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듀48'은 망한 걸까?
‘프로듀스101’ 시즌1과 2의 대성공을 기반으로 화려하게 출발한 엠넷 ‘프로듀스48’.
곳곳에 붙은 연습생 광고판을 보면 ‘역시 인기 있네’ 싶으면서도 대중 반응은 이전 시즌에 비해 묘하게 미적지근하다. 어느 시점부터는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객관적인 수치로 볼 때 ‘망했다’고는 표현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시즌1과 2가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것을 감안하면 ‘프듀48’은 집안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친 후계자처럼 보인다.
직관적으로 시청률만 볼 때도 시즌 1~2의 시청률은 4~5회에 이미 3%대에 진입했으나 ‘프듀48’은 9회까지도 아직 2%에서 머물고 있는 상태다. 체감하는 화제성도 이전 시즌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듯 기대했던 만큼의 성적이 나오질 않으니 ‘저번 시즌에 비하면 망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연한 대박인 줄로만 알았던 이번 시즌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이유는 뭘까? 몇 가지 요인을 짚어봤다.
첫 번째는 ‘일본과의 합작’이 주는 정서적 거부감이다. 프로그램 시작 전부터 이 점에 대한 우려가 쏟아진데다, 설상가상으로 방송 전부터 일부 일본 연습생들의 우익 논란이 일면서 시청 거부 운동이 벌어질 정도였다.
논란은 제작진의 해명 후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프로그램의 재미만으로 국민 정서를 극복하기엔 시기상조였다는 반응이다.
몇몇 가요 관계자들 역시 “일본이랑 합작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프로그램의 화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SNS와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콘텐츠 재생산도 이 같은 거부감 때문에 활발히 이뤄지지 못했다. 자연스레 지난 시즌보다는 화력이 부족했다.
제작진은 양국의 정서적 반감을 떠나 연습생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으나, 정작 국민 프로듀서들 사이에서는 한국 연습생들만 골라 찍는 ‘애국 픽’과 일본 연습생들을 지지하는 ‘매국 픽(?)’이 나뉜 상황이다.
특히 이번 시즌은 한‧일에서 동시 방송을 고려하다보니 완전히 한국화 된 것도, 완전히 일본화 된 것도 아닌 이질적 톤을 가진 프로그램이 됐다.
일본 연습생들이 한국의 트레이닝 시스템에 완전히 녹아드는 과정 보다는 그들이 일본 현지에서 인정받는 특유의 매력을 조명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이런 모습에 호감을 가진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모든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탓에 일본 현지화에 성공해 인기를 얻은 한류 아이돌이나, 한국 가요계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국내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트와이스 일본 멤버들이 누리는 장점을 모두 놓친 셈이 됐다.
두 번째는 일본 연습생들이 이런 부정적인 정서를 이겨내고 한국 시청자들로부터 한국 연습생들과 동등한 평가를 받기엔 일본과 우리나라의 가요 시장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는 점이다.
당장 데뷔해도 손색없는 실력을 가진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익숙한 한국 시청자들은 ‘프듀48’ 1회를 보고 눈에 띄게 떨어지는 실력 대신 본연의 매력으로 어필하는 일본 연습생들의 모습에 문화충격을 받았다.
트레이너들도 놀랄 만큼 컸던 문화적 간극만큼이나 양국 연습생들의 실력 차이가 도드라졌고,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 프로듀서들은 실력을 대신한 매력에 빠지길 거부했다.
다만 일본 연습생들은 현역으로 활동하던 가수들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일부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몇몇 일본 참가자들의 순위는 이들의 열렬한 응원을 기반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러나 수준 차이가 나는 멤버들이 섞이다보니 경연에서는 학예회 수준의 무대가 속출했다. 결국 지난 시즌의 ‘뱅뱅’이나 ‘네버’처럼 무대만으로 유입 시청자를 끌어 모으는데 실패하면서 국민프로듀서 층 자체가 ‘고인 물’이 됐다.
이후 프로그램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점점 윤곽이 잡혀가는 데뷔조를 완전히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리고 일부 팬 층은 자신이 생각하는 데뷔조 기준에 맞지 않는 연습생들이 대거 포진한 상위권 순위를 보고 포기를 택했다. ‘내 픽’을 ‘저 데뷔조’에 포함시키기 위해 투표를 더 열심히 하느니 프로그램에서 이탈하고 투표에 손을 놓아버린 거다.
이들이 바로 ‘내가 지지하는 연습생이 인지도만 얻고 파이널에서 떨어지는 게 낫다’는 ‘손절’파 국민 프로듀서다.
세 번째는 ‘프듀’ 시리즈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연습생 별로 차이나는 방송 분량 문제다.
‘모든 연습생이 같은 분량으로 출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더 열심히 하고 더 간절하고 더 눈에 띄는 연습생이 보다 많은 분량을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 제작진의 해명이지만 결국 뚜껑을 열어보면 분량이 주는 베네핏은 경연으로 얻는 것 보다 항상 더 컸다.
‘프듀’시리즈를 쭉 봐왔던 시청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 편집의 위력이다.
모두에게 생소한 연습생들 사이에서 초반에 많이 노출되는 멤버일수록 12픽에 덩달아 꼽히기 쉬워지고, 이렇게 시청자들과 안면을 트게 된 참가자에게 더 눈길이 가고 많은 관심이 쏠리게 된다.
모든 연습생에게 데뷔하고 싶은 간절한 이유와 나름의 스토리가 있겠지만 방송에는 일부 연습생의 이야기만 집중 조명된다. 대부분의 연습생에겐 국민 프로듀서들의 선택지에 들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길 기회가 없다.
온라인을 통해 공평하게 공개된다지만 방송 분량의 갈증을 채우기엔 턱도 없다. 홈페이지까지 와서 모든 연습생의 추가 영상을 하나하나 확인할 국민 프로듀서는 방송으로 보는 시청자의 10%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연의 경우 똑같이 호평 받은 두 팀 중 먼저 방송된 팀의 멤버들은 일주일 간 표를 받아 간신히 탈락을 면하기도 하는 반면, 순위결정전에 임박해서야 무대가 방송된 팀의 멤버들은 표를 모을 시간이 부족해 아쉽게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온전히 실력차이로 탈락했다고 볼 수 있을까?
편집자가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선별한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 게임은 모두에게 공정할 수 없었다. 시즌3에서 또 다시 이 한계를 절감한 다수의 시청자들은 ‘결국은 그들이 짜놓은 판’이라고 지적하며 국민 프로듀서 직을 내려놓고 말았다.
일부 소속사 관계자들 역시 소수의 연습생들에게 쏠리는 분량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여러모로 ‘공정하게 졌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거다.
많은 소속사에서 ‘프듀48’ 출연을 결심했을 당시 목표했던 화제성은 한참 못 미쳤다고 느꼈다.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될 데뷔팀에 대한 기대감마저 꺾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자사 연습생의 ‘프듀48’ 데뷔조 합류를 원하지 않는 기획사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참가자들에게 아주 수확이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주목받은 일부 연습생들의 경우 작지만 지지 세력이 되어 줄 팬덤이 붙기 시작했고, 시작부터 예상했던 대로 일본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은 품게 됐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속에서 ‘프듀48’은 2회의 녹화 분량과 파이널 생방송을 앞두고 있다.
과연 이번 시즌에서 탄생할 걸그룹은 한‧일 양국 가요계에서 어떤 존재감을 갖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