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계의 거인' 삼성은 왜 영리병원을 가지고 싶어할까?
제주도의 영리병원이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투자할 수 있는 사람과 치료받을 수 있는 대상은 외국인에 한정되어있지만, 국내 최초의 영리병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1년부터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각 정부는 의료산업 선진화를 위해 영리병원을 추진해왔다. 국제시장에서 의료 서비스를 자유무역 대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그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의료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성과를 낸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의 영리병원은 의료영리화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현재 제주도의 영리병원은 외국인만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약에 반발하고 있고, 2016년에 제주도는 내국인도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홍보책자를 발행했다. 만약 제주도의 영리병원이 내국인을 받을 수 있다면, 제주도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국인을 받는 영리병원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삼성은 제주도의 영리병원이 성과를 거두기 전 이미 영리병원에 투자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영리병원 사업에 나섰었던 것이다. 이미 병원을 가지고 있고, 제조업계의 거인이라 불리는 삼성이 굳이 영리병원 사업에 뛰어들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조금 더 알아보자.
현재의 의료기관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지만 영리병원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현행법상 비영리법인이나 민간 의료인이 아니면 병원을 운영할 수 없으며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고 외부로 투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리병원은 이러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 영리병원은 주식회사처럼 외부 투자자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발생한 수익을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외부에 투자할 수 있다. 이처럼 외부의 투자를 의료기관이 받을 수 있기에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말도 사용하는데, 주주에 의해 병원은 의료서비스보다 주주의 수익 극대화를 중요시하게 된다.
지금의 병원은 민간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이 운영한다. 이 병원을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수익 추구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의료 영리화이다. 이 의료 영리화는 의료 민영화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료 민영화는 영리병원을 표현하기 적절하지 않은데, 이는 우리나라의 민간병원이 94%에 달할만큼 이미 의료 민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 영리병원에 대한 표현은 의료 영리화가 더 적합하다.
삼성이 영리병원을 노린다는 말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이건희 회장은 "10년 뒤 지금 삼성이 자랑하는 제품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라며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산업을 제시했다.
삼성의 바이오제약 사업 계획은 총 3단계다. 1단계는 의약품 생산 공장 건설을 통해 해외 제약사의 생산 물량을 수주하는 것이었다. 그다음 단계는 복제약 생산이었으며 마지막 3단계는 2010년대 후반에 신약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은 인천 송도에 2조 1000억을 투자하였다.
앞서 살펴본 3단계에는 영리병원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삼성이 영리병원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일까. 우리는 2009년에 삼성경제연구소에 보건복지부가 의뢰한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을 잠시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HT(Health Technology) 개념은 의료 서비스와 보건의료 시스템을 넘어 공적 영역인 건강보험, 환자 질병정보, 보건의료서비스까지 상업화 영역에 넣은 것이었다. 의료 영리화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위에서 이야기한 HT(Health Technology)는 고령화 사회에서 폭등하는 의료수요를 민간의 참여로 감당하고 원격진료를 도입해 질병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 삼성은 의료기관에 투자할 수도 없고 의료 기관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러나, 만약 의료 영리화가 진행된다면 삼성은 또 하나의 시장을 독점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HT(Health Technology) 영역을 독점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고, IT, 보험사, 병원, 제약시장뿐 아니라 의료기기 산업까지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영리병원 찬성 측의 입장은 의료 서비스도 시장경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간의 고객 유치 경쟁으로 환자는 넓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높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의료 서비스의 확충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 정리해보자면, 의료산업의 수익 극대화는 의료 서비스의 질 상승으로 이어지고, 전체적인 상향 평준화로 이어져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의료영리화의 진행이 미진한 지금, 한국에서는 아직 영리병원을 경제자유구역에서만 찾을 수 있다. 외국인의 투자도 소극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진입은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관련 사업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반대 측은 사기업들의 횡포를 걱정한다. 주주로 참여하여 의료 서비스를 저해하거나 환자가 아닌 자사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 주장한다. 일종의 갑질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의료 서비스의 공적인 면을 지탱하는 국민건강보험이 무너져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들은 미국과 같은 의료 파산을 우려하는 것이다. 의료영리화가 추진되는 가운데,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 의료 민영화를 막기 어렵다며 대기업의 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삼성의 인천 송도국제병원투자는 본격적인 의료영리화의 시작이었다. 아직까지는 제주도의 영리병원에 국내 기업이 투자할 수 없고, 외국인만 투자할 수 있다. 그리고 환자는 외국인만 받을 수 있다. 송도 국제병원은 국내 기업이 투자에 참여할 수 있고 국내 의료인이 국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제주도 영리병원도 이와 같은 과정을 추진 중에 있다.
오늘 우리는 의료서비스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자는 의료영리화와 대기업 투자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을 살펴보았다. 어떤 것이 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