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코로나19' SNS 게시글로 비난 받고 있는 "미국의 팝스타 여가수"

지난달 팝 스타 마돈나는 비난을 한 몸에 사는 영상 하나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메시지와 형식, 시점 모두가 최악이었다고 평가받는 영상이다. 코로나19로 미국에서 사망자가 급증할 때 마돈나는 물 위에 장미가 떠있는 자택의 고급 욕조 안에서(피아노 선율까지 흐르는) 이렇게 주장했다. "코로나19의 중요한 측면은,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부유하고 유명하고 재미있고 똑똑한지, 어디에 살고 나이가 얼마인지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이퀄라이저(equalizer·평등하게 만든다)이다." 



'차별 없는 코비드19(No Discrumination Covid 19)'라는 제목까지 달아 올린 이 영상에는 뼈를 때리는 댓글이 달렸다. 마돈나의 팬이라고 밝힌 한 글쓴이는 이렇게 지적했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우린 평등하지 않다. 당신의 멘션 밖 세상은 당신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 빈곤할수록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이 소동 이후 마돈나는 이달 4일(현지시간)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써달라며 100만 달러를 기부하며 앞서 쓴 SNS 글의 진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럼에도 코로나19를 평등이란 키워드로 해석하려 했던 그의 시도는 '빈익빈 부익부'로 점철되는 오늘날의 경제 붕괴 국면을 낭만적으로 오역해 불신을 산 처참한 행적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출처: 마돈나 트위터 캡처

미국인도 '지원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

미국에서는 그게 정부든, 봉사 단체든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하는 문화가 수 세기 동안 이어졌다. 특히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독립적인 경제생활이 가능한 자신의 경제적 지위(계층)를 잃고 의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자연재해와 같은 불가피한 영향으로 집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도 고집스럽게 이런 지원을 거부하려는 모습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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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안팎이면 주기적으로 홍수 피해를 입는 노스 다코타(North Dakota) 지역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가 있다. 앨리스 포더길 버몬트대 사회학과 교수가 2004년에 출간한 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의 경제적 취약 계층에 속하는 홍수 피해 여성들은 자립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신분 상실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공적 원조를 받는 것을 꺼려 하거나 기부 물품을 받아도 "훗날 비용을 지불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히는 등 지원받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긍심의 문제도 있지만, 지원을 받아 경제적 지위를 한 번 잃으면(지원을 받는 것과 지위 상실의 상관성이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심리적으로) 다신 이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19세기 이후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엄연히 미국의 제도권으로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미국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제1 원칙과 철학, 판단의 기준이 개인주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출처: 라스베이거스=AP뉴시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는 미국인들이 늘면서 이달 4일까지 최근 3주간 미국 실업 급여 건수는 1680만 건에 달했다.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줄 선 사람들

코로나19는 이 종교와도 같았던 지원 거부 의지를 깨뜨렸다. 이를 한눈에 보여준 것이 지난달 말 미국 남부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대형 주차장에 수많은 차량이 늘어서 있던 장면이었다. 이 지역 *푸드뱅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식료품을 받으려고 주민들이 몰려온 것이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 이례적인 광경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외신들은 그곳에 대학생과 조경사, 고등학교 행정 직원 등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었고, 이중 70%가 식료품 지원을 처음 받아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나같이 "내가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기사에는 "나는 도움 따위를 요청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자존심을 내려놨다"라는 식의 현장 멘트도 여럿 달렸다.

"내가 지원을 받으러 올 줄 몰랐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세븐 일레븐 점원 달런 레이시(Dalen lacy)_뉴욕타임즈

실업급여 청구가 급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3월 셋째 주 이후 5주간(3월 15일~4월 18일) 이뤄진 누적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약 2645만 건. 5주 연속 수백만 건의 청구 건수가 나타난 것인데 이랬던 적은 미국 노동부가 이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7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지원 요청에 주저하던 시민들이 발 벗고 정부에 두 손을 내밀 만큼 코로나의 경제적 악영향이 컸던 것이다. 오죽하면 주 정부가 관리하는 실업수당 기금 잔액이 메마를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올까. 



이처럼 코로나19는 경제 패권을 쥔 부(富) 국의 일원으로서 늘 지원자이거나 누군가의 자립을 독려하는 존재이기만 했던 미국 사회에서 거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게 했다. 사회 대다수가 공유하던 "나는 늘 자립적인 존재"라는 자긍심이 "나도 필요하면 지원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자기 비하로 바뀌어가는 이 시점에, 고가의 욕조에서 마돈나가 외친 '이퀄라이저'는 미국 사회 다수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던 오발탄이었던 셈이다.

