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 역사 광장시장을 핫플레이스로 만든 빈대떡집 손녀
추상미 대표는 광장시장 토박이입니다. 57년 시장 터줏대감 상인의 손녀딸로 태어나,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3대째 가게를 운영 중이죠.
시장의 부흥을 바라보며, 추 대표는 되려 ‘생존’을 고민했습니다. 시장이 먹거리 위주로 획일화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시장이 오래 가려면,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가 그리는 ‘매력적인 시장’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Chatper 1. 빈대떡집 딸, 평범한 직장인을 꿈꿨다
시장은 추상미 대표 가족에게 집이자 일터였습니다. 1966년 할머니가 5남매를 이끌고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광장시장에 자리잡고, 나물이나 반찬을 팔아 자식들을 먹여 살리셨죠.
1990년대부터 할머니는 빈대떡을 팔기 시작했어요. 시장에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먹거리가 팔리기 시작했거든요. 가게 이름은 ‘박가네 빈대떡’. 추 대표 어머니의 성씨를 따 지었죠. 추 대표의 아버지가 힘들게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지은 이름입니다.
추 대표는 가족의 고생을 기억합니다. 할머니 무릎에 기대면 늘 파스 냄새가 났어요. 어머니는 시장 연탄불 옆에 쪼그려 앉아 백반을 삼키곤 했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추 대표는 발달장애를 가진 두 살 터울의 오빠를 돌봤습니다.
“직장인이 꿈이었어요. 저녁과 주말이 있고, 휴가도 가는 삶을 살고 싶었죠. 그래야 가정이 생기더라도 화목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아이에게 꿈을 키워줄 여유도 있고요.”
추 대표는 그저 평범해지고 싶었어요. 대학에 가고, 공공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죠.
하지만 2014년, 추 대표는 시장에 돌아옵니다. 가게 세무조사를 돕다 부모의 고된 삶을 목격했거든요.
“청계천 복원 후 광장시장이 크게 성장했어요. 박가네 빈대떡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회계 정리부터 직원 관리까지 할 일이 늘었죠.
문득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와 어머니의 희생으로 쌓은 50년을 이어가고 싶었죠.”
시장에 돌아온 이유는 또 있어요. 추 대표가 뒤늦게 전통시장의 ‘존재 이유’에 눈떴기 때문이에요.
“어른이 돼 시장을 드나들다 깨달았어요. 시장은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에요.
획일화된 마트나 백화점과 달리, 훨씬 ‘다채로운 모습’을 만들죠.”
Chapter 2. 노포의 선입견을 바꿔야 한다
고소한 녹두빈대떡 냄새에 이끌린 손님들로, 박가네 빈대떡은 늘 문전성시였습니다. 추상미 대표는 이들 손님이 느낄 만한 ‘불편함’에 주목했어요. 아쉬운 위생부터 표준화되지 못한 맛까지. ‘시장이니까 당연하다’는 인식이 신경 쓰였다고 해요.
“우리가 시장에 갈 때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깨끗하지 못한 화장실, 테이블, 부엌 등이 그렇죠. 일하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찾게 하려면, 시장 바깥의 식당과 견줘도 모자람이 없어야 했죠.”
바꾸는 게 어디 쉬울까요. 가게 이모들이 수십 년간 일해온 방식이 있는데 말이에요. 반발이 심했다고 해요.
“장사는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만 해도 벅차요. 하루 끝엔 다들 녹초가 되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죠.
접근을 다르게 했어요. 제가 직접 ‘좋은 사례’를 보여드리면, 이모들이 변할 거라 생각했죠.”
추 대표는 시장 가게의 ‘새로운 기준’을, 리모델링하는 2호점에 입혀나갔어요.
