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전자 물려받아 둘다 배우됐는데.. 동생은 톱스타, 본인은 생활고 겪는 무명배우

선 굵은 얼굴, 그리고 강한 이름

허장강.

한국 영화사에서 이 이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다.

'피아골', '춘향전', '오발탄'까지,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때로는 악역으로, 때로는 소시민으로 관객 앞에 섰다.

"우심뽀까?"(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같은 대사는 시대를 넘어 유행어가 됐고, 그의 연기는 대사를 넘어 '얼굴 자체가 서사'였다.

배우로서의 자존심도 강했다.

녹음실에서 성우가 더빙을 하던 시절, 본인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했고, 촬영장에도 한 번 늦은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1975년, 연예인 축구대회 도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 그 이름은 전설이 됐다.

그날, 행사에는 의료진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생명을 지켜낼 장치조차 없었다.

장남 허기호, 이름보다 삶이 앞섰던 사람

허기호는 허장강의 장남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학업을 마치고 안정적인 직장인 IBM에 들어갔다.

남들이 부러워할 회사였지만, 마음 한구석엔 연기를 향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1978년 데뷔한 허기호.

얼굴은 아버지를 닮았고, 연기력도 인정받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전자상가에서 냉장고를 나르기도 했다.

배우보다 '집안의 가장'이라는 이름이 먼저였던 시간들. 그래서였을까.

뒤늦게 연극 무대에서 조금씩 걸음을 옮기며 자신만의 속도로 연기를 이어갔다.

비교의 시간, 동생 허준호

허기호에게 동생 허준호는 이복동생이자,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12살 어린 막내. 어릴 적에는 귀여워서 등에 업고 다닐 만큼 아꼈던 동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허준호는 '주몽', '왜 오수재인가', '킹덤' 같은 작품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고, 허장강을 닮은 얼굴과 기세로 사랑을 받는다.

사람들은 '허준호가 허장강의 아들이래'라고 말했지만, 정작 형 허기호에겐 “형도 배우였대”라는 말이 전부였다.

비교가 될수록 자존심이 상했고, 마음 한구석은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허기호는 지금도 무대에 선다.

관객은 많지 않아도, 그는 아버지처럼 말한다.

“선한 역할이든, 코믹한 역할이든, 감정을 진하게 전달하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그 말 안엔 배우로서의 열망과, 가족이라는 짐을 짊어졌던 시간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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