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이란 이런 것, 한국 최고의 '딕션'을 가진 배우의 진가('오수재')

정덕현 칼럼니스트 입력 2022. 7. 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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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수재인가', 독한데 말랑말랑? 서현진이라 납득되는 두 토끼 잡기

[엔터미디어=정덕현] 제목을 <왜 오수재인가>가 아니라 '왜 서현진인가'로 바꿔야 될 것 같다.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에서 서현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져간다. 애초 시작부터 서현진의 독기어린 연기에 시청자들이 굉장한 몰입감과 속도감에 빠져들었다면,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이 독하기만 한 줄 알았던 인물이 공찬(황인엽)의 직진에 말랑말랑해지는 면모까지 보인다. 그런데 독하면서도 말랑말랑해지는 이 양면은 <왜 오수재인가>라는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 구성과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이 양면이 서현진이라는 배우를 통해 납득되지 않는다면 드라마는 지리멸렬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왜 오수재인가>가 시작에 던졌던 공찬(황인엽)의 비밀은 이제 후반부로 이어지며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본격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의붓 여동생을 강간 살인했다는 누명을 썼고, 오수재가 신출내기 시절 변호했지만 '힘이 없어' 패소하고 공찬이 감옥까지 가게 됐던 사건. 그 사건으로 공찬은 본래 자신의 이름이었던 김동구를 버리고 공찬의 삶을 살았고 로스쿨 학생이 되어서도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었다.

문제는 공찬이 오수재를 다시 만났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오수재 역시 공찬을 사랑하게 됐고, TK로펌에서 더 높은 곳으로만 질주하려는 그 독한 야망 속에서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평범한 삶을 원하는 자아를 공찬을 통해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로펌 변호사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최태국(허준호) 로펌 회장과 한성범 한수그룹 회장 그리고 유력 정치인 이인수(조영진) 의원이 그 커넥션으로 거머쥐려는 돈과 권력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리걸클리닉'을 만들어 약자들을 돕고 싶은 변호인으로서의 또 다른 면도 있다.

건설 현장 붕괴 사고가 벌어지고 그래서 오수재는 그 건설에 얽힌 의뢰인들인 한성범과 이인수를 도와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는 이제 자신의 진짜 정체가 김동구라는 사실을 꺼내야 하는 공찬과도 마주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 붕괴 현장에서 사라졌던 공찬의 의붓 여동생 백골이 발견됐다는 건 이런 파장을 예고하는 일이다. 또 이 붕괴현장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된 청년 역시 오수재가 감옥에서 만난 인물의 아들로서 남다른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로펌 변호사라는 입장에서는 의뢰인들인 한성범의 요구대로 붕괴 사고의 진실을 덮어버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사고에서 튀어나온 이러한 사안들은 오수재를 갈등하게 만든다. 오수재는 과연 어떤 걸 선택할까. 로펌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공찬을 끌어안고 약자들을 돕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애초 성공을 위해 독하게 밀고 나가는 오수재라는 문제적 인물이 가진 매력에서 갑자기 나타난 공찬과의 멜로가 이어지고 그래서 오수재의 무한질주에 제동을 걸며 '착해지라' 요구하는 듯한 드라마의 기조는 다소 아쉬운 지점인 게 사실이다. 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을 결국은 '사랑'의 관점으로 고정화해 주저앉히는 느낌이 들어서다.

하지만 <왜 오수재인가>는 오수재를 사랑 앞에서 착해지는 그런 인물로 그리는 것 같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일과 사랑 모두를 제 손아귀에 쟁취하고픈 더 큰 욕망을 가진 인물로 그리고 있다. 물론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건설 현장 붕괴 사건과 공찬이라는 인물의 정체와 그가 하려는 복수가 자신이 무한질주 해 나가려는 야망과 마찰음을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수재는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둘 다를 쟁취할 것인가를 꿈꿀 뿐.

그런데 여기서 오수재라는 인물의 난점이 생긴다. 일의 영역에서는 독하기 이를 데 없는 날선 모습을 보이던 인물이 공찬이라는 인물 앞에서는 말랑말랑해진다. 독하게 야망을 드러내는 인물에 몰입하는 시청자로서는 말랑말랑해지는 오수재가 탐탁찮을 수 있고, 그래도 달달한 멜로를 원하는 시청자로서는 독하디 독한 인물의 면면이 어딘가 불편해질 수 있다. 이 두 요소는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원하는 일과 사랑(공적이며 사적인)에서의 성취를 담고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종종 서로를 약화시키는 이질적 장르의 부조화가 되곤 한다.

그래서 독하다가도 말랑말랑해지는 오수재를 계속 들여다보게 만들고 납득시키는 서현진의 연기가 놀랍게 느껴진다. 아마도 가장 좋은 '딕션'을 가진 배우라 여겨지는 서현진이, 공적인 영역에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을 마치 날카로운 칼로 잘라내는 듯한 발성으로 전하면서도, 공찬 앞에서는 사랑에 빠진 멜로 연기로 그 말랑하고 따뜻한 내면을 동시에 연기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서현진이 있어 그 어렵다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어쩐지 이 드라마에서는 가능해질 것 같은 기대를 갖게 된다. 왜 서현진인가를 납득시키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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