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책 사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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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와 2위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이다. 3위는 익명의 한국인 작가가 쓴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 4위가 이기주 작가(49)의 산문집 '언어의 온도'다(교보문고 집계). 이 책은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에 올랐고 현재까지 170만 부가 나갔다.
이렇게 사재기한 책은 모두 1631권으로 범행 기간 전체 판매량(1만1135권)의 1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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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 의혹을 받는 책은 2024년 출간된 산문집 ‘보편의 단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작가는 그해 3∼7월 예전에 자신의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 대표에게 돈을 주고 전국 교보문고 매장을 돌며 이 책을 사들이게 했다. 이렇게 사재기한 책은 모두 1631권으로 범행 기간 전체 판매량(1만1135권)의 14%다. 사재기 이후 교보문고 분야별 판매 순위는 3∼4위권에서 2∼3위권으로 올랐다고 한다.
▷유명 작가 작품의 사재기 의혹은 2013년 한 출판사가 황석영 작가 몰래 소설 ‘여울물 소리’ 사재기 파문을 일으킨 지 13년 만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재기는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는 것이 출판계 지적이다. 하루에 발간되는 신간은 약 180권. 대다수 독자들은 남들이 많이 산 책을 고르고, 작가와 출판사로선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야 독자 눈에 띌 기회를 얻는다. 출판 시장이 작아 하루 판매량이 300권만 돼도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 수 있으니 가성비 좋은 홍보 수단인 셈이다.
▷사재기 수법은 단순하다. 직원이나 알바생을 고용해 대형 서점을 돌며 책을 사는 ‘방문 사재기’가 고전적 방법. 온라인에선 가상 계정을 동원해 여러 아이디로 쪼개기 구매를 한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 한 명이 여러 권을 사도 판매 집계에선 한 권만 계산된다. 저자 사인회나 북콘서트에선 참가자들이 책을 사면 책값을 보전해주는 수법이 쓰인다. 사재기한 책들은 서점의 도장을 지우거나, 지우기 어려우면 도장이 찍힌 밑면을 2∼3mm 잘라낸 뒤 재유통시킨다. 같은 책인데 키가 작으면 사재기했던 책이라 의심해봐야 한다.
▷지난해 성인이 1년간 읽은 종이책은 평균 1.3권으로 20년 전(9.1권)보다 크게 줄었다. 책 사는 데 쓴 돈이 가구당 월평균 1만826원밖에 안 된다. 단행본은 3000∼6000부 팔리면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소설가는 5000부 나가면 ‘한국 문학의 기대주’, 1만 부면 ‘한국 소설의 미래’, 3만 부쯤 되면 ‘대세 작가’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좋은 책은 독자가 만들고, 베스트셀러는 출판사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독자가 없다 보니 좋은 책은 드물고, 고작 1600부에 순위가 달라지는 베스트셀러만 양산되는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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