지하철을 타야만 했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선언될 정도로 확산한 코로나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정도는 각자의 계층과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때문에 빈부 격차가 커지는 것도 확실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거나 포착이 돼도 대다수가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때에는 거슬리지 않았던(또는 무관심했던),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특히 의료 서비스 부문에서 이 계급 격차 문제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사실 이 문제는 2007년 다큐멘터리 '식코'가 화제가 됐을 정도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료민영화가 적용되는 미국은 병원비도 보험료도 모두 비싸 저소득층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정도이다. 보험이라도 들어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보험료도 비싸 이를 나눠낼 직장(고용주, 고영인 반반)이 없으면 언감생심이다.



차상위 계층에게 의료 혜택을 부여하려는 목적의 '오바마케어'가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아직 27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인구 약 3억 3100만 명의 8.5%에 해당되는 수치다. 그런데 CNBC 방송은 최근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코로나19 치료를 받으려면 병원비 4만 2500달러(약 5250 만 원)에서 최대 7만5000달러(9270만 원)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보험료가 부담돼 가입도 안 한 사람들에게 이만한 돈을 감당해 낼 여지가 있을 리 없다. 코로나에 걸려도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더 최악인 것은 실업자가 늘면서 직장 의료보험을 잃는 사람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금의 실업자 추이를 감안하면 조만간 5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의료 보험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인구 수에 맞먹는 미국인이 코로나 사각지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얘기. 이 암울한 전망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유력 후보는 누구이겠는가.



뉴욕시를 비롯해 코로나 확산 국면에 직장 폐쇄 등의 조치를 단행했던 때 어쩔 수 없이 지하철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콜센터 직원이나 청소부, 음식점 종업원 등 저숙련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뿐만 아니라 평균 이상의 급여를 받더라도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급증하는 실업 수당 신청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범주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원인과 결과의 문제를 떠나 코로나19 사태는 빈익빈 빈익빈의 실태를 여가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실 지금까지 상위 10~20%의 소득이 다른 계층 군에 비해 월등히 앞서가는 양극화는 꾸준히 강화되고 있었다. 미국 인구조사국과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월스트리트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미국 지니계수(숫자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는 꾸준히 늘어 0.5를 향해가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18 지니계수는 0.48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보통 이 수치가 0.5를 넘으면 폭동과 같은 극단의 사회 갈등이 나타날 만큼 불평등하다는 것으로 평가한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그간 애써 외면해 오던 치부, 빈익빈 부익부의 실상을 들춰냄과 동시에 악화시키기까지 하면서 미국 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자영업자의 몰락과 명품 소비의 증가 사이

한국이라고 다를까. 미국에 비해 의료 복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코로나 확산세도 미국보다 빠르게 잦아들고 있다. 하지만, 직장 폐쇄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에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줄폐업·도산의 위험이 높아진다.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 대출과 기업 대출의 증가 폭이 통계 집계 이후 모두 최대치를 나타냈다. 빚을 내 버티는 형국이 펼쳐진 것이다.

정부가 마련한 소상공인 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은행 앞에 긴 대기줄을 만들고 있는 자영업자들, 기업의 신입 채용 계획이 미뤄지면서 애태우는 취업 준비생들, 직장을 잃어 생계가 막막해진 실업자들 등등. 1997년 외환위기 당시가 재연된 것 같은 모습이 주변에 즐비하지만 또 다른 곳에선 별세계의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 패션 시장이 평균적으로는 초토화됐음에도 유독 고가 브랜드는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랑방 컬렉션과 타임, 텀브라운 등 고가 브랜드의 1분기(1~3월)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보다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백화점 또한 전체적으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3월 이후 명품관 만큼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분위기다. 샤넬과 루이비통 등 롯데백화점의 해외 명품브랜드의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2월과 3월, 각각 6%와 마이너스(-) 19.3%를 나타냈다가 이달 들어 10% 후반대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소비자로서는 그간 참아왔던 소비를 명품으로 대신하는 일명 '보복 소비'를 행했을 수도 있다. 이를 도덕적으로 비판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소비 시장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면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이 코로나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는 구조적 변동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야 빚을 내거나 정부 지원금으로 어떻게든 버텨냈던 대다수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수수 무너지고, 한편에서는 소수 고소득층이 주식 투자 등의 방식으로 자산을 늘리면서 양쪽의 격차가 벌어진다면 한국 사회는 코로나19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환자만큼이나 경제의 생존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역사적으로 대공황과 같은 경제 충격이 있고 나면 산업계는 대거 재편되는 형태가 반복돼 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이전 보다 더 호황을 누렸던 것도 한 예. 지금의 위기 속에서도 신 산업의 기회를 찾아내고, 양극화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분기점을 맞이할지 모른다. 이미 다른 국가보다 더 빨리 코로나19 사태를 관리·통제 하에 두고 있는 만큼 그 가능성은 실제 적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도약의 시기를 맞이할까, 양극화의 참상을 겪게 될까.

인터비즈 김재형 박소영 디자인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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