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머니피치’에서는 각 팀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팀의 결정적 순간은 대부분 우승의 순간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다양한 이야기를 얽히고설키게 한다고 해도 식상한 소재의 나열에 그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단순히 팀의 결정적 순간만이 아닌 선수나 지도자, 그리고 관계자의 모멘텀이 된 순간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3명.
KBO리그에서 투수 3관왕을 달성한 적이 있는 선수의 인원이다. 투수 3관왕은 한 시즌에 다승과 평균자책점, 그리고 탈삼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것을 가리킨다. 다만 KBO리그에서는 탈삼진왕이 1993년에 신설돼, 그 이전까지는 탈삼진 대신에 승률이 포함됐다. 1982년 OB(현 두산) 박철순이 다승과 평균자책점, 승률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탈삼진은 롯데 노상수가 1위에 올라, 엄밀한 의미에서 투수 3관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투수 3관왕에 오른 이는 3명이지만, 나온 적은 6차례 있다. 해태(현 KIA) 시절, 선동열 전 감독이 무려 4차례(1986, 1989~1991년)나 거뒀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 2차례는 2006년 한화 류현진이 신인으로 기록했고, 나머지 1차례는 2011년 KIA 윤석민이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선동열 전 감독(1989~1991년)과 윤석민은 승률에서도 1위에 올라 유이하게 ‘투수 4관왕’에 올랐다.
2011년 윤석민은 ‘언터처블’ 그 자체였다. 27경기에 나와 172.1이닝을 던지며 17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했다. 삼진은 178개를 잡아냈고, 볼넷은 고작 44개를 내줬다. 선발로 25차례 나온 가운데 6이닝 이상을 3자책점 이하로 막은 퀄리티 스타트도 18차례나 기록했다. 피안타율도 0.223. 이 2개 부분 역시 1위에 올랐다. 이 활약으로 시즌 MVP도 거머쥐었다.
다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아쉬움도 남는다. SK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9이닝을 완투하며 1실점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3일 휴식 후 조기 등판한 4차전에서는 2.1이닝 3실점하며 일찌감치 마운드를 내려왔다.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감독은 ‘강수’의 유혹에 빠진다. 특히, 투수 기용에서 그렇다. 오늘 이기면 확실히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는데, 혹은 탈락의 위기에 몰려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를 ‘당겨’ 마운드에 올린다. 그 강수가 통하면 감독의 ‘신의 한 수’가 되지만, 대개 강수는 악수가 된다. 게다가, 강수를 뒀는데 통하지 않았을 때, 그다음 경기에 뾰족한 수를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는 감독 출신 지도자가 적지 않다.
어쨌든 윤석민이 2011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데는, 혹은 KBO리그 최고 오른손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데는 150km/h를 웃도는 속구와 함께 140km/h에 이르는 고속 슬라이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클체인지업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만 슬라이더만큼은 아니다.
또한, 윤석민은 손가락 감각이 좋아 쉽게 변화구를 습득하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여러 변화구를 잘 던질 줄 알아 다양한 변화구로 상대 타자를 농락하는 유형으로 생각하기 쉽다. 분명히 그런 투구를 보인 적도 있다. 그래도 KBO리그에서 뛴 12시즌 동안 일관된 투구 스타일은 속구와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한 파워 피처였다. 윤석민이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 잡은 데는 슬라이더를 빼곤 말하기 어렵다. 그 윤석민표 슬라이더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처음 슬라이더를 던진 것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리 인창 중학교 시절 처음 배웠다. 그때의 슬라이더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각이 좀 크고 구속이 느렸다. 그러다가 야탑고 3학년 때 속구 구속이 10km/h 정도 늘면서 슬라이더도 빨라졌다. 딱히 그립이나 투구폼 등이 바뀌거나 그런 것은 아닌데도.
