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SP] 삼성 라이온즈 김상헌 응원단장

선수 못지않은 팬 사랑을 보여주는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장 김상헌 인터뷰

앞만 보고 나아간 남자


‘공을 굴리면 무언가가 일어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야구 만화에서 나오는 말이다. 뜬공의 경우 포구의 성공 여부가 모든 것을 가르지만, 땅볼은 포구–송구–포구라는 세 번의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땅볼과도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몇 번의 변수와 마주친 끝에 야구단 응원단장이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그럼에도 최고의 응원가와 신나는 응원 유도로 삼성 라이온즈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남자. 김상헌 단장을 알고 싶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최홍서 Location 대단한 미디어

<더그아웃 매거진>과 인터뷰는 처음입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응원단장 김상헌입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헌토벤’, ‘허니 단장’, ‘허니형’같은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는 중입니다.

팬 여러분들이 직접 만들어주신 거니까 좋고 싫고를 떠나 감사할 뿐이죠.


응원단장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6월에 대만프로야구 한국의 날 이벤트에 초청되기도 했어요.

대만에는 처음 갔는데 이벤트적인 점이나 야구 문화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특히 팬들과 구단이 하나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낀 건가요?) 경기에서 이기면 팬서비스 차원으로 불꽃놀이 폭죽을 쏘는데 담당자 말로는 그날 총 입장 수익의 절반이 불꽃놀이 비용으로 나갈 정도라고 해요. 그 말을 듣고 ‘팬들을 위한 야구를 하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죠.


평소 단상 위에서 열정적이고 흥겨운 응원으로 팬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면 학창 시절에도 리더십 있는 학생이었을 것 같아요.

저는 매우 조용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학생이었다고 회상하는데 나중에 응원단장이 되고 친구들을 만났더니 “너 원래부터 시끄러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백댄서부터 응원단장까지


가수의 길을 걷기 위해 백댄서를 시작했다. 하지만 IMF 경제 위기 때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무대 위에 서기는커녕 아스팔트 바닥에서 춤을 춰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다행히 지인의 추천으로 춤만 춰도 돈이 나온다는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선택이 됐다.


유승준의 백댄서로 일하기도 하는 등 댄싱 팀에서 활동한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요. 원래 꿈은 댄서나 연예인 쪽이었던 건가요?

어려서부터 가수가 꿈이었어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 집 전화로 ARS에 연락해서 오디션을 보는 게 있었거든요. 어머니 몰래 이불을 덮어쓰고 몇 번씩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또 그때는 백댄서를 통해 가수나 연예인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많았어요. 코요태의 김종민 씨도 그렇고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아,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이왕 하는 거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ING라는 팀의 대구 단원으로 들어가 활동했어요. 유승준과 무대에 서봤던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백댄서로 활동하다가 이벤트 회사의 무용단에 들어갔어요.

IMF 경제 위기 때 속해 있던 백댄서 팀이 사라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주변 지인들이 춤도 출 수 있고 공연 수익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오디션을 보러 가서 직원이 된 거죠. 그 회사가 삼성 라이온즈 대행사였어요.


원래도 야구를 좋아하는 편이었나요?

일하기 전까지는 야구장에 태어나서 가본 적도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야구장에 가는 게 일이었죠. 그런데 점점 야구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당시 마스코트들은 선수가 홈런을 치면 그 선수와 함께 3루부터 홈까지 텀블링을 하면서 들어오는 퍼포먼스가 있었어요. 그걸 하려면 계속 경기를 봐야 했어요. 계속 경기를 보는데 선수가 누군지도 모르니까 전광판을 보며 선수들을 외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누가 잘하는지 알게 됐고 경기를 보며 ‘이 타이밍에서 누가 나오면 굉장히 잘할 것 같은데?’ 같은 예측도 해보고요. 그렇게 야구에 빠져들었어요.


마스코트 사순이, 애니비로 활동했을 때 엄청난 끼를 발산하며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어요. 퍼포먼스는 모두 직접 생각했던 건가요?

스토리텔링식 퍼포먼스를 먼저 시도했는데 잘 안 됐어요. 어떻게 해야 재밌게 할 수 있을지 서점에서 책도 읽어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무언극을 배워보려고 계명대학교의 연극예술학과에 편입했어요. 대학에서 연출이나 기획 쪽을 배우고 나니까 이걸 어떻게 한번 활용해봐야겠다는 영감이 떠오르더라고요. 회사 동료들에게 제가 배워온 것을 교육하며 새로 구상한 퍼포먼스를 연습했죠.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마스코트 네 명의 합이 잘 맞아서 사랑을 받게 됐어요.

마스코트를 거쳐 2013년부터 응원단장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원래는 다른 분이 응원단장을 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구단 관계자분이 오셔서 네가 한번 해보겠냐고 하셔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어요. 갑자기 기회가 와서 응원단장이 된 거죠.


