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는 접지 말고 보관은 투명하게..러 점령지 합병투표 압도적 가결

조성진 기자 2022. 9. 2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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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도네스크인민공화국에서 공무원들이 투표함을 열고 투표지를 모으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27일 도네스크인민공화국의 한 투표소에서 주민이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도네츠크공화국 찬성률 99%…4개 지역 모두 90% 안팎

합병절차 속전속결…푸틴, 30일 합병 선언 예상

러, 영토 방어 명분 핵 위협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 편입하는 주민투표가 27일(현지시간) 지역별 최고 99%가 넘는 압도적 찬성률로 가결됐다. 투표가 진행된 지역은 약 9만㎢로,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5% 정도이자 포르투갈 전체와 맞먹는다.

러시아는 이들 지역의 영토 편입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는 30일 합병 선언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러시아는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핵무기도 쓸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는 상태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이번 투표를 ‘가짜 투표’로 규정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투표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및 루한스크(러시아명 루간스크)주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남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등 4개 지역에서 지난 23일부터 닷새간 실시됐다. 이들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개표 결과 영토합병안이 주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통과됐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잠정 집계된 지역별 찬성률은 DPR 99.23%, LPR 98.42%, 자포리자 93.11%, 헤르손 87.05% 등이다. 최종 결과는 앞으로 5일 내 확정된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현지를 점령한 가운데 선관위가 주민들을 방문하며 사실상 투표를 강요했으며 비밀투표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논란도 선거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다. 투표는 안전상 이유로 첫 나흘간 선관위가 주민들을 찾아가 투표용지를 수거하고, 마지막 날인 이날 하루만 투표소를 여는 식으로 진행됐다.

러시아는 지역별로 개표 결과가 나오고 영토 편입안이 가결되면 후속 절차를 서두를 것으로 전망되다. 영국 국방부는 “푸틴 대통령이 오는 30일 러시아 의회에서 상·하원 연설이 예정돼 있다”며 “이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러시아 연방 가입을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이 이날 밤 합병안을 발의하고 28일 이를 의결한 뒤, 29일 상원이 이를 승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름반도를 합병할 당시 투표부터 영토병합 문서 최종 서명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17일 주민투표 이튿날 푸틴 대통령이 합병조약을 체결하며 영토 귀속을 기정사실로 했다. 이후 의회 비준과 병합 문서 서명까지 절차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초 합병 투표는 11월 4일 ‘국민 통합의 날’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일정이 당겨졌다. 푸틴 대통령은 주민투표 일정이 결정된 이튿날인 지난 21일 동원령을 발동하는 한편 점령지의 자원병과 민병대에 법적으로 군인 지위를 보장하는 조치를 명령했다.

러시아는 영토 합병 이후 전쟁의 성격이 바뀌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 지금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특별 군사 작전’을 벌여왔다면, 앞으로는 자국 영토에 대한 침공을 방어하기 위한 사실상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는 영토 보전이 위협받을 경우 모든 자위력을 쓸 수 있다는 핵무기 사용 원칙도 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동원령을 발표하면서 “국가와 국민 방어를 위해 분명히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며 “이는 허풍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가짜 투표’로 규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사이비 투표를 정상으로 간주한 소위 크림반도 시나리오 실행에 이어 또다시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시도했다”며 “이는 현 러시아 대통령과 할 이야기가 없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주민투표는 가짜”라며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라고 썼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시행한 가짜 주민투표는 아무 정당성도 없고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해당 영토는 우크라이나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의 피터 스태노 대변인은 ”이 불법 투표 시행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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