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제개미’ 과세 더 미룰텐가…금투세, 이재명 결단만 남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이유나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가능하면 언제나 세금을 낮추는 것을 지지한다” (밀턴 프리드먼)
이 말은 오늘날 세금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거나 최소한 줄이기를 원한다. 이는 세금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금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한 저항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정치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지도자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19세기 미국 정치개혁가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라는 말처럼 어떤 증세는 미래 세대를 위한 지도자의 용기와 식견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금투세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바로 그런 시험대에 올랐다.
저임금 노동자도 소득세 내
금투세는 그동안 과세 대상이 아니었던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매매차익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당연히 시장참여자, 특히 고액의 돈을 굴리는 극소수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더불어, 포트폴리오 조정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충격은 일시적일 뿐, 자본시장의 펀더멘털이 바뀌지 않는 한 장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과세가 시작된다고 해서 한국의 주식시장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과세를 유예한다고 해서 시장의 매력도가 급상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자본이득 과세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형평성에 있다. 하위 10% 노동자의 100만원 소득에도 6%의 소득세(건강보험료 3.545% 포함하면 10% 가까이 된다)를 부과하면서도 1억원의 주식이나 채권의 양도소득에는 과세하지 않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혹자는 노동자 또한 자본소득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부유층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소득은 일반적으로 부의 규모가 크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본소득, 특히 자본의 매매 차익에 대한 비과세는 그 자체로 역진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나라 평균적인 가구의 자산 중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그치지만 상위 0.1%의 경우 그 비중이 55%, 그 이상인 슈퍼리치는 그 비중이 85%로 많이 늘어난다.
세수는 재정의 원천이다. 재정지출에 대한 필요가 일정한 상황에서 자본소득을 얻은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노동소득을 낸 사람들이 그 구멍을 메워야 한다. 이 경우 세금제도가 오히려 소득과 부의 집중을 가져다주는 통로가 된다.
또한, 자산 간 형평성 문제도 크다. 2022년 기준으로 부동산 자산과 주식 등 금융 자산의 매매차익은 각각 약 107조원과 27조원 수준이다. 대략 80:20의 비중이다. 그런데 실제 부과된 세금은 부동산 양도소득에 27조원, 금융자산 양도소득에 5조원 정도 된다. 84:16의 비중이다 (거래세라 할 수 있는 부동산 취득세와 증권거래세를 포함해서 계산해도 비중은 거의 유사하다). ‘동일한 규모의 소득에 대한 동일 세율’의 원칙에 비춰보면 금융자산 투자자에게 우리 사회가 보조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사실 금융투자 상품의 양도소득에 대한 비과세는 어떤 경제 이론으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자본소득에 대해 이 정도의 광범위한 비과세를 허용하는 나라를 선진국 중에 찾기는 힘들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미 배당과 이자소득에는 과세를, 그것도 누진세율까지 적용하고 있는데, 주식과 채권의 양도차익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자본축적을 위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면, 이는 저율 과세나 분류 과세로도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금투세도 그렇게 설계돼 있다).
이재명세가 아닌 버핏세
실제 금투세가 시행되더라도 현행 안에 따르면 과세 대상자가 될 개인 투자자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해 계산해도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투자수익률은 최대 연 10%를 넘지 않는다. 2022년 기준으로 평균적인 가구의 자산 수익률은 대개 1~5% 수준이며, 상위 20% 가구도 1~6%로 크게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부자는 다를까? 한 경영연구소가 분석한 ‘서울 부자’들의 자산 수익률을 보면 평균 1~3%에 불과하다. 특히 금융 자산으로만 한정하면 수익률은 1% 정도로 더 낮아진다. 0%대 금리로 자산시장에 거품이 발생했던 2020년 자료를 갖고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주식투자자들의 연 수익률이 10%를 조금 넘었을 정도였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보면, 금투세 대상이 되려면 연간 5천만원에서 1억원의 투자 수익을 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 10억원 이상의 금융 자산을 굴려야 가능하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KB금융 연구소에 따르면,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부자는 전체 인구의 약 0.9%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서도 수익이 5천만원을 초과하는 투자자는 전체 고객의 1%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금투세 법안은 손익 통산을 5~10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금투세 대상자가 되려면 수익률이 5-10년 동안 꾸준히 매년 10% 이상이어야 하는데, 개인 투자자 중에 이 기준을 만족하는 유능한 투자자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 10년 동안 ‘투자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워런 버핏의 투자수익률을 계산했는데 약 10.2%였다 (그의 후계자 2명의 수익률은 7.8%였다). 이런 면에서 금투세는 ‘이재명세’가 아니라 '버핏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버핏과 같은 능력 있는 투자자들은 대부분 법인을 운영할 것이기 때문에 금투세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자본시장 개혁이 금투세 유예의 명분이 되나
일각에서는 한국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이유로 금투세 도입을 반대한다. 도입에 앞서 상법 개정 등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투세를 유예한다고 해서 자본시장이 단기간에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은 작다. 금투세 도입을 2~3년 유예한다고 해서 그사이에 관치와 재벌에 짓눌려온 자본시장이 환골탈태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따라서 이를 금투세 도입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사실상 법안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수주주의 보호를 통한 상법 개정과 과세 형평성 제고를 위한 금융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는 그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거나 전제 조건으로 삼아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만약 어떤 저임금 노동자가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화나 분배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소득세 납부 거부를 주장한다면 이에 공감해줄 것인가? 아닐 것이다.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민주당이 금투세 유예를 결정한다면 이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이는 정치권이 오랜 기간 형성해온 사회적 합의와 학계와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정책을 좌절시킬 정도의 자원을 동원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극소수의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에 굴복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금투세만 하나의 사례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즉 앞으로의 증세 논의의 진정성 차제를 믿을 수 없게 된다. 젊은 층을 위한 연금 개혁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정 여력 확보를 위한 증세는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금융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를 위해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왔다. 증권거래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하면서 주식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온 것이 그 예이다. 이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결단을 촉구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도이치 큰손들’ 대통령 취임식 초청…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 증폭
- “단수는 나 역시 좋지”…김건희·명태균 ‘공천 논의’ 텔레그램 확인
- 이준석 “윤 대통령, 명태균씨를 ‘명 박사’라고 불러”
- 유승민 “사람에 충성 않는다던 윤 대통령, 배우자에만 충성”
- [단독] 임금체불 셋 중 한명이 건설업…근로감독은 4% 미만
- 이스라엘군, 헤즈볼라와 지상전서 8명 전사
- [단독] 지자체들, 티메프 피해지원 나섰지만…신청 0건도 다수 왜?
- 이준석 “윤 대통령, 명태균씨를 ‘명 박사’라고 불러”
- 거리에 생후 40일 아기…새벽 2시 “분유 있나요” 경찰이 한 일
- 임윤찬, ‘클래식의 오스카상’ 그라모폰상 2관왕…“가장 흥미로운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