처음 응원단장이 됐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애니비 마스코트를 하는 3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거든요. 말도 못 하고 몸짓으로만 팬들과 소통을 하는 게 어려웠어요. 벽을 넘기 위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뮤직 토크처럼 만들려고도 했는데 실패했어요. 그래서 응원단장이 되면서 제일 먼저 ‘이제 말을 할 수가 있구나’라는 거였고 다음이 얼굴에 땀이 흐를 때 편하게 닦을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부임한 첫해부터 노련하게 응원을 주도하며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팬 여러분을 잘 알고 있어서 가능했어요. 팬분들은 제 얼굴을 못 보셨지만 저는 3년 동안 얼굴을 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쉽게 친해지고 또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알고 있었죠.


2017년부터는 장내 MC까지 겸하게 됐어요.

제가 하겠다고 한 적은 없고요, 구단에서 갑자기 하라고 해서… . (하하) 진짜 별 이유 없습니다. (두 가지를 맡는다는 게 부담스럽거나 힘들지는 않았나요?) 부담스러웠죠! 제가 아니면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 이왕 하는 거 잘했으면 좋겠어서 다른 MC분들의 진행도 보러 다니며 공부했어요.

#김상헌은 어떻게 헌토벤이 됐나


2019년 현재 김상헌 단장은 KBO리그에서 손꼽는 최고의 응원단장 중 한 명이 됐다.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을 때도 팬들이 선수들을 전력으로 응원하게 만드는 응원 유도는 물론이고, 이학주의 응원가를 비롯한 불후의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그가 백댄서 경력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음악에도 조예가 있던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실은 많은 이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8년 KBO 응원가 저작권 사태가 터진 이후 수많은 응원가를 자작했고 좋은 평을 받았어요. 다른 구단에 비해 클래식 음악 등을 활용한 자작곡의 비중이 높은데 이유가 있나요?

10개 구단 중 제일 먼저 법적 소송을 당한 구단이 삼성이었습니다. 당시 구단과 회의를 하면서 나온 결론이 자작곡으로 하자는 거였어요. 유럽 축구단 같은 사례를 보니 처음에 자리를 잘 잡은 응원가는 구단이 존속하는 한 영원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잘 만들어놓은 응원가는 오래 갈 수 있다. 1년에 3개씩만 잘 만들어도 3년이면 라인업 아홉 명이 나온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한번 해보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자작곡의 퀄리티가 굉장히 좋습니다.

전문가님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이런 풍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저작권에 안 걸리는 곡으로 만드는 편법을 써주신 거죠. 원래는 그분들 이름으로 올라가야 할 곡들이 꽤 있어요. 그분들이 그냥 제 이름으로 저작권을 등록하라면서 주셨어요. 곡을 선택하고 가사를 만드는 일을 제가 했다는 것을 높게 사주시는 것 같아요.


응원가를 만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화장실이요. 샤워할 때 혼자 “흥흥흐헤네에~ 네네네네~”라고 흥얼거려요. 그러다가 후크송 느낌이 나거나 곡이 며칠 맴도는 그런 노래가 있으면 녹음을 해놓습니다. 두 번째가 운전하면서예요.


그렇게 만든 곡이 무엇인가요?

이학주 선수 응원가가 다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죠.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중에 나온 노래예요.


김상헌 단장은 응원가를 만들 때 꼭 유튜브를 통해 팬들에게 초안을 들려준 후 찬반 투표를 거친 끝에 제작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했다. 응원가를 불러주는 사람은 선수도 아니고 구단 인사들도 아닌 경기장에 와주는 팬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유튜브로 팬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곡을 만들어야겠다는 구상하게 됐나요?

응원가를 불러주는 사람들이 팬들이잖아요. 아프리카 TV 같은 플랫폼은 솔직히 ‘돈을 주세요’라는 분위기라 지인이 유튜브를 해보라고 추천해서 살펴보니까 다른 구단 응원단장님들 중에 유튜브를 하고 계신 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먼저 해봐야겠다고 결심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영상을 올려놓고 시간이 지나면 피드백이 달려서 편하더라고요.


팬들과 소통 도중 자작곡 제작 피드백 외에도 얻은 점이나 소감이 있을 것 같아요.

개인의 취향을 100% 의견을 수렴할 수 없겠다는 것이요. 애매한 게 있으면 라이브 방송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떤지 팬들에게 여쭤보거든요. 그러면 토론 분위기가 형성돼요. 좋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개선점을 제시하는 의견도 나오고요. 개개인의 취향들을 얘기하고 그게 모여서 응원가가 만들어지는데 어렵지만 좋은 방향을 나아가는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시즌 중에 자작곡 응원가를 만드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라서 코드도 잘 못 찍고 정말 힘들어요. 생각의 흐름대로 만들면 모든 곡이 다 똑같아지는 단점도 생기고요. 2~3년 정도 하고 있지만 계속 공부를 병행하면서 배워가는 단계예요. 그래도 제일 힘든 건 응원가를 만들어놨는데 그 선수가 안 나올 때예요. 구단에 제작비를 받아서 준비했는데 해당 선수가 안 나오면 애매해지거든요.