어떤 의미에서 내 슬라이더는 프로에 들어와서 만들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교 시절까지는 변화구에 대해 세세하게 배운 적이 없다. 그립만 알고 그냥 던졌다. 그때까지는 어떻게 던지는지 몰랐다고 하는 게 올바른 표현인 것 같다. 고교 시절은 속구 최고 구속이 140~142km/h 정도 나왔고, 슬라이더는 125km/h 정도였다. 그런데 프로에 와서 이광우 코치님에게 빠르고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배웠고, 그것을 빨리 습득해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슬라이더도 속구처럼 던지는 게 중요
생각해 보니까, 이광우 코치님이 가르쳐준 것을 되게 금방, 하루 만에 이해한 듯하다. 이 코치님에게 배운 뒤, 처음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던졌는데, 속구는 142km/h 정도 찍혔다. 그런데 슬라이더는 139~140km/h까지 나왔다. 그때는 커터와 함께 던지다 보니까 요령도 생겼고, 날카로운 각도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립도 조금씩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갔지만, 중요한 것은 그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을 던질 때, 어떻게 때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빨라서 그런지 좋은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됐다.
슬라이더를 던질 때 약간 회전을 주는 방법과 다소 누르는 느낌으로 던지는 방법이 있다. 나는 조금 눌러서 던진다. 왜냐하면, 내 그립은 실밥을 잡지 않고 던지기 때문이다. 실밥을 안 잡으니까 당연히 미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히 눌러서 던진다. 실밥을 잡고서 눌러서 던지면 각이 크고 속도가 느려져서 실밥을 안 잡게 됐다.
그리고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던지는, 즉 결정구와 카운트를 잡을 때는 다르게 던진다. 결정구를 던질 때는 다소 강하고 빠르게 떨어뜨려야 하니까 팔 스윙이 더 빠르고 누르는 힘도 더 크다. 누르는 힘은 집게손가락이랑 가운뎃손가락 둘 다 준다. 그러다 보니까 슬라이더의 각이 짧으면서도 속도가 빠르다. 반면, 카운트를 잡을 때는 말 그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니까 누르기보다는 약간 비틀어서 포인트를 찾아 던진다.

타깃은 가운데 포수 마스크를 보고 던진다. 결정구를 던질 때는 릴리스 포인트를 조금 조절해서, 즉 더 앞에서 더 세게 때린다. 한 번씩 슬라이더의 구속이 생각보다 안 나올 때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더니 자꾸 각을, 위에서 밑으로 만들려고 해서 팔을 억지로 높이다 보니까 공을 약간 뒤에서 때려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슬라이더를 던질 때의 중요한 포인트다. 슬라이더도 속구처럼 던져야 한다. 그래야 타자가 속는다. 그렇지 않고 타자가 처음부터 슬라이더인 것을 알면 거의 속지 않는다. 릴리스 포인트는 슬라이더와 속구는 똑같아야 한다. 출발점이 속구보다 뒤가 되면 공이 떠서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그러면 타자는 쉽게 슬라이더라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결국, 슬라이더는 속구랑 똑같은 포인트에서 나와서 위로 가지 않고 속구 궤적에서 떨어져야 한다.
커브나 체인지업을 못 던지는 투수는 있어도 슬라이더를 못 던지는 투수는 없다. 달리 말하면 투수의 기본적인 구종이다. 단지 그 위력에서 차이가 난다. 나에게 슬라이더는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구종이라고 생각한다.
고속 슬라이더를 배우지 않았으면 속구와 느린 커브, 그리고 역시 느린 슬라이더가 전부였을 테니까. 또 슬라이더 제구에 자신이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던졌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헛스윙이 되든 파울이 되든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할 때 많이 썼다. 풀카운트에서도 자신 있게 던졌다. 꼭 필요할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이 나에게는 슬라이더다.
투수도, 타자도, 생각하는 존재
선수 시절, 슬라이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슬라이더로 삼진을 뺏어냈을 때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는 슬라이더보다 속구로 삼진을 잡을 때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기록한 대부분 삼진이 슬라이더라서 다른 구종으로 잡았을 때 더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 슬라이더를 많이 던졌으니까, 상대 타자도 슬라이더에 더 대비하고, 그래서 체인지업의 비중이 커진 것도 있다.
