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덴버가 노래한 '천국 같은' 곳, 낙후됐기에 '순수'가 살아남았다

정영훈 외대산악부OB·재미대한산악연맹 워싱턴D.C 2023. 11.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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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끝)]
'Almost heaven'이란 이정표가 있는 포토스팟. 웨스트버지니아는 물론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4개 주가 사진 안에 다 있다.

젊은 층에서 강원도는 감자국, 제주도는 감귤국이라고 한단다. 특산물을 따서 친근하게 부르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웨스트버지니아도 별명이 있다. '마운틴 스테이트', 산 주다. 애팔래치안산맥이 통과해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과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국이 밀고 있는 별명은 사실 따로 있다. '천국 같은Almost Haven 이곳' 이다. 맞다. 존 덴버의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의 첫 구절이다. 노랫말처럼 산과 강이 가져다주는 풍광은 정말 천국에 가깝다. 겹겹이 쌓인 산과 그 사이로 흐르는 냇물이 만들어내는 경치는 아름답다. 웨스트버니지아주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애팔래치안산군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지형 중 하나다. 따라서 산세가 완만하다. 1,000m 남짓한 능선들이 구릉처럼 이어진다. 이곳에서 제일 높은 산은 스프로스 납Spruce Knob(1,500m)이다.

'Almost heaven' 이정표

암벽등반 성지 세네카 락

세네카 락Seneca Rock은 지리산 같은 능선 위에 솟은 암릉이다. 우뚝 솟은 바위산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대하지 않지만 뾰족 솟은 독특한 모양이 주변을 압도한다. 공룡의 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설악의 공룡능선이나 용아장성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암벽등반의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 동부에서 이러한 모양의 암장은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바위 모양이 마치 커다란 한 장의 기왓장을 세워 놓은 듯하다. 남북으로 평평한 바위가 세로로 서 있는 형상이다. 바위 높이는 약 300m다. 바위 꼭대기는 두 발만 겨우 올라설 수 있을 만큼 날카롭다. 칼날 바위 능선을 타는 리지 등반도 가능하다. 양 옆으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에 고도감이 높다.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심적 난이도가 높아질 수 있다. 1970년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등반하다 사망한 사람은 15명 정도라고 한다.

세네카 락에는 375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난이도는 매우 쉬운 5.0에서 최고 5.12까지 다양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특수 부대원들은 침투훈련을 위해 이곳에서 암벽등반과 하강 훈련을 했다고 한다. 바위는 흰색과 회색이 적절히 섞인 사암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화강암처럼 반짝인다.

세네카 락 정상부.

암벽 아래는 노스폭North Fork강이 흐른다. 맑은 물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낚시가 가능하지만 미끼를 사용하는 것은 안 된다. 오직 루어 미끼만 사용할 수 있다. 브라운 송어, 무지개 송어, 배스, 블루 메기, 락 배스 등 다양한 종류를 낚을 수 있다. 유속이 빠르지 않고 깊이는 무릎 정도다.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로 좋은 이곳은 가족 캠핑지로 유명하다. 노스폭강은 셰난도아강의 최상류 지류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은 동으로 흘러 포토맥강에 흡수되어 대서양에 닿게 된다.

세네카 락 인근 도로 옆에는 허술하게 조성된 식수대가 종종 보인다. 산에서 흐르는 지하수를 받는 곳이다. 플라스틱 병과 파이프로 어설프게 만든 약수터다. 마실 수 있는 물인지 궁금했다. 마침 주변에서 버섯을 따고 있는 제프라는 사내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이 물을 매일 마시고 있다고 한다. 그도 혹시나 해서 수질 테스트를 해보았다고 한다. 유해 물질은 없었지만 박테리아가 서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제프는 조상 대대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우연히 만난 주민 제프가 운지버섯을 채취하고 있다.

구름 Vs 칠면조 꼬리

내친김에 제프를 좀더 따라 가봤다. 그는 '칠면조 꼬리Turkey Tail' 버섯을 채취하고 있었다. 버섯이 마치 칠면조가 꼬리를 펼친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동양에서는 '구름버섯 또는 운지버섯'이라고 한다. 구름이 운집하는 모양을 연상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양인에게 칠면조 꼬리로 보이는 것이 동양에서는 구름으로 보인다. 같은 사물이 보는 이의 생각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우리의 이름이 좀 더 고상하게 들린다.

