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이어 디즈니플러스 역대급 작품으로 극찬받은 한국 드라마
‘사랑’이 사치가 된 시대에 오랜만에 정통 멜로드라마를 만났다. 기본에 충실한 진심에 승부수를 띄워 감성을 파고드는 드라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사랑이라 말해요]는 집안의 원수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던 여자와 그 대상이었던 남자가 사랑에 빠지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이야기다. 21세기 한국에서 재해석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
축 처진 어깨, 떨구어진 고개, 안아주고 싶은 굽은 등을 가진 남자가 있다. 일에만 빠져 있는 잘 생기고 키 큰 남자는 다 가진 듯 보여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랑에 가난한 남자다. 13살, 엄마의 바람으로 외롭게 자라 온 유년 시절을 "불행했다"라고 말한다. 엄마를 가장 큰 흠이라고 생각하는 외로운 사람이다.
세상 모든 근심과 슬픔을 혼자 다 지니고 있는 듯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출근하는 동진(김영광)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망하게 하고 싶은 여자의 복수 상대다. 어두웠던 삶에 빛이 되어 준 여자친구 민영(안희연)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가까스로 회복된 마음은 또다시 상처투성이가 될 위기에 놓여있다.
그 여자는 자신도 불행했노라고 고백한다. 17살, 아빠가 가족을 두고 딴 살림을 차린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렸다. 유망주 소리 듣던 양궁도 그만두고 언니와 남동생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통영에 있는 아픈 엄마를 대신해 실질적인 이 집의 가장이 되어갔다. 그러기 위해서 낭만, 꿈은 사치였다. 오로지 희생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것. 누구보다 잘 사는 일. 그게 가족을 버린 아빠를 위한 최대 복수라 믿었다.
무뚝뚝한 표정, 차가운 말투를 한 채 무미건조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화가 나면 참지 않고 폭발해 버렸다. 최근 20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틀 만에 쫓겨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우주(이성경)는 결심한다. 아빠에 이어 그 내연녀가 뺏어간 우리집을 되찾을 방법은 그 여자의 친아들에게 접근해 인생을 망가트리겠다고.
하지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의 짠하고 힘든 모습만 마주한다. 분노는 측은함으로 서서히 완화된다. 바보처럼 쓴소리를 듣기만 하지 하는 꼴을 못 봤다. 그 불쌍한 등을 쓸어주고만 싶다.
왜 당하고만 사는 걸까? 착해빠져서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는 건지. 복수를 위해 동진의 회사에 일부러 취업했지만 어쩐지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험악했던 복수는 결국, 아픈 사랑이라 말하게 된다.
요즘 이런 남자, 이런 여자 어디 있나?
시청 전 넷플릭스 [썸바디]의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가시지 않은 ‘김영광’은 완벽한 동진이 되어 있었다. 바싹 마른 얼굴과 몸은 그대로인데 살짝 굽어 있는 등과 그늘진 눈빛은 모성 본능을 일으켰다. 능력과 외모, 성격까지 겸비한 서글픈 워커홀릭. 어찌 이런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동안 김영광의 연기 캐릭터를 확장하게 만든 한동진은 초월한 아픔으로 닳아버린 남자였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같아 판타지로 느껴지기 다분했다. 착하디착한 마음씨를 가지고도 티 내지 않는 모태 착함을 장착한 남자는 어찌 보면 답답해보기도 했다. 요즘 ‘순수함’, ‘착함’은 호구 되기 십상이면서도 정글 같은 세상에서 낙오자가 될 게 뻔했다. 그 사람에게 제발 모질어지라고, 화를 내라고 직언하고 싶을 정도였다.
7년 만난 애인이 돌연 청첩장을 보내와도 술로 자신의 모자람을 탓할 뿐이다. 경쟁업체에 호되게 당할 뻔했는데도 절대 해코지하지 않는다. 엄마의 바람 잘 날 없는 연애사를 또 견뎌낸다. 늘 아들이 필요할 때만 찾지만, 묵묵히 자식의 의무를 다한다. 언제나 쌀쌀맞은 알바생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놓치지 않는다.
우주를 맡은 ‘이성경’은 세상 무관심한 눈빛과 말투는 중독성이 강했다. 츤데레와 K장녀의 성격을 갖춘 캐릭터로 삼남매의 둘째지만 의무감과 자립심이 강해 매력을 더했다. 행복했던 가족을 파탄 낸 그 여자의 아들을 쫓아 찐한 복수를 꿈꾸었지만 짠한 마음에 물들어간다.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동정은 연민으로 바뀌고 이내 사랑으로 커지게 된다.
극 중 남사친으로 나온 약사 윤준(성준)은 여성들의 판타지를 종합한 현대판 왕자님이다. 하지만 우주와 윤준은 서로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힘들 때 어깨를 내어주고, 아플 때 등을 도닥여 주는 지원군 윤준과 술친구일 뿐이다. ‘서로 연결되지 않을까..’ 알듯 말듯 한 감정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시청하게 만드는 기대 포인트였다.
주인공 우주 곁에 금사빠인 혜성(김예원)은 솔직한 감정과 넘치는 에너지로 우울한 상황을 상쇄한다. 동진 곁에는 공동대표 선우(전석호)가 있다. 동진과는 전혀 다른 활달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이 둘이 활약하지 않았다면 굉장한 무게감으로 짓눌려버렸을 모르겠다.
죽어있던 감수성, 심폐 소생한 설렘
[사랑이라 말해요]는 총 16화로 처음 3화를 공개한 후 일주일에 두 편씩 공개되었다. 초반은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중반부터 한 번 빠지면 끊을 수 없어 수요일만 기다렸다. 둘이 이어질 수 없을 거라 확신하는 순간, 매회 눈물을 흘리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화를 시청하기도 했다.
드라마는 남녀 간의 사랑을 큰 주제로 우정, 가족애로 경계를 넓히며 메말랐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뜨거움과 빠름이 지배하는 시대, 미적지근함과 느릿한 서사를 가지고도 천천히 이끄는 힘이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기점으로 남매들과 부모의 관계, 사랑에 관한 가치 차이, 회사 생활 등. 현실적인 배경 설정이다.
핑크톤의 화면은 오랜만에 죽어있던 연애 감성을 깨운다. 사랑을 시작하면 유행가 가사가 내 이야기 같고, 세상이 핑크빛으로 필터링 된다는 말이 맞다. 설렘 가득한 모먼트에 적재적소로 어울리는 OST는 로맨틱함을 끌어올린다. 연애 좀 해봤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섬세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실제 겪어 봤을 법한 연애 에피소드가 담겨 있으면서도 적절한 명대사로 과몰입을 유발한다.
동진과 우주를 맡은 김영광과 이성경의 케미가 폭발하는 작품이다. 평소 모델 출신으로 친분이 두터운 배우였기 때문일까. 큰 키의 두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시원한 장신을 자랑하며 어울렸다. 두 배우의 구멍 없는 인생 연기를 펼쳐 다음 작품이 기대되었다.
장담컨대! 로맨틱 코미디, 정통 멜로를 좋아한다면, 여운이 많이 남는 인생 드라마를 찾는다면, 막힘없이 완주할 것이다. 덤으로 배우들의 숨은 매력까지 얻어 가는 즐거운 시청이 되길 바란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사랑의 이해]를 재미있게 봤다면 추천하는 시리즈다. 덧, 당신은 어쩌면 캠핑을 취미로 가질지도 모른다!
에디터: N잡러 사진: 디즈니플러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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