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떠난 홍명보, 다 떠난 뒤 나타난 정몽규... '한때' 韓 축구 리더들의 '품격' [인천공항 현장]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본 홍명보호는 30일 이른 새벽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마지막까지 32강 진출 경우의 수를 따지느라 모두가 한 번에 귀국하는 게 어렵자 결국 이날 홍명보 감독과 9명의 대표팀 선수 등이 먼저 한국땅을 밟았다. 박항서 월드컵 지원단장 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이 대표팀 스태프들도 이날 함께 귀국했다.
대표팀이 탄 항공편의 예상 도착 시간은 오전 4시, 실제 도착 시간은 그보다 더 이른 3시 13분이었다. 심지어 미디어 행사는 없고, 만일에 대비해 100명이 넘는 경찰 인력이 배치될 거란 소식도 미리 전해졌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등을 향한 축구 팬들의 분노는, 기어코 새벽 발걸음을 인천공항으로 향하게 했다. 새벽 시간인데도 공항에는 팬과 취재진 등 무려 300여명이 몰렸다. 실시간 방송을 켠 유튜버들도 다수 눈에 띄었고, 날이 선 비판 걸개 등도 곳곳에 자리했다.
입국장부터 외부에 주차된 국가대표팀 버스까지 통제는 삼엄하게 진행됐다. 대표팀이 입국 후 버스로 향하는 길목을 건너가려면, 일반 이용객들조차 지하나 2층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을 정도다. 여기에 대표팀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홍명보 나가'를 시작으로 비속어를 활용한 구호 등이 공항에 울려 퍼지면서 더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홍명보 나가' 등 현장을 찾은 팬들의 여러 구호를 비롯해 각종 욕설과 고함이 울려 퍼졌다. 홍명보 감독은 그러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한 채 출구 쪽으로 향했다. 풀기자단이 홍명보 감독에게 따라붙어 여러 질문을 던졌으나 홍 감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멕시코 현지에서 대표팀 감독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또 대표팀을 향한 여론이 워낙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월드컵을 마친 감독이 공항에서 인터뷰조차 없이 도망치듯 떠나는 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날 입국 현장은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부진과 탈락, 사퇴 발표 이후 처음으로 국내 팬들 앞에 선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짧은 입국 현장에서조차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멕시코 현지에서 취재진 질문은 받지 않고 2분도 채 안 되는 사퇴 선언문 낭독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데다, 사퇴 입장문 발표 이후 주머니에 손까지 넣고 퇴장하는 모습이 포착돼 '태도 논란'이 거세진 상황에 또 한 번의 실망감만 안겨준 셈이 됐다.
공항 외부에까지 팬들의 거센 욕설이나 비판 구호가 울려 퍼지면서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저마다 개인 차량을 타고 해산하면서 잠잠해졌다. 그런데 모두 해산된 직후에도 통로 쪽에 설치됐던 통제선은 좀처럼 해체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선수단이 떠나고 약 40분 뒤, 그러니까 홍명보호 귀국으로 떠들썩했던 공항 분위기가 잠잠해지기 시작한 시점 홀로 모습을 드러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귀국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홍명보호의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는 물론 과거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 나아가 한국축구 행정 전반에 걸친 문제의 중심에 정몽규 회장이 있는 터라, 이날 홀로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 회장을 향한 팬들의 분노는 더욱 극에 달했다. 홍명보 감독 입국 당시와 달리 정몽규 회장 입국 과정에선 결국 한 팬이 정몽규 회장 쪽으로 '개껌'을 던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홍명보 감독은 물론이고 뒤늦게 홀로 모습을 드러낸 정몽규 회장까지, 이번 북중미 월드컵 실패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팬들 앞에 서지 않았다. 사과 단 한 마디, 고개 숙인 인사 단 한 번 없이 그저 성난 팬들을 뒤로하고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만 급급했다. 공교롭게도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은 각각 대한축구협회장직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를 선언한 상황. 한때 한국축구 행정의 수장, 그리고 A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한때' 한국 축구 리더들이 팬들에게 보인 마지막 품격이었다.


인천국제공항=김명석 기자 elcrack@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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