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7-3으로 LG제압,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전은 또 한 번 한화의 편이었다. 정규 우승 매직넘버 1을 남긴 LG가 마지막 불꽃을 터뜨리러 왔지만, 한화는 “여기선 안 된다”는 듯 차갑게 불을 껐다. 7대3. 스코어만 보면 평온하지만, 내용은 달랐다. 초반 흐름을 움켜쥔 뒤, 중반 승부처에서 집중력을 폭발시키고, 끝에는 불펜으로 문을 잠갔다. 가을야구로 가는 팀이 보여야 할 장면들이 9이닝 내내 촘촘히 이어졌다.

이 경기의 첫 주인공은 ‘대타 카드’도, ‘클린업’도 아닌 19살 슈퍼 루키 정우주였다. 비가 취소시킨 전날 탓에 에이스 폰세의 등판이 무산됐고, 한화는 하루아침에 선발 계획을 바꿔야 했다. 이런 날은 보통 “버티기”가 목표가 된다. 그런데 정우주는 버틴 게 아니라 ‘눌렀다’. 최고 155km, 평균 152km의 빠른 공로 스트라이크를 먼저 먹이고, 커브·슬라이더로 높낮이를 갈랐다. 3⅓이닝 무실점. LG 상위 타선의 1~4번이 모두 한 번씩 그의 공을 본 뒤에도 타구 질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1회 2사 1·2루의 첫 위기에서 문성주를 땅볼로 찍어 누른 장면은, 그저 구속만 빠른 신인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줬다. 어린 투수가 큰 무대에서 이런 리듬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을 끌어올리고(=유리한 카운트 확보), 승부구는 존 아래로 떨어뜨리는 ‘심플한 강약’이 있었다. 포수 최재훈의 프레이밍과 투구 순서 배치도 안정적이었다.

마운드가 틀어막아 주면 타선은 자연스레 눈이 트인다. 2회 노시환의 안타로 만든 불씨에 황영묵의 라인드라이브 2루타, 최재훈의 우전 적시타가 연속으로 붙었다. 공을 깔아 맞추기보다 ‘밀어 치기’ 타이밍을 노린 선택이 정확했다. 임찬규의 포심·커터가 몰릴 때 ‘뒤로 두고 반대로’ 보내며 배럴을 만들었다. 3회 문현빈의 질주도 컸다. 좌전 안타에 과감히 홈을 노려 세이프를 끌어낸 그 플레이는, 최근 몇 경기에서 반복된 LG 포수진의 송구·포구 흔들림을 정확히 겨냥했다. 이 한 점이 LG의 숨을 조금씩 조였다.

이날 한화가 특히 좋았던 대목은 ‘득점 후 이닝’과 ‘승부처 확장’이다. 3-1로 좁혀진 뒤 맞이한 6회, 보통은 조심스러워진다. 한 점이 더 필요하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다. 한화는 거기서 이닝을 키웠다. 문현빈 볼넷, 노시환 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들자마자 채은성이 초구부터 중전으로 쐐기를 박았다. 희생번트로 주자를 움직였고, 밀어내기 볼넷으로 상대를 끌어내린 뒤, 손아섭이 ‘가장 쉬운 공’을 기다려 깨끗이 중전으로 보냈다. 단타 두 방에 볼넷 하나를 섞어 4득점. “장타를 쳐야 한다”는 욕심이 없으니 삼진과 뜬공이 줄었다. 이게 가을야구형 빅이닝의 교과서다.

수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도윤의 다이빙 캐치, 노시환의 핫코너 처리, 중계 플레이의 송구 궤적까지, ‘한 번에 끝내는’ 장면들이 계속 나왔다. 이건 숫자에 안 찍히지만, 상대 공격의 턴을 줄이는 결정적 기술이다. LG가 8~9회 반등의 실마리를 못 찾은 것도, 이런 작은 수비들이 루를 묶어 뺏은 덕분이었다.

