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의 노래가 가르쳐준 것 [어제 들은 음악]

오지은 2026. 5. 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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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제대로 처음 본 공연은 한영애와 김광석이었다.

"그럼 지은님 시간에 한영애 선배님이 나와서 '조율'과 '누구 없소'를 같이 부르면 어떨까요. 그날 출연한 다른 여성 뮤지션들도 같이요." 너무 기뻐서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개최 날짜가 바뀌고 한영애 선배는 단독공연과 일정이 겹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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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시절과 추억이 뒤섞이며 삶의 배경음악이 되곤 합니다. 뮤지션이자 작가인 오지은이 요즘 듣는 노래,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을 소개합니다.

태어나서 제대로 처음 본 공연은 한영애와 김광석이었다. 한 기업에서 연 문화 행사였다. 담당자가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높은 안목을 가진 분이 계신 덕에 귀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감사합니다··· 당신은 공덕을 쌓으셨습니다). 김광석은 기타 한 대로 쭉 공연을 했는데 ‘나의 노래’가 흥겨웠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김광석도 한영애도 멘트를 친절하고 다정하게 했다. 음악은 마음껏, 멘트는 친근하게. 그게 멋진 뮤지션의 소양이라는 인식이 그때 생겼을까. 알 수 없지만.

당시 나는 아마도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비틀스와 카펜터스 등을 자주 들었다. 조숙하거나 허영이라기보다는 그냥 집에 CD가 있었는데 들어보니 음악이 너무 좋았다. 선반에 있는 음식을 한 입 먹었는데 맛있어서 계속 먹었다는 쪽에 가까울 것 같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요도 좋았지만(현진영이 날아다니던 시절이니 당연하다) 비틀스나 카펜터스 음악은 스타일이 달랐다. 뭐가 다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눈앞의 무대에서 그런 결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포크, 그리고 록을.

김광석 순서가 끝나고 한영애가 나왔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압도되었다가 ‘조율’에서, 속되게 표현하면 ‘맛이 갔다’. 그는 신탁을 전하러 온 사자처럼 보였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나는 한영애의 CD를 사서 ‘조율’을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목소리가 어떻게 이렇지? 어떻게 이런 가사를 이렇게 노래하지? 무슨 솔(soul)로?

2014년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가수 한영애. ⓒ연합뉴스

어릴 때 본 것은 무의식을 확장시킨다.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미 저 사람이 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게 가능하게 된다. 압도적으로 멋있는 록을 하는 여성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그 후 “여자가 록을 한다고?” 유의 말을 들어도, 저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의아해하며 넘길 수 있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마음으로.

사실 지난겨울부터 페스티벌을 하나 만들고 있다. 여자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여성 작가, 여성 감독, 여성 만화가의 문화 세션이 함께하는 진짜 페스티벌. 오랜 꿈이었지만 현실화하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귀인 덕분에 진짜로 시작하게 되었다. 페스티벌의 꽃은 헤드라이너다. 헤드라이너란 가장 큰 무대에서 마지막에 공연하는 사람이고 그 페스티벌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한영애 선배를 떠올렸다.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담당자와 통화했다. 한영애 선배는 올해 50주년을 맞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담당자는 고심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지은님 시간에 한영애 선배님이 나와서 ‘조율’과 ‘누구 없소’를 같이 부르면 어떨까요. 그날 출연한 다른 여성 뮤지션들도 같이요.” 너무 기뻐서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더 많은 귀인이 나타난 덕에 그 페스티벌은 6월에 진짜로 열리게 되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개최 날짜가 바뀌고 한영애 선배는 단독공연과 일정이 겹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내 무대에서 ‘조율’을 부르기로 결심했다. 나의 시작과 나의 절정이 만난다. 페스티벌의 이름은 ‘영희 페스티벌’이다. 영희, 영광과 기쁨. 우리가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보는 여성의 이름에 이제 온전한 영광과 기쁨을 돌리는 시간이 온다.

오지은 (뮤지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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