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모범 환자’ 류현진과 단골이 된 의사 선생님

오타니 쇼헤이의 팔꿈치 집도의

2018년의 일이다. 오타니 쇼헤이의 ML 첫해다. 이도류는 만만치 않았다. 투타니가 전반기부터 문제를 겪었다. 팔꿈치 통증 탓이다. 석 달 가까이 마운드를 떠났다. 9월 초에야 돌아왔다. 애스트로스전에 선발 등판했다.

88일 만이었다. 그런데 복귀는 영 시원치 않다. 패스트볼 구속이 91~92마일까지 떨어졌다. 조지 스프링어에게 투런 홈런을 얻어맞았다. 결국 3회를 넘기지 못한다. 교체 때 투구수는 49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틀 뒤다. 에인절스 구단이 충격적인 뉴스를 릴리스했다. MRI 검진 결과였다. 팔꿈치 안쪽 인대에 추가 손상이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남은 시즌 등판은 불가능해졌다. 의료진의 결론은 하나였다. 근본적인 처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론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러게 투타 겸하는 건 무리라니까’ ‘메이저리그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하나라도 잘해라’…. 그런 비판이 쏟아졌다. 잘 나가던 신인왕 레이스도 삐끗거린다. 잔여 경기는 타자로만 나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수상은 이뤄졌다.

하지만 수술은 불가피했다. 흔히 토미 존 서저리로 불리는 팔꿈치 인대 접합술(UCL)을 받기로 했다. 시기가 놀랍다. 최종전(10월 2일)을 마친 다음 날이다. 마치 치과 검진 가듯이 길을 나선다. 수술실에 머문 시간은 1시간도 안 되는 것 같다.

토미 존 서저리의 적통을 잇는 후계자

오타니가 다시 마운드에 오른 것은 1년이 훨씬 넘어서다. 당초 일정보다 조금 늦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탓이다. 리그 스케줄이 한참 미뤄졌다. 2020년 7월에 투타니가 복귀한다. 그해에는 2게임 몸풀기가 전부였다.

본격 모드는 2021년부터다. 싱싱한 100마일을 되찾았다. 130.1이닝, 9승 2패, ERA 3.18을 기록했다. 전원일치 MVP의 영예도 얻었다. 작년에는 166이닝을 던지며 15승(9패)을 올렸다. 더 이상 팔꿈치 걱정은 없게 됐다.

완벽한 부활을 성공시킨 곳이다. LA 외곽의 한 병원이다.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 그룹에 속한 전문 의료원이다. 컬랜-조브 인스티튜트(Kerlan-Jobe Institute)라는 이름이다. 전문의 10명으로 이뤄진 규모다. 그 중 한 명이 이도류의 집도의다. 닐 엘라트라체 박사다.

Kerlan-Jobe Institute 홈페이지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다. 맞다. 예전에 다저스 99번 투수의 어깨를 열었던 의사다.

그는 업계의 유명 인사다. 특히 어깨와 무릎, 팔꿈치 부위의 권위자로 알려졌다. 수퍼 서전(Super Surgeon)으로 불린다. 거쳐 간 고객 명단이 어마어마하다. 오타니 외에도 올스타급이 수두룩하다. 조니 쿠에토, 잭 그레인키, 클레이튼 커쇼, 크리스 세일, 코디 벨린저, 워커 뷸러 같은 특급들이다.

야구뿐만이 아니다. NBA(농구), NFL(풋볼), NHL(하키) 선수들도 많다. 코비 브라이언트, 러셀 웨스트브룩, 톰 브래디, 타이거 우즈의 무릎과 어깨도 살려냈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도 신세를 졌다. 할리우드에도 인맥이 넓다. 실베스타 스탤론과 동서지간(처제의 남편)이다. 역시 고객이기도 하다.

명성은 한국에도 자자하다. 수술을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민태, 배영수, 봉중근, 한기주, 박종훈, 문승훈 등이 이곳에서 UCL을 받았다.

그의 스승은 프랭크 조브 박사다. 토미 존 서저리의 창시자다. 동료였던 로버트 컬랜 박사와 함께 만든 병원이 현재의 컬랜 -조브 인스티튜트다. 의대생 엘라트라체의 졸업 후 첫 직장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조브 박사의 적통인 셈이다.