불펜은 ‘파도타기’ 운영이 빛났다. 조동욱–김종수–김범수–박상원–황준서–한승혁–김서현. 7명이 나와 각자 1이닝 안팎씩 맡았다. 상대가 라인업을 바꿀 때마다 투수의 구종과 무브먼트를 바꿔 타이밍을 계속 흔들었다. 특히 김서현의 9회 퍼펙트는 메시지였다. “우린 뒤도 단단하다.” LG 입장에선 남은 경기의 심리적 부담이 커졌다. 매직넘버는 그대로 1이지만, 대전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기억이 머릿속에 남는다. 야구는 기술의 스포츠이면서 기억의 스포츠다.

개인으로 보면 노시환의 3안타가 압권이었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상·하 방향으로 스윙 플레인이 흔들리지 않았고, 빠른 공·느린 공 모두에 배트가 적절히 뒤로 남았다. 시즌 막판에 컨택 일관성이 올라온다는 건, 포스트시즌에서 상대 배터리를 더 어렵게 만든다. 황영묵은 공격·주루·수비에서 ‘에너지 리더’ 역할을 했다. 2회 2루타와 6회 볼넷은 모두 카운트를 길게 끌고 가서 얻은 결과다. 최재훈은 투·타·수의 중심이었다. 초반 리드를 만든 1타점, 신인 투수들의 템포를 지켜준 리드, 그리고 홈 송구 플레이에서의 차분함까지, 베테랑의 무게는 언제나 득점 기대값을 높인다. 손아섭은 “상황 2타점”을 정확히 수행했다. 만루에서 욕심을 지운 낮은 스윙, 이게 팀 야구의 결론이다.

전략적으로도 건질 게 많다. 첫째, ‘폰세 공백’ 실험이 통했다. 정우주를 스타터 오프너처럼 쓰고, 좌·우타 구간에 따라 릴리버를 짧게 투입하는 플랜B가 실제 경기로 검증됐다.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로테이션 간격이 촘촘할 때, 혹은 비로 일정이 흔들릴 때 유효한 카드다. 둘째, ‘좌완 함덕주 타이밍’ 공략이 완성됐다. 한화는 함덕주가 들어오자마자 초구부터 중전으로 맞섰다. 좌완 상대로 초구 패스트볼 존-인 승부를 가져가는 것은 한화 상·중위권 우타자들에게 가장 높은 기대타율 선택지다. 셋째, 주루 사인이 과감했다. 영상 판독이 많았지만, 그만큼 “프레임 밖에서 한 발 더”를 시도했다는 뜻이다. 가을야구의 단기전은 한 베이스가 게임을 바꾼다.

물론 숙제도 있다. 5회 실점은 불리한 카운트에서 바깥쪽 실투가 높게 들어가며 맞은 장면이었다. 리드 폭이 있을수록 볼·볼로 시작하는 버릇을 경계해야 한다. 또 8회 무사 1·2루에서 추가점을 못 낸 건 아쉬웠다. 번트·컨택·땅볼로 최소 1점을 만들어 ‘마무리 소모’를 강제하는 루틴은 더 다듬을 부분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 아쉬움을 충분히 덮을 만큼 팀 전체의 템포가 좋았다.

이제 계산은 간단하다. LG는 남은 2경기에서 1무만 추가해도 1위다. 하지만 한화도 아직 포기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전승하고, LG가 모두 지면 동률 1위 결정전이다. 중요한 건 확률이 아니라 준비다. 오늘의 ‘다중 불펜’ 운영, 빠른 초구 공략, 주루 압박은 그대로 들고 가면 된다. 특히 초반 3이닝에 리드를 잡으면 LG 불펜은 로테이션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앞서면, 상대는 “내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 틈을 놓치지 않는 게 가을야구의 기술이다.

대전의 밤은 다시 한 번 한화에게 미소 지었다. 1만7천 관중이 만든 소리의 벽은 루키를 에이스처럼 보이게 했고, 베테랑을 더 베테랑답게 만들었다. 오늘 경기의 의미는 단순한 한 줄 승패가 아니다. “우리 방식으로 강팀을 꺾었다”는 집단의 기억을 심은 날이다. 매직넘버는 상대 손에 남아 있지만, 심리의 추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끝이 보이는 9월, 한화가 보여준 건 숫자 이상의 힘이었다. 이제 남은 건, 같은 야구를 한 번 더, 똑같이 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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