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미술치료 권했는데…실손보험 지급 거부, 부모들만 속타

신찬옥 기자(okchan@mk.co.kr) 2023. 5. 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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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청구 수십 수백배 늘어
“미술음악치료는 의료행위 아냐”
불법행위 늘자…보험사들, 형사고소도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
서울시내의 한 소아 청소년 상담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입구에 발달장애·언어지연 등 진료 과목이 표시돼 있다. [박형기 기자]
최근 2~3년간 아동 발달지연 관련 실손 보험금이 급증하자 ‘놀이치료’와 ‘미술치료’에 실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보험사가 나왔다. 보험금 지급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일부 보험사는 형사고소까지 착수했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보험사들은 의료 행위가 아닌 만큼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장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의료기관과 실손 가입자들에게 미술·음악치료사의 치료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치료비용은 회당 7만~10만원에 달한다. 의료법과 의료기사법에 따르면 의료인과 간호조무사, 의료기사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만 포함된다. 민간자격증을 가진 미술·음악치료사나 임상심리사의 치료는 의료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이 의료기관 부설센터에 근무하는 것도 불법이다.

현대해상이 비난을 무릅쓰고 초강수를 둔 것은 일부 병·의원에서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아동 재활센터’를 실손 보험금 편취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코로나 19로 언어발달이 지연된 아동들이 늘었고, 최근 TV 프로그램 등으로 부모들 관심이 커진 것도 보험금 지급이 늘어난 원인”이라면서도 “몇몇 의료기관에서 1년새 보험금 청구가 수백 배 늘어나는 식으로 수상한 정황이 포착돼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약 50억원 수준이던 현대해상의 발달지연 관련 지급보험금은 2021년 380억원으로 4년새 8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보험사로 추산해 보면 작년 한해에만 약 1100억원이 발달지연 치료 보험금으로 지급됐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이충우 기자]
다른 보험사들도 관련 보험금 지급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추세다. B손해보험사는 지난 4월 총 15곳의 아동 발달지연 치료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B사를 포함한 보험사 7곳, 9곳이 공동으로 형사고소 2건도 진행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발달지연 의료기관을 형사고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에서도 사기 정황을 포착하고 이들 의료기관 외에 다른 의료기관 10곳에 대해서 내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보험사에는 의료기관 부설 발달 센터의 불법 행위를 고발하는 부모들과 센터 종사자들의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주요 병의원에 ‘발달센터’ 신설을 권하며 실손 보험금 편취를 유도하는 전문 브로커 조직도 경찰과 보험사기 수사팀에 포착됐다. 일부 병의원에서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자폐(F코드)’ 대신 고의로 R코드를 진단해준 정황도 있다. 당장 실손 보험금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달센터에서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칫 치료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치료 제공인력 자격기준’이라도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실손보험금은 의사와 브로커가 챙기고 발달이 느린 부모와 아이를 보험사기 공범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수법보다 악랄하다. 게다가 병원 부설 발달센터가 실손 보험금을 마케팅 도구로 환자는 물론 인력까지 빼가면서 사설 발달센터들은 삼중고에 시달리는 중이다.

재활 전문가들은 최근 우후죽순 개원한 ‘병원 부설 아동 발달센터’를 제대로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 발달지연 치료센터 소장은 “사설치료센터의 경우 발달재활이나 교육청 바우처를 앱으로 실시간 결제를 해야 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아 부당청구는 꿈도 못꾼다.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병원 부설 발달센터에서는 왜 그런 엄격한 관리가 안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발달지연 재활 전문가도 “자폐나 지적장애는 오랜 연구결과가 쌓여 있어 충분한 진단이 가능한데, 최근 R코드가 남발되고 있는 것은 실손보험금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병원 부설 센터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실손보험금 편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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