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군산 공군기지에 미국의 최첨단 F-35 스텔스 전투기를 영구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흥미롭습니다.
한국의 국방 전문가도, 미국 국방부도 아닌 워싱턴DC의 '국제대만연구소(GTI)'라는 친대만 성향의 연구소가 이런 주장을 내세운 것입니다.
왜 대만을 지지하는 연구소가 한국 땅에 미군 전투기를 배치하자고 나섰을까요?
이 뒤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 견제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퍼즐이 숨어있습니다.
대만 연구소가 한국을 주목하는 진짜 이유
국제대만연구소의 벤저민 샌도 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그들의 의도가 명확해집니다.
현재 주한미군 2만8500명 중 지상 전투 병력인 육군은 1만6000명에 불과하고, 이들로는 대만 유사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주한미군이 보유한 62대의 F-16 전투기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F-16의 전투 반경이 800km에 그쳐서 오산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대만까지 가려면 최소 한 번은 공중 급유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의 방공망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샌도 연구원은 군산 공군기지에 F-35 배치를 구체적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군산 기지에 배치된 F-35는 작전 반경이 1088km로 더 길어지게 되고, 무엇보다 스텔스 기능으로 중국의 방공망을 뚫고 대만까지 직행할 수 있다는 게 핵심 논리입니다.
한국이 대만 방어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죠.
트럼프의 '하나의 전장' 구상과 맞아떨어지는 타이밍
이런 주장이 나온 시점이 우연의 일치는 아닙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 3월 '임시 국방전략지침'에서 대만 방어의 중요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일본도 여기에 편승해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 일대를 '원 시어터(하나의 전쟁 구역)'로 묶자고 미 국방부에 제안한 상태입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주한미군 병력 중 4500명을 다른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이 미 국방부 내부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 억지에서 중국 견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최근 애스펀 안보포럼에서 "우리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은 여전히 한국전쟁"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됩니다.
70년간 주한미군을 배치했지만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미국 보수층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릴 위험성
문제는 이런 전략이 한국에게는 달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안보 전문가들이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대만 분쟁에 자동으로 개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샌도 연구원도 이런 우려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보고서에서 양안 분쟁과 한반도 위기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제했지만, 대만 상황이 먼저 터지고 주한미군 자산이 한국 밖으로 이동할 때 북한이 남한을 도발할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결국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중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F-35가 군산에 배치되면 중국은 한국을 대만 공격의 잠재적 위협 요소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엇갈리는 목소리들
흥미롭게도 미국 내부에서도 대만 개입에 대한 시각이 갈립니다.
워싱턴DC의 지정학 싱크탱크인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즈의 제니퍼 캐버너 선임 연구원은 포린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인지 여부조차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대만에 F-35나 고가 군함 같은 무기보다는 드론, 기뢰, 대함 미사일 등 더 작고 저렴한 무기 시스템을 지원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중국과의 전면전에서 미국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안보 책사인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 차관의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캐버너 연구원이 쓴 글의 제목이 '대만 해결책: 미국의 전략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의존해선 안 된다'였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누구를 위한 '전략적 유연성'인가
결국 핵심은 '누구를 위한 전략적 유연성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국제대만연구소 같은 친대만 성향 연구소에서 한국 땅에 F-35 배치를 주장하는 것은 대만 방어를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한국의 안보나 이익은 부차적 고려사항일 뿐이죠.
트럼프 행정부 역시 중국 견제와 인도태평양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역할 분담을 늘리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상대해야 하는 최전선 역할을 떠맡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신중히 판단해야 할 시점입니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가 한국의 안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릴 위험도 함께 커진다는 양면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이 중요한 시점
국제대만연구소의 F-35 한국 배치 주장은 결국 변화하는 동북아 지정학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한국이 더 이상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닌 인도태평양 전체의 균형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과연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만을 지지하는 연구소가 한국 땅에 미군 전투기를 배치하자고 나서는 상황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한국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을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먼저 제기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한국은 동맹의 요구와 자국의 이익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깊이 있는 고민과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F-35 배치 문제는 그 시작점에 불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