제프 말에 의하면 칠면조 꼬리 버섯은 항암작용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는 버섯을 달여 마신다고 한다. 실제로 운지버섯은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면역을 증가시켜 암 세포 증식을 막아 준다고 한다. 버섯에 있는 폴리사카라이드라는 성분이 암세포 전이를 억제시키는 것이다. 유방암, 위암에 효과가 있고, 특히 장내 박테리아 균형을 만들어 대장암에 좋은 효능을 나타낸다고 한다. 에이즈를 억제하는 약제가 되기도 한다.

제프는 애견 '차가' 와 함께 버섯을 따러 다닌다. 그의 버섯 사랑은 강아지에게 버섯 이름을 붙여줄 정도다. 시베리아 또는 알래스카에만 있는 줄 알았던 '차가버섯'이 이곳에도 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스프로스 넙 지역이 야생 차가버섯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조지 워싱턴이 목욕한 버클리온천.

웨스트버지니아인과 석탄

초입에 감자국, 감귤국 얘길 했다. 어떨 땐 정말 감자만, 감귤만 먹고 사는 시골 취급을 하는 멸칭으로 쓰여 도민들이 기분 나빠할 때도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웨스트버지니아 사람들은 미개지에 사는 촌뜨기로 취급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거친 자연 환경을 극복해 온 강인한 사람들이다. 이곳에 온 초창기 이민자들은 영국 여왕의 명을 어기고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영국 여왕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해안선 인근의 땅만 원했다. 절대로 셰난도아강을 건너지 말고 애팔래치안산을 넘지 말라고 했다. 정착지가 확장되면 군사, 행정 비용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식민지 농민들은 담배 농사를 위해 새로운 땅이 필요했다. 담배는 수확 후 얼마동안 농지를 쉬게 해주어야 한다. 생존이 급한 그들에게 쉴 여유는 없었다. 새 땅을 찾아 나선 것이다.

지금의 웨스트버지니아는 낙후된 촌락으로 전락했지만 이곳은 미국이 지금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도록 원동력을 제공해 준 곳이다. 애팔래치안 지역에서 나오는 양질의 석탄이 미국 경제부흥을 이끌었다. 엄청난 석탄 매장량 덕분에 미국의 산업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석탄 생산지는 동부 산업 중심지들과 인접해 있다. 따라서 채굴과 운송이 용이해 석탄 생산 비용이 적었다. 화물선, 철도, 발전소는 엄청난 양의 석탄을 필요로 했다.

버클리온천 인근 둔덕에 올라 바라본 풍경

이곳 사람들은 탄광 일을 천직으로 생각해 대물림하며 살았다. 석탄이 가져다주는 부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함께 석탄을 캐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삶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옥토버 스카이October Sky'에 잘 나온다. 영화는 1950년대 웨스트버지니아 콜우드Coalwood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호머'는 로켓 과학자가 되고 싶지만 아버지는 반대한다. 아들도 자신처럼 광부가 되길 바란다. 아버지는 평생을 산속에서 석탄만 보고 살았으니 오직 석탄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애팔래치아 너머 동쪽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존 덴버는 웨스트버지니아 사람들의 석탄과 함께하는 삶을 표현했다. 'Miner's Lady, Stranger to Blue Water광부의 아내는 푸른 바다 한 번 보지 못했고, Dark and Dusty Painted on the Sky어둠 오고 잿빛 먼지가 하늘을 덮는다'고 말이다.

1960년 이후 석탄 산업은 사양길을 걷는다. 지금 웨스트버지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고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영화 속 호머는 성공해서 나사NASA의 과학자가 된다. 그렇지만 그가 살았던 콜우드는 이제 석탄을 캤던 흔적만 남아 있다. 도시는 이미 몰락한 지 오래다.

사람들은 웨스트버지니아가 예전처럼 인구도 늘어나고 활기를 찾기를 바란다. 그래서 '거의 천국과 같은' 이곳으로 오라고 홍보한다. 그중 하나가 억만장자로 알려진 존 콜터다. 회계 관련 소프트웨어 회사 '퀵 북스Quick Books'와 '터보 택스Turbo Tax'의 창립자다. 그는 어센드Ascend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웨스트버지니아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

버클리성.

이 프로젝트는 2020년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시기라 이들을 정조준했다. 그는 웨스트버지니아로 이사 오는 사람에게 2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 또 골프, 승마, 스키, 래프팅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준다고 했다. 올해도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벌써 3년째 진행되고 있다. 아름다운 고향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여담이지만 나도 지난해 신청했다. 웨스트버지니아에 한국 문화를 전달해 지역 사회의 문화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신청동기를 적었지만 선정되지는 못했다.

