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령 의사가 하늘로 떠나며 남긴 말은..
독립운동가 후손...1979년부터 무료 진료
82세에 요양병원서 동년배 돌보기도
2020년 9월30일 경기도 남양주의 매그너스 요양 병원. 머리가 하얗게 물든 한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게 알려지자 직원은 물론 환자까지도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한다. 향년 94세에 세상을 떠난 그는 국내 '최고령 의사'로 활동했던 한원주 원장이다.
한원주 원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사 가운을 입고 환자 곁을 지켰다. 9월 초까지 직접 환자를 진료했지만 노환이 악화하면서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이 헌신한 매그너스 요양 병원에서 일주일동안 입원해 있다가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식구들은 "모든 직원과 환자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 정신적 지주가 떠났다"며 슬퍼했다.
병원 관계자뿐 아니라 한 원장의 소식을 들은 누리꾼은 “살아있던 천사”,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세상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병은 사랑으로 나을 수 있다’는 지론으로 환자에게 정성을 다했다는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의사와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태어나
한원주 원장은 1926년 경남 진주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아버지 한규상 씨와 독립운동가 어머니 박덕실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9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산부인과를 개업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근무하던 중 남편의 권유로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내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1968년 귀국 후에는 남편과 함께 개인 병원을 차렸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그때 정말 잘나갔다고 표현했다. "당시 미국에서 의사 공부한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들어와 개원하니까 환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지요. 잘나가던 때였고 돈도 많이 벌었죠.”
병원을 운영한 지 10년 정도 됐을 때, 그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사건이 생겼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기독교였던 한 원장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 정말 이럴 수 있습니까'라는 원망과 하소연부터 나왔다.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 따라 다시 시작한 삶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한원주 원장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결핵 퇴치 운동, 콜레라 예방 운동에 앞장서는 건 물론 한센병 환자, 형무소 수감 환자 등을 위한 무료진료에도 힘썼다. 한 원장은 1979년 운영하던 개인병원 문을 닫고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한국 기독교 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 원장으로 취임해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돌봤다. 1982년에는 '전인(全人)치유진료소’를 개설해 환자의 질병 외적인 부분인 정서나 환경까지 치료했다. 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이었다. 한 원장의 치료 방법이 효과가 나타나고 알려지면서 여러 단체로부터 후원도 받기 시작했다. 후원금은 환자가 자립할 때 필요한 생활비, 장학금으로 사용했다.
30여년 동안 무료 봉사의 삶을 살았다. 월급 없이 사비를 쓰면서 지냈다. 그러던 한 원장은 2008년 의료선교의원에서 은퇴했다. 의사로서 활동을 마치나 싶었지만 바로 다음 날 매그너스 요양병원 내과 과장으로서 다시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들었다. 그의 나이 82세였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요양 병원에서 동년배인 환자를 돌봤다. 환자와 함께하는 건강강좌, 노래 교실 등 친목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는 것이 힘이 들 법도 하지만 항상 즐겁다고 말해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에는 '성천상'을 받았다. 성천상은 JW중외제약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에서 주는 상이다. 의료 봉사활동을 통해 의료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사회에 귀감이 되는 의료인을 발굴해 수여 한다. 한 원장은 "의사로서 소임을 다 했을 뿐이다. 여생도 노인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현역 의원으로서 곁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사방에 나눠주면 기분이 좋다"는 그는 부상으로 받은 상금 1억원도 기부했다.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90세 이상의 나이에도 꾸준히 하루에 10명 이상의 환자를 돌보던 그는 2020년 9월 노환으로 쓰러졌다. 서울 아산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9월 23일 매그너스 병원으로 돌아왔다.
내과 과장으로 부임할 때 한 약속 때문이었다. 당시 한 원장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되 치매 등 질병, 사고 때문에 일할 수 없을 때가 오면 이 병원에 입원하고 여기서 임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뜻대로 매그너스 병원으로 돌아온 그는 환자를 대하던 때와 다름 없는 반듯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렇게 한원주 원장은 일주일 뒤 세 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