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대나무순 회무침 한입·대나무향 밴 밥 한술 ‘竹이네’
땅기운 듬뿍 담긴 죽순 4~6월 채취
단백질 함량 높아 기력회복에 좋아
얇게 잘라 채소·양념장에 버무린 회
쌀·잡곡 넣고 찐 대통밥과 찰떡궁합
장아찌 담그거나 들깨볶음으로도 딱

이맘때 전남 담양 곳곳엔 대나무가 울창하다. 빽빽한 나무가 드리우는 초록빛 그늘 아래에서 댓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여름의 더위도 가시는 듯하다. 담양에선 이 대나무를 맛과 향으로도 느낀다. 신선한 죽순을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죽순회’로 입맛을 돋우고 대나무 통에 지은 ‘대통밥’으로 그 향기를 만끽한다.
죽순은 대나무 땅속줄기에서 나오는 어린 순을 말한다. 죽순은 진한 갈색을 띠는 여러 겹의 껍질에 싸여 있다. 껍질을 벗기면 연노란색 죽순이 드러나는데 아직 자라지 않은 마디가 선명하게 보인다. 40일만 지나면 이 마디가 자라 기다란 대나무가 된다. ‘우후죽순’이란 말처럼 비를 맞으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니 어리고 연한 죽순을 채취하려면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
죽순 제철은 4∼6월인데 죽순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국내에서 자라는 죽순 종류엔 맹종죽·분죽·왕죽 등이 있다. 4월초에 가장 먼저 맹종죽이 자라고, 5∼6월에 분죽(솜대), 6월말부터는 왕죽(왕대)이 큰다. 담양에서 많이 나는 죽순은 분죽과 왕죽이다. 분죽과 왕죽은 통통한 원뿔 모양인 맹종죽에 비해 얇고 길며 훨씬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을 가졌다.
땅의 기운을 듬뿍 받은 죽순은 예로부터 기력 회복에 좋은 식재료로 알려졌다. ‘동의보감’엔 “죽순은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죽순의 찬 성분은 열을 내리는 데 탁월하고 단백질이 많아 피로한 몸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죽순의 풍부한 수분과 섬유질은 장의 소화 기능을 도와 변비를 예방하고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한다.
죽순은 향이 강하지 않아 어느 요리에 넣어도 잘 어우러진다. 담양엔 죽순을 이용한 요리가 여럿 발달했다. 전이나 죽으로 먹고 들깨와 볶아 반찬으로 먹기도 하며 말려서 장아찌로도 담가 먹는다. 그 가운데서도 제철 죽순을 삶아 얇게 썬 뒤 초장에 찍어 먹거나 각종 채소와 버무려 죽순회로 먹는 게 가장 흔하다.

담양나들목 근처 한국대나무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식당 ‘송죽정’에선 35년 세월이 묻어나는 죽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어머니의 뒤를 이은 2대 사장 신경진씨(28)는 요리에 사용하는 죽순을 보여준다며 식당 뒤편으로 안내했다. 넓은 창고에 커다란 고무 통 여러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무 통을 열어보니 염장한 하얀 죽순이 가득하다. 죽순은 빨리 마르고 상하기 쉬워 대밭에서 캐자마자 삶아 먹거나 염장을 해서 보관해야 한단다.

“제철이 되면 동네 어른들이 대밭에서 캔 죽순을 사 가라는 전화가 물밀듯이 와요. 이때 새순이 올라온 지 얼마 안된 30㎝ 미만 크기의 죽순만 한번에 20∼30㎏씩 사서 삶아요. 옥수수수염 같은 구수하고 달큼한 향이 나면 꺼내서 찬물에 하루 정도 담가놓죠. 찬물에 넣어놔야 특유의 아린 맛이 빠지거든요. 그다음 왕소금에 염장해서 보관하면 1년 동안 부드러운 죽순을 먹을 수 있어요.”
신선하게 보관된 죽순으로 죽순회를 만든다. 죽순을 먹기 좋은 크기로 얇게 자르고 참나물·우렁이·오이를 넣어 초고추장으로 만든 비법의 양념장에 버무리면 완성이다. 회무침과 비슷해 보이지만 생선회 대신 아삭한 죽순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죽순회 못지않게 귀한 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대통밥이다. 대통밥은 굵은 대나무를 마디마디 잘라 그 안에 쌀·찹쌀·잡곡을 넣고 쪄낸 밥이다. 대통밥을 찌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린다. 한지로 입구를 감싼 대나무통을 25분 이상 압력밥솥에 찌고 10분 뜸을 들인다. 푸른색 대나무가 살짝 누런색을 띠면 꺼낸다. 대통밥 안쪽엔 대나무 막이 얇게 있는데 처음 본 사람은 한지가 붙어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처음 채취한 대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이 대나무 막은 대통밥의 향을 더욱 깊게 만든다.

죽순회와 대통밥이 한상 차려진다. 뜨거운 대통밥에서 나온 김 때문인지 은은한 대나무향이 밥상에 깔린다. 궁금했던 죽순회를 먼저 집는다. 너무 달지 않은 매운 양념맛이 혀를 스치고 이내 죽순이 아삭하게 씹힌다. 이 사이로 죽순의 촘촘한 결이 느껴지며 오래 씹으니 단맛이 올라온다. 삼삼한 죽순맛에 참나물향과 쫄깃한 우렁이가 잘 어울린다. 대통밥을 한술 뜨려고 잡으니 뜨거운 온기가 느껴진다. 찹쌀이 들어가 쫀득한 밥에 죽순들깨볶음·죽순된장찌개도 곁들여 먹어보자. 부드럽지만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어 먹는 재미가 있다.
올여름 더위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이 더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이 된다면 대나무향 가득한 음식과 청량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담양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