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쌀이 더 맛있다?" 한국 밥맛 떨어진 이유
맛있는 밥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흔히 커피와 같다고 합니다. 커피 맛을 좌우하는 건 좋은 원두와 로스팅 방식과 일자 등이죠. 쌀에 있어서도 좋은 쌀 품종, 도정일자와 방식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쌀 품종만 놓고보면 한국 쌀도 일본 쌀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표적인 일본 쌀 고급품종인 고시히카리와 비교해서 밥맛만 놓고보면 오히려 한국 쌀이 우수하다는 식의 기사도 더러 보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한국 쌀 품종은 자국민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반면 일본 쌀, 대표적으로 고시히카리의 경우엔 고급품종으로 인식돼 중국에선 주요 백화점에 일본 전문업체 브랜드 그대로 입고되기도 했죠. 현재 일본산 고시히카리 제품은 중국에서 2kg당 우리 돈 기준으로 2만5000~3만 원 정도에 팔립니다.
지금도 중국 쌀에 비해선 9배 가량 더 비싼 셈입니다. 일본쌀이나 한국쌀이나 다름 없다는데 일본쌀만 명품으로 통합니다.
멀리갈 것도 없이 일본을 자주 다녀오는 젊은 친구들이 "한국 밥보다 일본 밥이 더 맛있다"라는 평가도 많이 내리더군요. 실제로 밥을 먹어보면 품질 차이가 있다는 거죠. 다른 데서 문제가 있는 걸까요. 그렇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품종이 아니라 수확 후 과정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일본에서 대부분의 벼 농사는 일본 농협인 JA와의 계약 재배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수확후 앞서 농가와의 계약에 따라 JA가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때 철저하게 관리하는 부분이 바로 여러 품종의 쌀을 섞는 이른바 혼합을 방지하는 일입니다. 우선 유통과정부터 단계적이고 체계적입니다. 각 품종별로 따로 보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벼 품종에 따라 창고를 나누고, 기온이 오를 무렵 현미로 도정해 보관하는데 수시로 DNA검사를 통해서 쌀이 섞이는 것을 막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품종을 관리한 쌀은 도매업자로 넘겨지는데, 도매업자들 또한 현미를 백미로 만드는 정미과정에서 깨진 불완전 쌀들을 걸러내는 선별기를 갖추고 있죠. 결과적으로로 쌀이 깨지지 않은 '완전미'의 비중이 90%에 이릅니다. 한국 쌀 완전미가 80% 수준인 것과 차이가 큽니다.
반면 한국 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혼합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국에선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쌀이 혼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대부분은 2~3개 품종이 섞입니다. RPC엔 여러 농가에서 재배한 다양한 품종의 쌀이 들어옵니다.
RPC 입장에선 쌀을 받는 농가수가 많아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농가의 쌀이 섞이면서 품종도 함께 섞입니다. 물론 혼합을 통해 풍미를 높일 수도 있지만, 그런 취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여전히 국산과 수입쌀을 섞고 생산연도가 다른 쌀을 혼합해서 팔아서 문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도 2015년 들어서 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는 적발 사례가 나옵니다)
이러니 오랫동안 한국선 같은 품종 쌀로 표기됐다고 하더라도 품질이 제각각이었던 거죠. 소비자들 마음속에서 품종에 대한 브랜드 인지가 생기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보통 한국에선 주로 쌀 품종 보다는 대신 산지로 쌀의 품질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죠 (소비자 입장에선 산지 보다 품종이나 도정일자를 따져보는 게 맛있는 쌀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주로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하는 유력 경제지를 중심으로 쌀값이 떨어질 때마다 정부가 쌀 수매량을 확대하면서 생산조정을 해주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제도가 쌀 과잉 생산을 유도하고, 농가 역시 이 때문에 품질 향상 보다는 여전히 양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생산량을 늘리는 질소비료를 과하게 쓸 경우 쌀을 딱딱하게 만드는 단백질 함량이 늘어나고 맛은 떨어집니다. 정부는 이를 낮출 것을 권고하지만, 현장에선 잘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흔히 일본보다 질소비료를 2~3배 더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질 보다는 생산량에 의해 농가의 소득이 보전되는 체계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질소비료를 주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죠. 그러니 계획적 추곡수매 및 그에 따른 보조금 지급 중단 절차를 밟은 일본처럼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요. 그러나 농가의 수익과 관련된 일이라 섣불리 제도를 손보기 어려워 고민은 깊어집니다.
확실한 것은 미식 열풍이 불고,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쌀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고, 도정일자부터 방식, 품종 관리 방법, 각종 인증 등 소비자 정보를 늘리면서 경쟁을 촉구하는 방향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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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41호('한 끼의 행복'이라는 설렘을 판다, 필자 신현암)에 따르면, 일본 도쿄에 위치한 쌀가게 아코메야는 같은 고시히카리 품종이라고 하더라도 지역별(현 단위)로 가격을 달리 책정하고, 쌀마다 찰진 정도와 부드러운 정도에 따라 2×2 매트릭스를 그려 고객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3끼 분량인 450g 포장 보다 작은 규격으로도 쌀을 판매하죠.
젊은층 사이에선 이 300g 짜리 소포장 쌀을 연인간의 선물로도 주고 받는다고 해요. 단지 스쳐가는 사랑이 아니라, 평생 밥을 함께 먹는 사이라는 뜻을 담은 선물이라네요. 인구감소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자유무역 확대에 따른 소비시장 위축이라는 공통 조건을 가진 한일 두 나라지만 쌀의 위상은 이처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앞으로 식재료 품질에 대한 소비자 요구는 늘어날 겁니다. 이미 지금도 맛에 대한 메시지 없이 단순히 '아침밥 먹읍시다'와 같은 캠페인성 구호만 앞세워서는 설득이 잘 되지 않죠.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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