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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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건축으로 향하는 눈: 잉크와 피, 그리고 콘크리트
시간이 흘렀다. 아이패드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후, 나는 오로지 내 기억에 의존해 히틀러를 가르쳤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파… 곰브리치 책에서 봤던 수많은 화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화풍을 떠올리며 그에게 설명했다.
히틀러는 이제 더 이상 붓질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그림에는 이전과는 다른 에너지가 담기기 시작했다. 특히 거친 선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는 표현주의적 경향은 그의 내면에 잠재된 어떤 격정을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미묘한 변화도 감지되었다. 인물화를 그릴 때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인체 비율과 경직된 표정이 드러났고, 풍경화에서도 자연의 생동감보다는 정적인 건물의 형태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스케치북에는 빈의 허름한 건물들이나 오래된 교회의 첨탑이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의 붓질은 여전히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은 생명력보다는 구조적인 견고함을 향하는 듯했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낡은 광장을 그리게 했다. 그는 건물의 벽돌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묘사하고, 창문의 배열과 문의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그는 주변의 사람이나 나무, 하늘의 구름 같은 요소들은 거의 무시했다. 그림은 정교했지만, 생기가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도시가 아니라, 건축 도면 같았다.
"선생님, 이 건물의 기둥은 어떤 양식입니까? 상층부의 장식은 왜 저렇게 되어 있습니까?"
그의 질문은 이제 색채나 감정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형태, 구조, 양식. 그의 관심은 명백히 건축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며 충격과 함께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이 아이는 그림보다 건축에 더 큰 재능을 가진 게 아닐까? 미대보다 건축대학이 그에게 더 맞는 길은 아닐까?
뮌헨으로: 바우하우스의 그림자
가슴속에서 격렬한 갈등이 일었다. 내 임무는 그를 미대에 합격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만족할 수 있는 길이 건축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역사에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나는 밤마다 잠 못 이루며 고민했다. 결국, 나는 위험한 도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건축을 추천해 보기로.
“아돌프, 자네는 건물을 그릴 때 눈빛이 달라져. 그림을 그릴 때보다 더 몰입하고, 더 많은 것을 탐구하는 것 같더군.”
히틀러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그의 얼굴에 드물게 호기심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건축… 건축은 저에게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웅장하고 견고한 건물들을 볼 때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미술 대학이 아니라 건축 대학에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네.”
내 말에 히틀러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실망감? 혼란? 아니면 희망?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미술도 훌륭하지만, 건축은 또 다른 창조의 세계일세. 자네의 정교함과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분명 큰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걸세. 특히 요즘 독일에서는 새로운 건축 양식이 태동하고 있다더군. 바우하우스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네.”
내 입에서 나온 ‘바우하우스’라는 단어는 내게도 낯설었다. 내가 알기로 바우하우스는 1919년에 설립되는 예술 학교였다. 지금은 1900년대 초반, 아직 설립되지도 않았을 시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서 온 정보의 파편들을 조합해 허투루 던졌다. 어쩌면 이 시점에도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품은 인물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매달렸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막연하게나마 그곳으로 향하게 해야 했다.
운명적 만남: 미스 반 데어 로에
나는 히틀러에게 뮌헨으로 가서 건축을 배울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빈에서의 실패는 그에게 더 큰 좌절감을 안겨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내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미대에 거듭 떨어진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뮌헨으로 향했다. 빈의 허름한 하숙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활기찬 도시였다. 나는 뮌헨에서 유명한 건축가나 건축 학교에 대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적인 소식을 접했다.
“요즘 뮌헨에는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라는 젊은 건축가가 새로운 건축 이념을 설파하고 있다더군.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라는 철학으로, 기능적이고 간결한 건축을 추구한다고 하네.”
그 이름은 나에게도 익숙했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그가 바우하우스 교장을 맡게 되는 건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지금 뮌헨에 그가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희망을 주었다. 그라면 히틀러의 재능을 알아보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수소문 끝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작은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깔끔하고 정돈된 공간이 나타났다. 한 남자가 설계도면 앞에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날카로웠고, 눈빛은 깊었다.
나는 그에게 히틀러의 그림을 보여주며 그의 건축적 재능을 설명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히틀러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의 그림 속에서 건물이 얼마나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그리고 형태에 대한 히틀러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설명했다.
“이 아이는… 건물에 대한 비범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틀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형태를 갈망하는 듯합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침묵했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어떤 반응을 읽어낼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히틀러의 그림을 넘어, 마치 그 너머의 어떤 미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데려오세요.”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짧고 단호한 한 마디였다. 나는 안도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제 또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일까? 히틀러는 미술 대신 건축을 통해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이것이 더 큰 파국을 불러오는 시작일까?
제미나이한테 작업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