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호텔 프로젝트] 르네상스 시대 품은 이탈리아 마을서 ‘먹고 잠자고 휴식하라’
쇠락한 마을 2005년부터 변화
빈집들 객실·식당·도서관으로
침구·어메니티도 특산품 활용
관광객 늘어나 지역 경제 활기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2시간쯤 달리면 아브루치주 라퀼라 산토 스테파노 디 세사니오에 닿는다. 도시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을 전체가 16세기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다.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섹스탄티오 마을호텔(Sextantio Albergo Diffuso)’이다. 섹스탄티오 마을호텔은 2020년 미국 CNN이 선정한 ‘코로나19 시대에 가볼 만한 여행지’로 소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산토 스테파노 디 세사니오는 소멸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해발 1250m에 자리해 교통이 매우 불편한 데다 일자리가 줄면서 인구가 급속히 빠져나갔다. 건물 대부분이 텅텅 비었고 주거 환경이 악화해 결국 고령층 25명만 남게 됐다.
변화가 시작된 건 2005년이다. 밀라노 출신 사업가 다니엘 킬그렌 대표가 마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빈집 30여채를 고쳐 마을호텔로 변모시켰다. 오래 방치됐던 집들은 객실·식당·마사지숍·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 손님들은 마을 중앙의 베를 짜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프런트에서 체크인하고 밖으로 나와 객실로 걸어간다. 조식을 먹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갈 때도 동네를 가로질러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한다. 가장 멀리 떨어진 방과 방 사이 거리는 100m. 한 건물 안에서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호텔과 다른 형태다. 잠자고 먹고 휴식하려면 마을 전체를 누벼야 하는 셈이다. 불편할 법도 하지만 투숙객의 만족도는 높다. 마을 속살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옛집 한채가 객실 하나로, 모두 30개 객실이 있다. 1∼2인 여행객을 위한 원룸형, 지하실이 있는 복층형, 4인 가족이 머물기 좋은 2∼3개 방이 딸린 곳 등 다채롭다. 규모에 따라 4등급으로 나뉘고 요금은 성수기 기준 200∼500유로(28만∼71만원)다. 로마에 있는 4성급 호텔과 견줘도 비싼 편이지만 일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과거 식료품점이자 선술집이었던 건물은 역사를 살려 식당으로 고쳤다. 오전에는 투숙객만 이용하는 식당으로 쓰고 오후엔 당일치기 관광객도 들를 수 있는 와인바가 된다. 매일 아침 아브루치식 소시지와 지역특산물인 렌틸콩, 양젖 치즈로 만든 전통음식이 조식으로 제공된다. 전통식이 물릴 때쯤이면 마을 곳곳에 있는 식당으로 눈을 돌리자. 최신 유행하는 채식, 이탈리아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여러 곳이다.
섹스탄티오 마을호텔은 그 자체로 향토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박물관과 같다. 객실 내부 용품을 모두 지역특산품으로 채웠다. 1980년대 이전까지 인근에 양목장이 많아 울 생산이 활발했다. 이곳 울 제품은 품질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이같은 역사가 담긴 울 침구를 비치하고 아브루치산 올리브로 만든 비누와 화장품을 어메니티로 선보인다. 이런 서비스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제품을 사용해보고 구입하는 투숙객이 꽤 많다. 마을호텔은 객실과 프런트에 비치된 특산품의 특징과 구입처가 적힌 팸플릿을 두어 쉽게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파비아나 페데리카 섹스탄티오 마을호텔 상임이사는 “객실은 특산품 홍보 전시장이나 마찬가지”라며 “인구가 줄면서 전통문화와 공예품의 명맥도 끊길 위험에 처했는데, 마을호텔 덕분에 명맥을 이어가는 등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산토 스테파노 디 세사니오엔 활기가 넘친다. 마을호텔 덕분에 일자리가 생기면서 청년들이 돌아왔다. 현재 25명이 호텔리어로 근무하고 있다. 아리아나씨는 로마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기념품 가게를 운영한다. 소멸하던 마을이 관광지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감회가 남다르다. 그는 “마을호텔이 들어와 경관이 말끔하게 정비되고 더욱 안전해졌다”면서 “해마다 관광객이 늘어 수익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마을 인구는 120명이다. 30년 전 25명이던 것을 떠올리면 상전벽해 같은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다수가 창업하러 온 30∼40대 청년들이다. 산촌이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무대가 됐다. 몇년 전에는 개인 여행객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기업 워크숍, 결혼식 같은 단체 행사도 자주 열린다. 사람들이 북적이면서 지역 문화도 덩달아 되살아났다. 울 공예품 판매가 늘면서 목축업도 다시 번성하는 분위기다.
페데리카 상임이사는 “마을호텔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 경제가 더욱 살아나고 문화가 꽃피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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