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띠예? ASMR 유튜버 할아버지, 순식간에 구독자 14만 늘어
“할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릴게요.”
온갖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도 한 조각 희망이 숨어 있었듯, 악성 댓글과 비방으로 술렁이는 온라인 세계에서도 사람의 온기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치매 노모를 모시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 미국 할아버지가 도움을 요청하자 전 세계 네티즌들이 화답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거주하는 토마스 클레리(Thomas Clery)씨는 십 여 년 전부터 취미인 정원 가꾸기와 전기회로 조립을 주제로 한 채널 두 개(New England Gardening, eTech Tom)와 어머니 간병 일상을 담은 채널 '홈 케어(Home Care)'까지 총 세 개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 9월에는 요즘 유행하는 ASMR(자율감각쾌락반응·주로 청각에 반응해 나타나는 개운함과 심리적 안정감) 유도 영상을 올리는 채널인 ‘모피어스 ASMR(Morpheus ASMR)’도 개설했습니다. 잔잔한 소리를 주제로 한 채널이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입니다.
유튜브 채널 운영은 할아버지의 일상에 활력을 주었습니다. 뇌졸중과 치매로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느라 집을 비우기 힘든 할아버지에게 있어 영상은 소중한 수입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유튜브가 광고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계정의 기준을 상향하면서 클레리 씨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최소 구독자 1000명과 1년 내 영상 총 재생시간 4000시간 이상을 달성한 계정만이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게 기준이 바뀌면서 할아버지의 소규모 채널은 광고비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내용을 알리며 구독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연에 감동받은 네티즌들이 유튜브 밖으로 입소문을 내면서 클레리 씨의 채널, 특히 ASMR채널은 하루아침에 구독자 10만 여 명이 몰리는 ‘대박 채널’로 거듭났습니다. ‘구독자 1000명만 넘겼으면 좋겠다’던 할아버지의 채널 구독자는 1월 16일 현재 14만 여 명에 이릅니다.
모피어스 ASMR채널에는 다른 채널과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바로 클레리 씨가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상 ASMR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머리를 감겨 드리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비누거품 이는 소리, 물기를 닦은 뒤 머리 빗는 소리를 영상과 함께 녹화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온화한 매력과 다정한 목소리,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효심에 반한 네티즌들은 “우리가 ‘모피어스’를 지켜 드리자”며 나섰습니다. 그의 영상 댓글에는 “그는 우리 모두의 할아버지다”, “멋지고 귀여운 신사분”, “인터넷 쓰레기들로부터 천사 할아버지를 지키자”, “이제 구독자 늘었으니 광고 많이 붙여주세요”등 훈훈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소식을 듣고 온 한국 네티즌들도 “영상에서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음식 드시는 모습에서 왠지 우리나라 어린이 유튜버 ‘띠예’의 순수한 모습이 생각난다.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네티즌은 할아버지가 어머니의 머리를 감겨 드리는 영상에 “내가 갓 태어나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을 때는 어머니가 나를 씻겨 주시고, 세월이 흐르면 내가 어머니를 씻겨 드리게 되는구나. 인생이란 슬프고도 아름답다”는 글을 남겨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