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탄호이저…100만원 티켓도 떴다, 뜨거운 오페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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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오페라 빅매치
하반기 오페라 시장이 유례 없이 뜨겁다. 최근 예술의전당 ‘오텔로’와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가 전초전을 치렀고,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 민간 프로덕션들의 ‘투란도트’ 빅매치에 플라시도 도밍고를 비롯한 스타들이 몰려온다. 서구의 메이저 극장들이 관객 노령화로 침체되는 반면 관객 저변 확대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돌파구를 찾는 걸까.
그럼에도 역사적인 무대였다. 환갑을 맞은 게오르규의 사실상 ‘마지막 토스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토스카의 대명사’답게 빛바랜 가창력을 연기로 커버하는 내공이 빛났고, 8년 만에 만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도 찰떡호흡이었다. 폭행 전력 탓에 비호감 신세였던 김재형은 해프닝 때문에 되려 ‘파바로티의 재림’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솔오페라단은 다니엘 오렌 음악감독의 지휘로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 개막공연을 세트째 가져와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1만석 규모의 KSPO돔을 채운다. 고전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감독으로 유명한 거장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프로덕션으로, 폭 46m에 높이 18m의 무대에 오케스트라를 제외한 출연진이 500여 명에 달하는 초대형 공연이다. 올가 마슬로바 등 세계적 스타 외에 한국인 최초로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타이틀롤을 맡은 소프라노 전여진도 만날 수 있다.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12월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간 7000석 규모의 코엑스홀에 ‘황금의 성’을 짓는다. 폭 45m, 높이 17m, LED 스크린을 활용한 무대에 200억 가까운 제작비를 쏟아붓는다. 올해 라스칼라 극장의 뉴 프로덕션을 만든 다비데 리버모어가 연출을,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쿠라 등이 지휘를 나눠 맡고,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등 14개국 오페라 가수들이 집결하는 페스티벌 스케일이다.
박현준 한국오페라협회장은 “유럽도 극장 시스템은 어렵고 페스티벌 콘텐트만 살아남는다. 매년 유명 가수들이 찾아오는 페스티벌 규모로 열어 세계 오페라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대형 오페라는 단점도 있다. 이용숙 오페라평론가는 “세계적인 가수가 내한해도 마이크를 써야 하니 관객이 원하는 소리는 아니다. 화제성을 낳고 저변을 확대하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품질 면에서 좋은 공연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정호 공연평론가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민간 자본이 스타를 동원한 전막 오페라의 고가 티켓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실내체육관과 이벤트 시설에서 어쿠스틱보다 볼거리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베로나 원형극장이나 브레겐츠 축제처럼 관광 자원을 활용한 야외 오페라의 아우라는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야외 오페라의 운치는 올해 3회째를 맞는 서울문화재단의 ‘한강노들섬클래식’ 축제가 담당한다.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로 꼽히는 비제의 ‘카르멘’(10월 19~20일)이 전석 무료인데, 지난해 ‘세비야의 이발사’가 야외 오페라의 각종 제약을 뛰어넘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줘 기대치가 훌쩍 높아졌다. ‘팬텀싱어’ 테너 존노의 전막 오페라 주역 데뷔도 화제다. 지난해 온라인 예매가 30초만에 매진돼 올해는 객석의 10%를 65세 이상을 위한 전화예매로 받았다.
국립오페라단의 행보도 같은 맥락이다. 원어 버전 전막 오페라로는 처음 제작하는 바그너 ‘탄호이저’(10월 17~20일)로 바그네리안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한다고 나섰다. 유럽 오페라계에서 주목 받는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의 2021년 대구오페라축제 ‘니벨룽의 반지’에 이은 바그너 재도전이다. 국립은 내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2027년 ‘니벨룽의 반지’ 등 바그너 시리즈를 이어간다.
올해 대작 풍년이긴 하지만 오페라 시장의 파이는 아직 작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상반기 공연시장 현황 분석에 따르면 성악 및 오페라 공연의 티켓 판매액은 전년 대비 54.8%가 증가해 다른 장르에 비해 상승세이긴 하나 절대적인 수치는 기악 공연의 절반 수준이다. 이용숙 평론가는 “코로나 기간 오랜 적체 탓에 공연이 많을 뿐 시장이 커졌다는 실감은 없다”면서 “세계적인 프로덕션이나 전설의 디바를 끝물에라도 보여주는 의미는 있지만 시장이 좋아지려면 매력적인 신작 프로덕션이 많아야 한다. 올해 ‘한여름 밤의 꿈’ ‘죽음의 도시’ 등 용감하게 현대 오페라 신작을 만들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처럼 레퍼토리를 확장해야 새 바람이 불 것”이라고 진단했다.
K오페라의 도약을 위해선 아티스트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손수연 오페라평론가는 “세계 오페라계가 불황이라 한국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외국 가수 초청을 넘어 콩쿠르에서 입상한 한국 가수들의 세계 주요 극장 진출이 많아져야 K오페라 르네상스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정호 평론가도 “세계적 톱스타들이 인정하는 오페라 지휘자가 정명훈에 머물러 있다”면서 “해외 지휘자에 의존하는 제작 시스템은 여전히 한국이 오페라 변방임을 보여준다. 해외 인력을 통솔해 전막을 끌고 갈 수 있는 오페라 지휘자 양성에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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