘고 있다.

 

제네시스

제네시스의 제품들은 그동안 내장재나 색상 정도만을 선택해 변경할 수 있었으나, 최근 중동에서 ‘원 오브 원(One of One)’이라는 맞춤형 제작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주 수요층인 중동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희소성을 강조하는 맞춤형 제작 차량을 통해 어필하며 이를 바탕으로 프리미엄을 넘어선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모양새다.

제네시스는 이 원 오브 원 프로그램의 핵심이 ‘하이퍼-퍼스널라이제이션(Hyper-personalization)이라 밝히며 투톤 마감 컬러나 수작업 핀스프라이트 등 외장 색상은 물론이고 내장에 가죽, 나무 등 다양한 소재 및 헤드라이닝의 자수나 각종 장식 공예, 시트의 퀼팅 패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차량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 번째 원 오브 원 대상 모델은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모델인 G90 롱휠베이스로, 대통령 의전 등 VIP용 차량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BMW

2016년 남아프리카 예술가와 진행한 BMW 인디비주얼 7시리즈

BMW는 럭셔리 클래스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BMW 인디비주얼‘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고객이 자신의 취향 등을 고려해 외관 디자인이나 색상, 내장의 소재 등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주문 서비스로, BMW의 플래그십인 7시리즈의 750e xDrive, i7 xDrive60, i7 M70 xDrive 고객이면 선택할 수 있다. 고객은 모델 및 외관 디자인, 외장 컬러, 익스테리어 라인, 시트 소재 및 컬러 4개 항목으로 최대 22,000여 개의 조합을 구성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에서 선택 가능하고, 인디비주얼 전용의 M 스포츠 프로 패키지도 적용할 수 있다.

기간은 선택사항에 따라 3~6개월 이상 소요되며, BMW코리아에선 출고 대기 기간에도 인디비주얼 고객 전용 혜택을 제공한다.

 

메르세데스-벤츠

'페이커' 이상혁에게 전달한 AMG SL 63 로드스터

독일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에서도 ’마누팍투어(MANUFAKTUR)’라는 이름의 맞춤형 제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차량의 외장 색상이나 시트 가죽 종류, 스티치 모양까지 설정할 수 있고, 대시보드 소재, 시트 문양, 가죽 처리 등 다양한 요소들에 변화를 가해 특별한 한 대의 차량을 완성한다. 여기에 쿠션, 스티어링 휠, 트림 부품, 헤드라이터, 플로어매트 등도 심지어는 탑승자의 안전을 위한 방탄 차량으로도 선택이 가능하다고.

대상은 S-클래스(AMG 및 마이바흐 포함), EQS, AMG SL, G-클래스(AMG 포함), AMG GT 4도어 쿠페 등 상위 모델 중심으로 가능하다. 작업에 참여하는 장인들은 오랜 경력의 소유자들로, 작업에 투입되기 전 3년간의 교육을 먼저 이수해야 한다고.

 

아우디

아우디 역시 다른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아우디 익스클루시브 오더 프로그램을 통해 맞춤 제작이 가능하지만, 선택 폭이 좁은 편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차량의 내외장 색상을 원하는데로 선택할 수 있는데, 외장의 경우 최대 48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실내는 시트, 센터/도어 암레스트, 도어 트림, 대시보드, 도어 암레스트 등 지정된 부분에 한해 색상 변경이 가능하다.

대상 모델은 실내 색상 변경의 경우 A6과 A7(모두 기본형/S/RS 포함), A8(L 포함), Q7, Q8, RS Q8, e-트론 GT(RS 포함)이고, 외장 색상은 Q4 e-트론(스포트백 포함)을 제외한 나머지 차종에서 가능하다. 단 A6, A7, Q7, Q8은 50 TDI와 55 TFSI에 한해서만 색상 변경이 가능하다.

 

포르쉐

블랙핑크 제니와 함께 디자인한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포 제니 루비 제인'

포르쉐는 지난 2022년 블랙핑크 제니와의 협업을 통해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모델을 바탕으로 국내에선 처음으로 존더분쉬 프로그램으로 만든 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 포르쉐의 맞춤 제작 프로그램은 역사가 상당히 긴 편으로, 첫 모델인 356부터 고객 요청에 맞춰 리어 와이퍼를 탑재한 356 B 쿠페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1978년 본격적으로 특별 요청 부서를 만들어 엔진이나 서스펜션 튜닝 등을 고객의 요청에 맞춰 공급한 바 있다. 역사가 긴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단순히 액세서리를 추가하는 '태큅먼트'를 비롯해 공장에서 내장재 소재나 에어로 킷, 옵션 컬러 등을 변경해 제작하는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 그리고 희소성을 극대화한 '존더분쉬'가 있다.

존더분쉬를 통해 차량 구입 시 기본 선택 범위 외의 변경을 원하면 포르쉐와의 문의를 통해 개인 컨설팅을 진행하는데 신제품 외에도 보유 차량에 대한 커스텀도 가능하다고. 현실화가 가능한 변경의 경우 고객을 프로젝트 회의에 참가시켜 각 부서별 전문가들과 검토하는데, 준비 과정에서만 최대 1년의 시간과 10만 유로(차량 가격 별도)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 스펙터 루나플레어

맞춤 제작이 가장 활성화된 브랜드는 단연 롤스로이스로, 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내외장의 색상이나 소재 변경은 물론이고, 천장을 마치 밤하늘처럼 수놓은 것으로 유명한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 역시 롤스로이스 비스포크 프로그램을 통해 주문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높은 성장세에 힙입어 비스포크 프로그램 전용 공간을 서울 청담 쇼룸에서 운영하고 있고, 지난 달에는 영국 본사를 제외하고는 두바이와 상하이, 뉴욕에만 있던 프라이빗 오피스를 서울 송파구에 열었다. 이 곳에선 비스포크 디자이너와 고객 경험 매니저가 고객이 원하는 비스포크 서비스를 지원한다고.

여기에 비스포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코치빌드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적인 맞춤 제작이 색상이나 소재 변경 정도의 수준이라면, 코치빌드는 아예 차체부터 고객의 취향에 맞춰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초벌 디자인부터 마무리 디테일까지 수년에 걸쳐 지속적인 협력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벤틀리

벤틀리 플라잉스퍼 뮬리너

벤틀리는 ‘뮬리너’라는 맞춤 주문 부서를 별도에 두고 고객이 원하는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문 디자인팀과 함께 나만의 차량을 만들 수 있는데, 기본 차량 구매시 선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색상과 소재, 기능을 적용할 수 있다. 차량 주문시에는 벤틀리 공장을 직접 방문할 수도 있고, 온라인을 통해 협의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코치빌드 차량도 제작하고 있다. 판매중인 제품은 물론이고 가능한 경우엔 클래식 모델의 복각 모델도 코치빌드를 통해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고.

아무리 브랜드가 좋고 가격이 비싼 자동차라 하더라도 구입자의 감성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핸드메이드나 오더메이드 같은 제작 방식을 더 많은 고급 제조사들이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모두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 소비자들이 2%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아쉬움을 채워주고 브랜드의 인식도 한 단계 더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앞으로 자동차 제조사들의 이런 시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