독립기념일 오후의 좋은 뉴스

지난 4일 오후(이하 현지시간)다. 많은 미국인들이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무렵이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플로리다 더니든의 누군가는 다르다. 입술이 마르고, 심박수가 올라간다. 선발 등판을 앞둔 탓이다. 한때 사이영상 후보까지 올랐던 투수다. 그런 거물이 마이너리그, 그것도 루키 레벨 경기에 긴장감을 느낀다. 무려 400일(정확하게는 398일) 만의 실전이다. 무엇보다 걱정이 한 가득이다. ‘던지고 나서 또 아프면 어떻게 하나.’

투구수 42개로 마쳤다. 피안타 4개로 1실점 했다. 삼진은 5개나 잡았다. 목표했던 3이닝을 정확히 맞췄다. 구속은 88마일(약 142㎞)까지 나왔다. 빠른 스피드는 아니다. 다만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실전 첫 단계였다. MLB닷컴은 “부상 전 직구 평균에 불과 2~3마일(약 3~5㎞) 정도 모자랐다. 재활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다”고 전했다.

수술대에 누웠던 게 작년 6월이었다. 엘라트라체 박사의 집도였다. 그리고 13개월이 지났다. ‘수술에 1시간, 재활에 1년’이라는 말 그대로다. 처음에는 밥숟가락도 들지 못한다. 그러더니 지난 1월 출국 때는 그 팔로 세 살 딸을 번쩍 안아 올렸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 캐치볼 거리가 점점 늘어난다. 하프 피칭, 라이브 피칭으로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실전까지 차곡차곡 쌓아간다. 이제 플로리다 생활은 끝났다. 재활 프로그램은 졸업인 셈이다.

팀 합류를 위해 토론토로 건너간다. 거기서 트리플A로 단계를 높이게 된다. 두 번째 일정은 15일로 잡혔다. 그리고 한 번 정도 더 실전을 치른다. 자연스럽게 이닝도 늘려갈 계획이다. 이 상태라면 7월 말~8월 초 정도에는 컴백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계획표가 있다. 그 존재 자체가 좋은 뉴스다. 만약 첫 등판(4일) 이후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이런 스케줄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착실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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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능성도 이겨낸 환자, 이번 수술은 90% 낙관적

많은 사람이 갸웃거린다. 나이 때문에, 수술한 전력 때문에…. ‘다시 또 예전처럼 던질 수 있을까.’ 의문형 문장으로 서술한다.

5년 전에도 비슷했다. 그때는 훨씬 더 비관적이었다. 투수가 어깨에 칼은 댔다. 이건 훨씬 더 위험부담이 큰 일이다. 성공 사례가 겨우 7% 밖에 안된다는 통계다. 그러나 우려는 사라졌다. 눈부신 재기에 성공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터만으로도 무척 낙관적이다. UCL의 성공률은 90%에 육박한다. 구속이 더 빨라지는 경우도 많다. 충분한 휴식과 근력 강화 덕분일 것으로 추측된다. 무엇보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의 수술 후기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등판 전날 잠이 안 올 때도 있다. 다음날 아픔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환자의 나이? 회복 속도에 차이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30대 중후반에도 크게 문제는 없다. 너끈히 이겨낸 투수들이 많다. 금강벌괴(저스틴 벌랜더)도 37세에 팔꿈치를 열었다. 그리고 39세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원조 토미 존 자신도 40세 넘도록 마운드를 지켰다.

2018년 가을이다. 다저 스타디움에서 NLDS 1차전이 열렸다. VIP석에 한 인물이 자리했다. 닐 엘라트라체 박사였다. 이날 홈 팀의 선발 투수는 그의 고객이다. 가장 어렵다는 어깨 수술을 견뎌냈다. 7%의 낮은 성공률을 이겨냈다. 멋지게 재기해, 포스트시즌 1선발을 차지했다.

분명 좋은 일은 아니다. 법원, 경찰서 이런 곳은 자주 가면 안된다. 환자와 의사도 마찬가지다. 단골이 되는 게 달갑지는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겪었다.

다행이다. 단골 환자는 착하다. 의사 말씀을 잘 듣는다. 모범적으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그걸 위해 많은 걸 포기한다. 그 좋아하던 감자탕 야식도 끊었다. 몸무게를 30파운드(약 13.6㎏)나 줄였다. 날렵한 몸매가 헐렁한 유니폼을 만들었다.

이제 시간이 다가온다. 또 한 번 '수퍼 서전'의 명성을 높일 때다. 2018년 NLDS 1차전을 지켜보던 명의(名醫)는 감격에 젖었다. 그리고 이런 멘트를 남겼다. “내가 하는 일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류현진은 이 경기에서 7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