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와 J컬처가 국경을 넘어 교차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집중 조명합니다. K브랜드의 일본 진출과 J브랜드의 한국 재진출 사례를 보며 양국 소비 시장의 연결고리를 분석합니다.

LG생활건강이 2023년 인수한 색조 브랜드 힌스가 일본 내 K뷰티 시장이 확장되는 가운데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LG생건은 중국 시장과 중고가 스킨케어 라인업을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20~30대 소비층과 색조화장품 분야에서는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가운데 힌스가 K뷰티 소비 축이 색조로 이동하는 흐름에 맞춰 일본 MZ세대의 감성을 정조준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로 부상했다. 전반적인 화장품 사업 부진으로 LG생건이 음료 계열사 매각을 검토하는 가운데 힌스가 K뷰티 재건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성장 중인 비바웨이브 '힌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힌스 운영사인 비바웨이브의 지난해 매출은 452억원으로 전년(276억원) 대비 63.7% 증가했다. 2019년 35억원이었던 매출은 2020년 94억원, 2021년 164억원, 2022년 217억원, 2023년 276억원 등으로 성장세를 이어왔다. 올해 상반기 기준 일본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2배 이상 성장하며 힌스의 해외 실적을 견인했다.
2019년 1월 첫선을 보인 힌스는 현재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일본에서 올리는 색조 전문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올리브영, 해외에서는 일본 주요 온라인 채널에 입점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운영한 일본 팝업스토어를 시작으로 도쿄(2022년), 오사카(2023년), 나고야(2024년)에 직영매장을 순차적으로 오픈했다. 현재는 백화점과 드럭스토어 등 총 1500여개 매장에 입점하며 오프라인에서의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대표 제품인 ‘로 글로우 젤 틴트’는 누적 판매량 200만개, ‘트루 디멘션 래디언스 밤’은 180만개를 돌파했다.
LG생건은 2023년 9월 힌스의 잠재력에 주목해 비바웨이브 지분 75%를 425억원에 인수했다. 앞서 회사는 2012년 일본 화장품 회사인 긴자스테파니를 인수한 데 이어 2013년 기능성 식품 통신판매 업체 에버라이프, 2018년 에이본 재팬을 사들이며 일본 사업 기반을 다져왔다.
비바웨이브는 LG생건에 편입된 후 수익성 측면에서도 전환점을 맞았다. 2024년 영업이익은 18억원으로 2023년(1억6000만원) 대비 1038.7% 증가했다. 인수 이전에는 손익분기점(BEP) 수준에 머물던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된 것이다.
K뷰티 색조 수요 커진 일본
일본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힌스가 K뷰티 전환점을 선제적으로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K뷰티는 기초화장품 중심으로 성장해왔지만 최근 K콘텐츠 확산과 더불어 개성과 정체성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나타나면서 다양하고 독창적인 색조 제품의 수요가 확대됐다.
LG생건 관계자는 “일본은 정교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알아보는 안목 있는 소비자들이 많은 시장”이라며 "힌스는 브랜드 특유의 세련된 감성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철학이 일본 소비자의 미감과 깊이 공명할 것으로 보고 초기부터 일본 시장에 공을 들여왔다”고 말했다.
실제 수출 지표도 변화의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산 색조화장품의 일본 수출액은 2020년 1억9687만달러(약 2742억원)에서 2023년 3억1662만 달러(약 4410억원)로 60.8% 증가했다. 이에 맞춰 국내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코스맥스는 올해 초 색조화장품 전용 공장인 평택 2공장을 본격 가동했고, 한국콜마 역시 세종공장의 색조 생산설비를 늘리고 있다.
뷰티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인의 맑은 피부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동안 스킨케어 중심의 수출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K팝·K드라마의 메이크업 트렌드가 주목받으면서 색조 제품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기능성과 색상 다양성에다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점이 소비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힌스 인수는 LG생건의 약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새로운 성장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그동안 회사는 ‘더후’ '숨37˚' 등 중고가 스킨케어 브랜드로 중국 시장에서 강점을 보였지만, 저가 색조 브랜드나 MZ세대 타깃 제품군에서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팬데믹 이후 중국 시장의 회복이 지연되면서 타격은 더 커졌다. 2023년 상반기 기준 LG생건 화장품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동기 대비 4.5%, 19.1% 감소하며 시장 다각화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힌스는 이러한 전략적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회사의 장기 포트폴리오 전략에서도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색조화장품을 주로 소비하는 MZ세대가 유입된 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킨케어와 프리미엄 브랜드로 전환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LG생건은 힌스 인수를 계기로 차별화된 색조 브랜드 기획 역량을 확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체 색조 브랜드 육성과 포트폴리오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생건 반등 카드 될까
힌스의 역할은 LG생건 화장품 부문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회사는 한때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국내 뷰티 업계에서 '양강 체제'를 형성했지만 중국 시장 부진과 트렌드 대응력 저하 등으로 성장이 정체됐다. 여기에 에이피알, 구다이글로벌 등 K뷰티 신흥 강자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며 경쟁 구도가 급변했다. 이에 올해 2분기 화장품 부문이 약 20년 만에 분기 기준 적자를 내면서 LG생건은 해태htb 매각을 검토하는 등 전반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일본 내 가파른 K뷰티 수요 증가는 힌스에 호재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의 일본 수출액은 10억3600만달러(약 1조4429억원)로 사상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1분기 수출액도 전년동기 대비 11.9% 늘어난 2억7000만달러(약 3760억원)를 기록하며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일본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K뷰티는 2022년 이후 점유율 30.1%로 3년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위인 프랑스(24.3%)와의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힌스는 고객층과 유통채널을 동시에 확장하며 일본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비바웨이브는 최근 일본 전국 1만6000여개 매장을 보유한 훼미리마트와 손잡고 18~25세를 주요 타깃으로 한 신규 브랜드 ‘하나 바이 힌스’를 론칭했다. 힌스가 25~35세 여성 고객을 공략했다면 하나 바이 힌스는 보다 젊은 연령층을 겨냥해 소형 사이즈, 합리적인 가격, 반짝이는 질감 등을 내세운 제품 라인업을 구축했다.
LG생건 관계자는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이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전략적 비전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도 한국 뷰티의 강점인 빠른 트렌드 분석력을 바탕으로 현지 MZ세대의 취향을 정교하게 반영한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리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