일단 선수가 경기에 출장해서 응원가가 나오면 좋은 평을 받잖아요. 이학주의 응원가는 10개 구단 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고요.

덕분에 이렇게 잘돼서 촬영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인기를 끌 거로 생각한 곡은 아니었어요. 유튜브에 올렸을 때 ‘가사가 너무 단순하다’, ‘선수 이름밖에 없지 않느냐’, ‘워어어어 되게 좋아하네’라는 댓글이 많았거든요.


주로 어떨 때 응원단장으로서 보람을 느끼나요?

자작곡을 제작하기 시작한 뒤로 만든 곡들이 팬들에게 사랑받을 때! 또 제일 기분 좋을 때는 응원단장 선배님들께 칭찬받을 때예요. 김주일 단장님은 이학주 선수 응원가를 듣고 “응원단장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히트곡을 만든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어요.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승리를 위해’, ‘승리를 위한 노래’ 등등 팬들에게 사랑받는 응원가가 참 많은데요. 본인이 생각하는 베스트 3가 궁금합니다.

방금 얘기한 게 다 순위 안에 드는 것 같습니다. (웃음) ‘투게더’도 4등 될 것 같아요. 투게더는 하루아침에 나온 곡이에요. 팬 여러분에게 들려드렸을 때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얻었고 전문가의 손을 거쳐서 제대로 된 음악이 나왔을 때 좋아하시더라고요.

#김상헌 단장이 생각하는 응원문화


응원가를 통해 유명해진 김상헌 단장이지만 그는 응원가로만 단장의 능력이 평가받는 세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응원단장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그라운드와 팬들의 모습이 궁금해 구성한 아래의 질문에서 그의 응원에 대한 철학과 응원단장이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삼성에서 응원단장으로 활약한 지도 7년째입니다. 그동안 선수들과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혹시 선수들과의 추억할만한 이야기가 있나요?

응원단장이 선수들과 친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응원단이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아니거든요. 팬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편하게 만나고, 사인받는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삼성 선수들은 경기장 1층에서 생활하고 응원단은 2층에서 지내고 있어요. 더그아웃은 촬영 등의 목적 없이는 들어갈 수 없고요. 선수들과의 에피소드는 오히려 마스코트로 활동했던 시절에 더 많죠. 대구시민야구장 시절에는 선수들과 응원단이 다 함께 1층을 사용했거든요.


지난 응원가 저작권 사태 때 팬들이 혼란에 빠졌던 일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응원은 KBO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습니다.

응원가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왜 응원가를 잘 만들어야 좋은 응원단장이 되는 걸까?’라는 것이었어요. 노래를 잘 만든다고 해서 응원을 잘하는 게 아니에요. 현장의 분위기와 상황을 읽고 이에 대응하는 노하우가 갖춰져야 진짜 멋진 응원단장이 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응원단장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한 팀에 소속감을 느끼고 응원하는데 그들 앞에 한 명의 리더가 있는 거예요. 이 리더는 팬들과 소통을 잘해서 그분들이 좋아하고 신나게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응원과 하나가 되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KBO리그의 응원문화를 잘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문화가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응원단장이라는 직책은 생각보다 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경기 중에는 팬들 앞에 서 있다 보니 오해하시는 부분들이 되게 많아요. 아무래도 팬들을 일어났다 앉혔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역할은 지극히 한정돼 있어요. 그게 조금 아쉽죠. 응원단장으로서 조금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야구는 유독 타자들의 응원가에 비중이 치우쳐져 있어요. 투수들의 응원가를 작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요?

어렵지 않죠. 투수들의 응원가를 언제 틀지 정하는 게 힘들죠. 선발투수 같은 경우에는 1회에 처음 마운드에 나올 때 가능한데 그날 시구 같은 행사가 있으면 애매해요. 삼진을 잡을 때마다 하면 삼진송이 없어지고, 내려갈 때 틀면 그 선수가 부진했던 날에는 힘들고요. 원태인 선수가 투수 응원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을 저도 들었어요. 계속 고민 중입니다.

김상헌 단장에게 야구란 무엇인가요?

저를 김상헌 응원단장으로 만들어준 스포츠죠. 야구라는 종목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응원단장으로서 팬들에게 한마디 남겨볼까요?

응원단장으로서보다 삼성팬으로서 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 팀 성적이 조금 안 좋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삼성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혼낼 게 아니라 힘낼 수 있도록 칭찬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나 싶습니다. 못할 때는 잘하라는 격려의 응원을, 잘할 때는 잘한다고 칭찬의 응원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부끄럼쟁이도 어깨춤을 추며 응원가를 떼창하게 만들 정도로 활기찬 모습 뒤에는 한없이 진중한 일면이 숨겨져 있었다.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 머무를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어 보였다. 더 나은 응원곡을 위해, 응원문화를 위해, 팬들을 위해. 끊임없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고, 그 결과 오늘날의 김상헌 단장이 될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단상 위에서 더더욱 찬란히 빛날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2호(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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