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죽고 살기’ 아닌 ‘먹고 살기’ 국감

김재태 편집위원 2024. 10.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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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1개 2790원, 무 1개 3590원, 양배추 1포기 3990원, 열무 한 묶음 4990원, 시금치 한 봉지 4990원.

이 가격들이 말해주듯, 외식은 차치하고 소박한 김치·나물에 집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이젠 보통 일이 아니다.

한 예로,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본과 한국의 대형마트 식품 가격을 비교해 알려준 내용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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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애호박 1개 2790원, 무 1개 3590원, 양배추 1포기 3990원, 열무 한 묶음 4990원, 시금치 한 봉지 4990원. 지난 주말, 자주 가는 대형마트의 매대에 붙은 채소류 식품의 가격표다. 비싸기는 과일 값도 마찬가지였다. 추석을 앞두고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혀를 내두르게 했던 사과는 그나마 조금 내려 2kg에 1만1990원이던 것을 세일 가격으로 9600원에 팔았다. 그래도 거의 1만원대다. '금(金)배추'라는 별칭까지 얻을 만큼 값이 치솟은 배추의 위세 또한 여전했다. 1포기에 9990원이었는데, 그 값이 판매자 쪽에서도 짐짓 저어됐던지 7992원이라는 가격표로 바뀌어 있었다. 할인된 가격조차 이 정도이니 김장을 앞둔 가정들의 시름이 더 깊어질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이 가격들이 말해주듯, 외식은 차치하고 소박한 김치·나물에 집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이젠 보통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이 엥겔계수(일정 기간 가계 소비지출비 중 식료품비의 비율)와의 싸움이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똑같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으니 속상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본과 한국의 대형마트 식품 가격을 비교해 알려준 내용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었다. 일본에선 자주 먹는 우유나 일부 채소류 값이 한국에 비해 거의 3분의 1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먹거리 가격이 비싸다는 건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니다. 기후 탓에 작황이 나빠지면 판매가가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출렁이기를 예외 없이 반복한다. 그런데도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정치권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헛발질만 계속할 뿐이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해보라고 국정감사라는 멍석이 깔린 이 시점까지도 그렇다. 여야가 온통 '김건희 여사 문제' '명태균 의혹' 등에만 매달려 죽고 살기 식의 정쟁을 하느라 금쪽같이 아까운 국감 기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노동진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회장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나마 지난 10월7일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질의응답이 있기는 했다. 한 의원이 시중에서 팔리는 한우 세트를 직접 가져와 들어 보이며 장관에게 축산물 이력 관리의 부실을 따졌고, 또 한 의원은 배추를 들고 와 추석 때 배춧값이 폭등한다고 해서 할인 지원을 했는데 왜 또 가격이 올라있느냐고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큰 반향은 없었다. 이마저도 국감장에 소품을 들고 와 보여주기 위주의 질문에 치중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을 뿐이다.

지금은 '특검 공방' '정치 의혹 캐기'와 관련한 국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할 일은 국민들의 '먹고 살기'다. 정치권이 말하는 '끝장국감'도 다른 것이 아닌 민생에서 끝장을 보아야 한다.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청문회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민생을 다루는 청문회라는 얘기다. 높은 물가를 잡는 데 필요하다면 먹거리 생산자나 중개업자, 판매자들을 국회로 불러 현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끝장까지 나아가야 한다. 국감 기간에만 마치 숙제하듯 매달려서 될 일이 아니다. 진짜 민생은 누구나 알다시피 국민들이 큰 부담·걱정 없이 가장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필요충분조건을 갖춰주는 것이다. 여러 정치 이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국민의 밥상이고, 지금은 단순히 '먹사니즘' '민생 지키기' 같은 구호를 넘어서 꼭 필요한 행동이 나와야 할 때다. 한국 사람이 고기를 사먹고 싶어도 한우는 엄두조차 못 내고 수입육이나 힐끗거려야 하는 현실이라니!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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