먼저 위생부터 손봤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시장 점포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했어요. 박가네 빈대떡은 가게 안에 남여 화장실을 만들었죠. 물비누와 핸드타월을 늘 채워뒀어요. 흡연실도 만들어, 담배 연기나 꽁초가 가게 주변에 퍼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단출한 메뉴를 탈피하기도 했어요. ‘빈대떡 삼합’이 대표적. 바삭하게 구운 녹두전과 매콤한 어리굴젓, 쫄깃한 편육을 한입에 먹는 세트 메뉴예요. ‘빈대떡집엔 녹두전, 고기전밖에 없다’는 편견을 없앤 거예요.
“금세 반응이 왔어요. 시장 노포답지 않게 깔끔하다, 메뉴가 재밌다는 말씀이 들려왔죠.
처음엔 ‘왜 이리 손이 많이 가냐’던 이모들도, 손님의 칭찬을 듣자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신 거죠.”
준비 기간만 일 년. 직원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면서도, 추 대표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확실해요. ‘시장에 이런 식당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힘들어도 매장을 새롭게 만들려 했던 건, 선례를 만들고 싶어서예요.
우리 매장이 강남이나 명동 길거리에 있었으면, 저희 장사만 열심히 하면 돼요. 하지만 시장은 상인이 함께 이끄는 공간이잖아요. 시장이 죽으면 다 같이 따라 죽는 거예요. 함께 잘 살 방법을 늘 고민해야죠.”
Chapter 3. 빈대떡을 브랜드로 빚어올리다
‘시장에도 브랜드가 필요하다.’ 팬데믹 당시 추상미 대표가 내린 결론이에요. 단순히 목 좋은 자리를 잡고, 맛난 음식 만들면 돈 버는 때는 지났다고 생각했어요. 텅 빈 광장시장이 그 증거였죠.
“천재지변만 탓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인데도 잘되는 가게가 분명 있었거든요. 카페 노티드나 금돼지식당 같은 곳은 언제나 문전성시였죠.
그때 생각했어요. 우리도 시장 밖으로 나가야겠다, 나가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되겠다.”
차례상 새벽 배송이 그 시작이었어요. 코로나로 시장을 찾는 게 꺼려진다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겠다’는 아이디어였죠.
추 대표는 시장의 폐백 음식점, 정육점, 강정집 등 여섯 가게와 손잡고 차례상 세트를 꾸렸어요. 빈대떡부터 참조기, 약과, 강정, 과일을 담아 추석 전날 새벽에 배송했죠. 준비한 물량을 전부 비웠어요.
유통 경험을 쌓아 간편식도 개발합니다. 전문 회사와 손잡았어요. 빈대떡에 돼지고기를 갈아 뭉친 완자를 얹은 ‘고기완자전’, 오징어와 새우 바지락을 올린 ‘해물빈대떡’을 내놓습니다. 토핑을 얹어 먹는 피자처럼, 빈대떡에도 재미를 준 거예요. 컬리, 코스트코에서 판매를 시작했죠.
“인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단 걸 배웠어요.
보통 ‘빈대떡’이라고 하면 명절에만 찾는 음식이란 인식이 강했어요. 하지만 빈대떡을 간편식으로 포장해 문 두드리니, 술안주나 간식으로 찾는 움직임이 늘었죠.”
빈대떡의 진화는 더 현대 서울에서 조금 더 구체화됩니다. 2021년, 추 대표는 더 현대 서울의 오픈과 동시에 박가네 빈대떡을 입점시켰어요. 젊은 세대를 모객하려는 백화점의 취지를 읽었죠.
베이컨 할라피뇨부터 치즈 불고기 빈대떡까지. 추 대표는 젊은 고객이 좋아할 만한 재료를 더해 ‘이달의 빈대떡’을 한정 메뉴로 내놓았어요. 2030 여성 고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주말 일찍 재료가 동나기도 했죠.
“어려운 시기에도, 많은 시장 상인분들께서 ‘희망’을 보셨어요. 전통시장도 바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걸 확인하신 거예요. 자리에 앉아 손님만 기다릴 게 아니라, 나가서 ‘경험’시켜야 한다는 것도 배우셨죠.”
젊은 감성으로 바꾸고 있는
추상미 박가네 빈대떡 대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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