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대 제자가 전한 ‘훈훈’ 미담…“한강, 그 자체가 노벨상 받을 만한 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이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훈훈한 미담이 전해졌다.

한강 작가의 제자라고 밝힌 김모(30대 중반) 씨는 지난 1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장애인인 저를 한강 교수님은 늘 마음 깊이 챙겨주셨어요. 사고로 제가 큰 수술을 받았을 때도 병원에 찾아오셔서 금일봉까지 놓고 가셨습니다”며 “늘 고마운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명 등 개인정보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김씨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생으로 “한강 교수님의 제자”라고 소개했다. 한강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이 학교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그는 2010년대 초반 서울예대에서 한강의 소설창작론 수업을 들은 뒤부터 사제의 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문학이 좋아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에도 책을 점자나 컴퓨터의 음성인식기능을 이용해 읽어야 하는 등 학업이 쉽지 않았지만 당시 한강 교수가 배려를 많이 해줘 학교생활을 뜻깊게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루는 한강 교수가 불러서 교수실로 갔더니 수업과 학교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세심하게 물어보며 자연스럽게 당시 작가의 최신작인 소설 ‘희랍어 시간’(2011년) 얘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해당 작품에는 김 씨처럼 시각을 잃는 이가 등장한다.

김씨는 기억에 남는 가장 고마운 순간은 2019년 사고로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은 직후 한강 작가가 병문안을 왔을 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앞을 보지 못하는데 거리를 걷다가 난간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4ｍ 아래로 추락하면서 크게 다쳤다”며 “큰 수술을 두 차례 했는데 교수님이 병원까지 찾아오셔서 걱정해 주셨고, 나중에는 아버지께 금일봉까지 주고 가신 걸 알게 됐습니다. 정말 고마운 분이죠”라고 말했다.

수술 이후 김씨는 하반신이 마비되는 지체장애를 앓고 있다.

서울예대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배너. [사진 출처 = 서울예대 홈페이지 갈무리]

한강이 서울예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김씨가 졸업한 뒤에도 둘은 사제의 연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는 “교수님은 장애인 극단이나 연출가분들도 꽤 아시는데 제게 ‘이런 데 일해보지 않겠느냐’며 일자리를 주선하시기도 했다”며 “작년 겨울에도 교수님이 초청해 주셔서 장애인들이 만든 공연을 서울 시내에서 함께 보고 식사도 같이했다”고 전했다.

이어 자신이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글을 계속 써보라”는 한강 교수의 말은 늘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기쁘고 또, ‘받을 분이 받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변했다.

이어 “작품도 작품이지만 한강 교수님 그 자체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늘 흔들리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좋은 분이거든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고서 고민하다가 사흘 뒤 한강 작가에게 축하 메시지를 건넸다. 한꺼번에 축하 메시지가 쇄도할 것이 뻔해서 망설였다고 한다.

김씨는 “교수님은 글로 세상을 바꾸신 것 같아요. 제게는 교수님이 제 인생과 저희 가족을 살려주신 귀인이십니다. 병원에 누워서 하반신 마비 판정 받았을 때 정말 살 희망이 없었는데 교수님께서 와주셨을 때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다시 힘을 내서 지금의 제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요. 교수님은 그 상(노벨문학상)을 넘어 한 사람과 한 가정을 살려주신 귀하신 분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한강은 “고마워 ○○(김씨의 이름)!”이라고 답장했다. 제자에 대한 깊은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