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이틴 패션을 입어본 적 있나요?

옷에 대한 열망이 극단으로 치닫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가족이 골라준 옷만 입는 경우도 있겠지만, 특히 청소년 시기엔 자신의 스타일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분명 온다고 생각한다. 

과거 옷을 고르고 구매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경제권을 쥔 엄마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옷의 기준은 너무나 달랐고, 옷을 고르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청소년 특유의 무기력과 슬픔에 잠겼다. 

출처: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중.

그런 내가 영화나 음악을 통해 접한 하이틴 패션에서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옷과 어른들이 생각하는 괜찮은 옷의 기준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좀 언짢은 표정을 짓더라도,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하는 어른들은 서양 하이틴 영화 속엔 거의 없었다. 프롬 무도회 드레스는 물론이고, 평소 학교 갈 때 입는 옷에도 별 태클을 걸지 않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가진 그들이 부러웠다. 

출처: 영화 '클루리스' 포스터.

한국에서 ‘하이틴 패션’을 잘 구현하기로 소문난 몇몇 쇼핑몰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아가일 무늬의 니트, 체크무늬 플리츠스커트 등이 잘 판매되는 아이템이다. '글리', '퀸카로 살아남는 법', '클루리스', '프린세스 다이어리' 속 소녀들의 패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이템들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패턴을 비롯해, 2020년대의 유행을 반영한 카디건과 탑을 레이어드한 상의와 크고 작은 리본 및 레이스도 눈에 띄었다. 

출처: 아리아나 그란데 'Thank u, next' 중.

특히 하이틴스러움은 공간, 사진, 패션, 문구류, 심지어 폰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장악한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금발이 너무해' 속 핑크 톤으로 꾸며진 공간이 재현되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실제로 아리아나 그란데는 ‘Thank u, next’ 뮤직비디오에서 하이틴 무비의 공식을 가져와 본인 방식대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하이틴 무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미니멀’과는 거리가 멀고,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존재한 적 없던 하이틴 패션이지만 핑크와 퍼플을 필두로 한 특유의 색감은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출처: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주인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