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 지도자들이 나설 차례다[기고]

2022. 9. 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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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마침내 부분동원을 선포하면서 러시아의 국가 기능이 사실상 ‘준전시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가용한 모든 전쟁 수단을 동원할 것임을 공식화하면서 7개월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 7월 초 러시아군이 루한스크 점령을 공식화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돈바스 조기 점령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서방의 결속력 약화를 우려해 반격작전을 준비하며 전세 역전을 모색해왔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9월 10일 이지움과 발라클레야 등 하르키우 축선에 배치된 지상군의 철수 결정을 발표하고 향후 ‘부대 재배치’를 통해 돈바스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이번 철수작전 직전까지 하르키우 전체 면적의 약 30%를 점령하고 있었다.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이자 2014년 크름(크림) 병합 당시 돈바스 지역과 함께 친러 분리주의 운동이 크게 확산했던 지역이다. 특히 하르키우가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유입을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전황 악화에 따른 러시아군의 철수는 뼈아픈 패배로 평가된다. 또한 네오 나치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특별군사작전의 명분을 고려할 때 러시아 전쟁지도부의 하르키우 포기는 러시아계 국민에 대한 방위공약 폐기이자 전쟁목표의 축소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내부의 비판과 동요도 예상된다.

9월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수복한 동북부 하르키우주 쿠피안스크 마을 입구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다. /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우크라이나군의 기만작전 성공

러시아군이 루한스크를 점령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100만명의 병력을 동원해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 남부 지역을 수복하기 위한 대규모 반격작전을 예고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대비해 돈바스에 배치된 일부 병력을 남부 지역으로 전환하고 러시아 본토에서 병력을 증원해 군사태세를 강화해왔다. 한편 우크라이나군은 게릴라전을 통해 크름지역의 사키공항에 배치된 공중자산을 타격하면서 러시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또한 러시아군이 ‘고가치 표적’으로 확보한 자포리자 원전 일대에 우크라이나군이 의도적으로 위협을 조성하자 러시아 전쟁지도부의 관심이 남부 지역으로 쏠리면서 하르키우에 대한 ‘배비(配備)’가 상대적으로 약화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축선에서 양공(陽攻·Feint) 작전을 통해 러시아군의 ‘전투력 분산’을 강요하고, 하르키우 및 돈바스 축선에 군사력을 집중할 수 있는 ‘결정적 호기’를 창출했다.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수복 작전은 미국과 나토가 수차례 워게임을 통해 러시아군의 취약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기만작전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회자할 것이다.

지난 3월 말 러시아군이 북부 축선에서 철수한 이후 부차와 이르핀 등 키이우 인근의 전략적 요충지를 재점령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군의 실질적 통제권에 놓이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내부적으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는 한편, 무기 및 인도적 지원 등 서방의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평가된다. 하르키우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전쟁목표를 감안할 때 러시아군의 철수 결정은 미국의 ‘정보우위’와 우크라이나군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강요된 측면’에 부분 동원령 발동 등 우발계획(플랜B)을 시행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양면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기만작전은 향후 하르키우 축선에 대한 러시아군의 ‘역공격’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미사일 공격 강화 등 대공세를 위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르키우 성과’를 계기로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고자 하는 우크라이나의 의지와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서방의 의도가 공고하게 연대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부분동원’과 ‘전투력 복원’을 통해 돈바스 및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의 군사적 통제를 강화하고 주민투표 절차를 거쳐 영토 병합을 조기에 완성해 제한된 전쟁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서방의 정치적 의지와 이해가 충돌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전쟁 정보와 무기를 지원하면서 러시아와의 대리전이 격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나토가 군사동맹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면서 글로벌 안보 지형이 결정적 도전과 변화에 직면했다.

국제사회의 세력권 분리 가속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나토의 신(新)전략개념과 강력하게 연동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중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정상회의를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면 정상회담을 했다. 양 정상은 핵심 이익의 영역에서 강력한 연대와 협력을 재확인하고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위한 양국의 지도적 역할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공유했다.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사태의 결합은 강대국 간 ‘세력권 분리’를 가속화하며 세계 평화와 번영을 지향하는 유엔 헌장을 형해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과거의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제국주의 증후군에 함몰돼 있다. 서방은 민주적 가치와 주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냉전적 감정을 이번 사태에 쏟아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극한 대립은 글로벌 공동체의 상처만 깊게 한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되면서 아프리카 및 중동 등 빈곤국의 인도적 위기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러시아가 전장(戰場) 밖에서 추구하는 ‘에너지 무기화’ 전략은 겨울철이 가까워질수록 유럽의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부추기고 경기침체 우려를 확산시키며 국제질서의 건전성을 파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극단적 상황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주권 국가를 침공한 러시아의 불법적 태도에 대해 국제사회가 단호한 연대를 유지하되 전쟁을 예방하지 못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묻혀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누가 얼마만큼 승리하고 패배하는가를 무한 반복으로 평가하는 루틴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최소의 희생으로 이 전쟁을 어떻게 종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진정성 있는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한 ‘쿠바 미사일 위기’를 교훈 삼아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이번 사태의 이해 당사자는 물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차례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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