이것은 경기에서 타자를 이겨야 하니까, 아무래도 속구보다 변화를 주는 패턴, 즉 결정구로 슬라이더를 던지는 게 수년간 계속되어서 타자도 잘 대처했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2스트라이크로 몰리지 않으려고, 이른 볼카운트에서 치니까 슬라이더를 효율적으로 쓰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나도 타자가 이른 볼카운트에서 공략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몸쪽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습게도 일단 몸쪽을 두세 개 던진 뒤, 슬라이더로 공략하는 패턴을 머릿속에 그렸는데, 거꾸로 타자는 슬라이더나 바깥쪽으로 온다고 확신하는 역효과도 생겼다.

결국, 그럴 때는 몸쪽을 자주 보여주는 것보다 바깥쪽을 던지다가 몸쪽에 하나 꽝 던져서 끝내는 방식이 해법이다. 내가 제구력이 나름 좋다고 생각하는지 상대 타자는 내 몸쪽 공에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바깥쪽에 슬라이더나 속구를 두세 개 던진 뒤 몸쪽에 하나 던지면, 그다음은 무조건 바깥쪽으로 승부구가 온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
또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졌을 때도 타이밍은 분명히 어긋났는데, 이전과는 달리 배트에 공이 맞아 파울이 될 때도 잦았다. 타자도 내 슬라이더가 어느 정도 떨어지는지 알고 있으니까 타이밍이 안 맞아도 공 윗부분이 배트에 맞아나갔다. 이것은 아무래도 슬라이더가 빠른 변화구라서, 속구 타이밍으로 대비하면서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아무리 좋은 변화구라도 그 패턴이 읽히면 살아남기 어렵다. 야구는 생각하는 스포츠라는 게 이런 측면인 것 같다. 투수든 타자든 서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서로 읽으려고 하는 게 흔히들 말하는 수 싸움이다.
또 슬라이더도 그렇고 모든 변화구는 속구처럼 던져야 한다. 속구와 같은 궤도로 오다가 바깥쪽으로 휘어나가거나 몸쪽으로 파고들거나 아래로 떨어지거나 해야 타자는 속는다. 나는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지만, 기본은 속구다. 그렇기에 속구와 같은 팔 스윙과 릴리스 포인트 등에서 던질 수 있는, 자신에게 적합한 변화구를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1년 시즌이 끝난 뒤, 윤석민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다. 2009년 팀 우승을 이끌었고, 올해는 투수 3관왕도 달성해 KBO리그에 더 이룰 것은 없었다. 그러나 팀 생각은 달랐다. 윤석민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지난 뒤, FA(자유계약선수)로 메이저리그 볼티모어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도전에 나선다. 다만 그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듯 트리플에이에서 1년을 보낸 후 다시 KBO리그로 돌아왔다.
그 당시 메이저리그 어느 구단 관계자는 “2013년 시즌이 끝난 뒤가 아닌 2011년 시즌이 끝난 뒤 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을 통해 윤석민의 데이터는 쌓여 있었다. 속구도 좋았지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에 대한 평가가 후했다고 한다. 특히, 슬라이더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런데 2년간 무리하면서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아,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견해다.

신인 시절, 윤석민은 주로 불펜으로 뛰며 마무리로 좋은 성적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그의 족쇄가 됐다. 3년 차 때부터 주로 선발로 나섰지만 팀 상황에 따라 마무리로 보직 이동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다.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기용된 사례는 거의 드물다. 그만큼 그의 재능이 뛰어나서 벌어진 일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역사도, 세상사도, 야구도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그가 좀 더 관리를 받았다면 어떤 선수로, 어떤 성적을 거뒀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도 마운드 위에 오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021년 5월 30일, 뒤늦게 열린 은퇴식에서 윤석민은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내 또래 친구, 선배들이 뛰고 있는 것을 볼 때 아쉽다. 어깨 관리 잘할 걸, 안 아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 지나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옛날 생각하면서 향수병같이 남아있다.”
윤석민은 선동열 전 감독과 함께 KBO리그 역대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진 투수라고 말해진다. 그런 만큼 윤석민이 최고의 위치를 향해 올라갈 때도,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도, 항상 슬라이더가 있었다. 그 슬라이더를 더 오랫동안 못 본 점은 아무래도 아쉽고,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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