사랑이 만들어 낸 거대한 성들

이곳의 광부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석탄으로 모든 경제가 움직이던 시절 그들은 땅을 소유하지 않고 도시에서 온 자본가들에게 넘기게 된다. 자본가들은 돈을 벌고 노동자들은 자본의 노예가 됐다. 주정부는 석탄으로 얻은 부를 다른 산업에 투자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석탄 산업이 영원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산업화에 실패한 케이스다. 결국 웨스트버지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주가 되었다. 덕택에 아직도 오지의 산골 마을이 남아 있고 자연 그대로의 순수가 있다.

등산 후에 온천물에 땀을 씻는 기분은 '거의 천국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산골 마을 버클리 스프링스Berkey Springs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23℃ 온천수가 분당 1,000갤런씩 솟아난다. 온천수는 주정부 소유이고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 방문자들은 노천에 흐르는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이곳을 방문해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이곳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는 친구들과 함께 100채 이상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매입했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이 목욕했다는 우물 뒤 언덕에는 버클리 성Berkley Castle이 있다. 대부분의 고풍스러운 성들은 '미녀와 야수' 같은 흥미로운 사랑이야기를 갖고 있다. 여기도 있다. 사무엘 스위트Samuel Suite는 남북전쟁에 참전한 장군이며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는 앨라배마주 하원의원 딸 로사Rosa를 처음 본 후 사랑에 빠진다. 그의 나이 46세였고 로사는 겨우 17세였다. 처음에는 거절당했으나 5년간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

버클리성 앞 성난 사자 조각상.

사무엘은 로사를 위해 언덕 위에 성을 짓기로 한다. 당시 미 국무부 건물을 디자인한 사람이 건축을 맡았다. 인근의 사암 원석을 채굴해 마차로 운송해 자재로 썼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무엘은 성이 완공되기 전에 사망한다. 로사는 완공된 성에 살면서 매일 파티를 즐기게 된다. 사치가 계속되니 곧 그녀는 형편이 안 좋아지게 된다. 결국 성은 다른 사람 소유로 넘어간다.

또 괴담도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보이지 않는 손과 발'이 있다고 믿는다. 가끔씩 아무도 없는 2층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가구들이 재배치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이곳은 일반인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고 결혼식 같은 행사만 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부자는 연인을 위해 성 하나 정도 지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보다. 사랑에 빠진 억만장자의 이야기는 뉴욕주와 캐나다 사이로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강에는 수천 개의 섬들이 있다. 그래서 '천 섬Thousand Island'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섬들은 개인 소유로 섬 안에 각자의 취향에 맞게 집을 지어 놓았다.

조지 볼트George Boldt는 뉴욕에 있는 세계적인 월도프 호텔Waldorf Astoria Hotel의 주인이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섬 안에 6층 크기의 방 120개짜리 성을 짓기로 한다. 그러나 공사 시작 몇 년 후 그의 아내는 갑자기 죽게 된다. 사랑과 희망을 잃은 그는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았고 건축 공사는 중단되었다. 성은 미완성 상태로 방치되었고, 73년 후 정부가 소유권을 넘겨받아 건물을 완공시킨다. 이곳은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고 천 섬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건선 치료 위해 온천 찾아

나도 버클리 스프링스를 찾았으나 앞서 살펴본 억만장자들처럼 사랑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피부에 발생하는 건선 자가면역 질환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피부는 일정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런데 면역계가 잘못되면 살아 있는 피부를 죽은 것으로 인식해 계속 피부를 만들어낸다. 전염성은 없으나 사람들에게는 피부병처럼 보인다. 건선은 성경에도 나오는 오랜 질병이다. 아직도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고 한다.

십수 년 전 어느 날, 불과 몇 분 만에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 붉은 반점은 넓어지고 두터워졌다.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겨울이지만 혹시 치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닷물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약도 바르고 태양광 치료도 받았지만 무효했다. 그래서 온천욕이 피부질환에 좋다기에 이곳을 찾았었다.

온천은 우리가 흔히 아는 대중 온천탕이 아니다. 입장객에겐 각자 방이 주어진다. 방에는 가슴 깊이의 커다란 욕조가 있다. 개인 욕실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온천욕을 즐기는 형식이다. 쓰고 남은 물은 버려지고 욕조에 다음 손님을 위해 온천수가 다시 채워진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 정도 즐길 수 있다.

다행히 건선은 몇 달 후 씻은 듯이 없어졌다. 고백하자면 온천 치료 덕분은 아닌 듯하고 스트레스 덜 받기 위해 마음을 평안히 갖고자 노력한 것이 큰 효과를 본 것 같다.

웨스트버지니아는 산과 강과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 방문자를 즐겁게 해준다. 이곳이 자연 그대로 원시성을 잃지 않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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