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이코패스 범죄의 진화: 엄인숙의 바늘에서 김소영의 AI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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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오빠가 제 핸폰으로 푸라닭 시키고 영화보고 눈풀리고 급자셔서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식 곧 올때쯤에 오빠를 제가 잠깐 깨우긴 했었는데..."

지난달 9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김소영(20)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을 빠져나오며 누군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낸다. 문자에는 모텔에서 치킨을 시켰던 일, 택시비를 자신이 현금으로 받은 일, 모텔을 먼저 빠져나간 이유 등이 두서없이 적혀 있었다. 마치 자신의 알리바이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듯한 이 문자의 수신인인 20대 남성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약물이 든 음료로 남성들을 잇달아 살해한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김소영의 범행 후 행태는 이렇듯 당당하고 자연스러웠다.
김 씨는 강북구 일대 모텔 등에서 20대 남성들에게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네 2명을 숨지게 하고 1명을 의식불명에 빠뜨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기존에 확인된 사망자 2명과 의식불명 1명 외에, 추가로 의식을 잃었던 남성 2명이 더 확인되면서 전체 피해자는 최소 5명으로 늘어났다
데이트 상대를 고른 기준은 단 하나, '약물에 취하기 쉬운 남자'
김 씨는 SNS 등을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불특정 남성에게 메시지를 보내 친분을 쌓고 실제로 만나 어울리며 범행 기회를 노렸다. 장소는 식당, 카페, 노래방, 모텔 등 다양했다. 김 씨는 만남을 준비하면서 집에서 약물을 넣은 숙취해소제나 피로회복제를 챙겼다. 해당 약물은 벤조디아제핀이 함유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였다. 김 씨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다고 거짓으로 호소하면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이다.

벤조디아제핀 성분을 함유한 약을 술과 함께 복용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김 씨는 그 점을 파고들었다. 처방 받은 알약을 식칼 손잡이로 빻아 가루를 만들어 음료에 넣는 작업을 반복하며 챗GPT에 수십 차례 자문도 구했다.
"수면제 과량이랑 술을 같이 먹으면 어떻게 돼??" 챗GPT는 분명하게 경고했다. "같이 먹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과량 복용하면 심한 졸림, 의식저하, 혼수, 사망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물론 김 씨의 범행이 단번에 성공한 건 아니다. 지난해 1월 서울 방배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20대 남성은 김 씨를 만나 술을 마시다 의식을 잃었다. 같은 해 12월 경기 남양주시 한 카페에서는 김 씨와 함께 있던 20대 남성이 갑자기 쓰러졌다. 올해 1월 서울 강북구 한 노래방에선 30대 남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세 남성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김씨는 30대 남성이 쓰러질 당시에는 현장을 혼자 빠져나오려 했으나, 노래방 사장이 "동행과 같이 나가야 한다"고 하자 직접 119에 신고하기도 했다.
세 차례의 범행이 미수에 그치자, 김 씨는 약물 함유량을 기존보다 2배가량 늘렸다. 결국 올해 1월과 2월 서울 강북구 모텔에서 각각 만난 20대 남성들은 김 씨가 건네준 음료를 마시고 사망에 이르렀다. 김 씨는 첫 번째 살인 이후 일본 교토로 여행을 떠났고, 여행 중에 두 번째 살인 피해자와 연락하며 만남을 제안한 것으로 파악됐다. 두 번째 살인을 벌인 뒤에는 모텔에서 치킨집에 치킨, 치즈볼, 떡볶이 등 22개 메뉴 배달 주문을 넣어 남성 명의의 카드로 13만1800원을 결제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배달 음식은 자신의 집에 가져갔다.
죄책감 제로, 공감 능력 제로…사이코패스 25점의 의미
김 씨의 행동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찰은 그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평가를 진행했다. 점수는 40점 만점에 25점을 받아 사이코패스로 판정(25점 이상)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이코패스 평가는 대인관계, 정서적 문제, 생활방식, 반사회성 등 크게 4가지 성향을 기준으로 세분화해 평가한다"며 "김 씨는 세부 내역에서 죄책감과 공감 능력 결여, 충동성 등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한 송치결정서에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고급 음식점·호텔 방문 등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김 씨가 피해자들에게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게 하거나 배달 음식을 주문하게 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김 씨는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지내왔다고 한다. 부친으로부터는 지속적 폭행과 폭언을 당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수사당국은 김 씨가 사회적 단절 속에서 강한 자기중심적 성향을 형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거짓말과 이중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사이코패스 특유의 '범죄 행태'에도 관심이 쏠렸다. 유영철이나 강호순처럼 남성 사이코패스의 경우 물리력을 주로 사용하지만, 여성 사이코패스는 독극물이나 약물을 이용해 피해자를 무력한 상태로 만들고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엄인숙, 이은해, 정유정…그리고 김소영
과거 유명한 사례는 '엄여인 사건'이다. 엄인숙은 2000년 5월부터 2005년 2월까지 4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2006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보험설계사 출신인 그는 남편 앞으로 보험에 가입한 뒤 남편을 수면제로 재우고 핀으로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가 하면, 몇 달 뒤에는 남편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부어 전치 4주 화상을 입혔다.

첫 번째 남편은 결국 사망했는데, 엄인숙은 두 번째 남편에게도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 아울러 엄마와 친오빠를 주삿바늘이나 염산으로 실명시키고 오빠와 남동생이 사는 집에 불을 질러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엄인숙의 사이코패스 점수는 4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계곡 살인 사건'의 이은해도 유사한 범행 패턴을 보인다. 이은해는 피해자인 당시 남편에게 복어 독 등을 먹였고, 계곡에 놀러간 뒤 4m 높이의 바위에서 3m 깊이의 물로 구조장비 없이 뛰어들게 했다. 수영을 못하는 피해자는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결국 사망했다. 이은해는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31점을 받았다.
'제주 전 남편 살해사건' 피의자 고유정은 잔혹한 살해 방법 및 시신 훼손, 유기 등으로 사이코패스가 의심됐지만 사이코패스 판정에선 빗겨갔다. 반면 과외 중개 앱에서 만난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또래 엽기 살인 사건' 피의자 정유정은 사이코패스 점수 28점을 받았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범죄 수법이 잔혹하다고 해서 무조건 사이코패스로 평가되는 건 아니다"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거나, 범행이 쾌락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때 사이코패스 범주에 들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이밖에 여성 사이코패스들은 사건을 사고 등으로 위장하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거나, 남성 사이코패스가 주로 지닌 '냉혈한' 성격 보다는 '정서 불안' 등 정신적인 질환 등을 복합적으로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본인을 피해자인 것처럼 호소하는 양상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 사이코패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약물, 심리 조작 시도 등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며 "SNS을 기반으로 한 만남도 경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은 겉으로는 평범한 만남처럼 보였던 관계 속에서도 치밀한 범행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약물과 심리적 접근을 이용해 피해자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은 여성 사이코패스 범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모텔을 나서며 남긴 장문의 문자처럼, 김 씨의 범행은 마지막 순간까지 일상적인 상황 속에 감춰져 있었다.
권준혁 법조전문기자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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