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았다 요놈”…사진 분석하며 범인 찾던 남자, 요샌 이것에 푹 빠졌다는데
생명력 강인한 야생화는
그 자체가 응원의 메시지
단죄 못지않게 교화 중요
전시회서 모은 기금으로
교도소에 사진집 기부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에서 사진 감정관으로 활약했던 고홍곤 씨(60)는 20여년 전 사진작가로 진로를 바꿨다. 한때 범죄자를 잡는 데 사진을 활용했던 그는 이제 사진으로 재소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야생화를 주제로 아홉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는 고 작가는 재소자를 위한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는 고 작가는 사진장비 영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SK상사에 재직하며 폴라로이드와 사진관용 디지털 장비 등을 판매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회사에서 관련 사업을 접었어요. 마침 대검찰청에서 사진 감정관을 특별채용한다기에 지원했죠. 당시엔 디지털 사진 장비가 생소했어요. 검찰에서도 수사에 관련 노하우를 필요로 했었죠.”
대검찰청 근무 당시 그의 주 업무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범죄자를 특정하는 것이었다. “범죄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사진을 분석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보통 이런 사진은 화질이 낮은데다 마스크나 모자를 쓰고 있어 특정이 쉽지 않죠.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화소 하나하나를 분석해가며 수사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민간기업과 수사기관에서 사진과 관련된 업무를 이어갔지만, 창작에 대한 갈증은 점차 커져만 갔다. 고 작가는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작업에 몰두했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한 뒤로는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고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피사체는 야생화였다. “처음엔 단순히 꽃이 아름다워서 찍었어요. 그러다 하루는 안 좋은 일들이 겹쳐 힘든 마음을 안고 산에 갔는데, 계곡 응달의 눈 사이로 피어난 복수초가 제게 말을 걸며 위로해 주더군요.”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 뿌리를 펼칠 공간조차 없는 바위틈, 꽁꽁 언 땅속에서 눈을 헤치고 피는 야생화의 모습에서 그는 희망을 봤다고 한다.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 피어난 꽃처럼, 우리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야생화 사진 촬영을 위해 고 작가는 전국 산야를 누빈다. “특정한 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꽃들이 있어요. 네귀쓴풀은 대청봉, 천왕봉 정상에서만 발견돼요. 지리산, 덕유산, 설악산 높은 곳 바위 겉에서 서식하는 참바위취도 있죠.”
때로는 2박, 3박 일정으로 산에 오르기도 한다. 고 작가는 1년 중 약 100일을 산과 들에서 보낸다고 설명했다. “등산 장비에 촬영 장비까지 메고 산을 오르는 게 만만치는 않습니다. 야생화를 만나려면 등산하듯 성큼성큼 걸어서는 안 돼요. 거의 기어가듯 땅에 붙어 가야 하죠.”
고 작가는 검찰에서 근무하던 경험을 살려 한국범죄방지재단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5년 전 소년원을 방문한 뒤로는 범죄자에 대한 단죄 못지않게 교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몇 차례 소년원을 방문해 아이들을 만났어요.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이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었죠. 소년 사범들의 끔찍한 범죄가 기사화되곤 하지만, 소년원 아이들 중 대부분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경우입니다.”
한국범죄방지재단은 창립 3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부터 ‘그대 다시 꽃으로 피어나리’를 주제로 고 작가의 야생화 사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모금한 기금으로 전국 교도소에 야생화 사진집과 액자를 기부할 예정이다. “극한 환경에서도 끝내 꽃을 피우는 야생화처럼 ‘세상은 넘어졌다 다시 뛰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라는 메시지를 재소자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고 작가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소자뿐 아니라 실의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야생화 사진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우울증 환자나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살방지협회 같은 곳에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요.”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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