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은 어떻게 러시아의 '국민라면'이 됐을까?
추억의 컵라면 '도시락'을 아시나요?
각종 신상 컵라면이 쏟아지는 지금, 국내에서 '도시락'은 고전 중의 고전이 됐지만 유독 이 나라에선 다릅니다.
바로 러시아.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쟁쟁한 라면들을 제치고 도시락은 여전히 러시아의 '국민라면'입니다.
네모난 도시락처럼 생긴 도시락은 국내에선 1986년 출시된 제품입니다.
이 라면은 1990년대 초 부산항을 거점으로 히트상품으로 거듭났습니다. 도시락을 사들이는 사람들은 바로 러시아를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이었습니다.
부산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상선의 선원과 보따리상을 통해 소개된 도시락이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됐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8년 러시아는 극심한 재정난을 겪으면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많은 해외 기업들이 철수를 결정했지만, 팔도는 러시아에 남았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사람들에게 팔도는 '의리를 지킨 기업'이라는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시락 판매량은 연간 2억개 돌파를 바라보게 됐고요.
코트라에 따르면 도시락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무려 60%가 넘습니다. '부동의 1위'입니다.
1년 판매량은 3억 개를 넘기고요. 러시아 국민이 약 1억 50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사람당 1년에 2개씩은 먹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살펴보면 러시아 시장 누적 판매량은 47억개에 달하고, 매출액은 무려 2300억원이나 됩니다.
'도시락'은 라면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선 라면을 '도시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도시락이 러시아에서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철저한 현지화가 바로 그 이유입니다.
팔도는 러시아에서 아주 다양한 맛의 도시락을 출시했죠. 치킨, 버섯, 새우맛 등이 있습니다.
팔도에 따르면 국내에서 파견된 연구원은 직접 러시아 시장과 가정 등 곳곳을 방문하며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맛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 사람들은 덜 맵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한다는 점을 알게 됐죠. 이에 하얀 닭 육수 베이스의 치킨 맛을 선보였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마요네즈 사랑도 도시락에 반영됐습니다.
추운 날씨로 인해 열량이 높은 음식을 선호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마요네즈는 한국의 쌈장이나 고추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 도시락에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 것을 즐겼는데요.
팔도에선 2012년에 마요네즈 소스를 별첨한 도시락 플러스를 출시해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젓가락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사람들이 제품을 보다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용기 안에 포크도 함께 담았고요.
그랬더니 러시아에선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을 '여행의 묘미'로 꼽게 됐습니다.
러시아에서의 도시락 판매량은 국내 판매량의 7배에 달하는데요. 2014년엔 러시아에서 ‘올해의 제품상’에 라면업계 최초로 선정됐습니다. '올해의 제품상'은 소비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됩니다.
이제는 국내에서의 매출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2015년만 해도 600만개 그쳤던 판매량이 지난해에는 1700만개로 껑충 늘었습니다.
팔도 도시락은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30여개국에 판매 중인데요. 러시아의 성공을 기반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동유럽 국가로도 수출을 확대하며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리얼푸드=고승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