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878] <검치호> (Tiger's Trigger, 2024)
글 : 양미르 에디터

부산의 한 병원에는 장발로 길러 하나로 묶은 백발, 매일 단정한 옷차림에 광나는 구두까지 갖춰 신고 항상 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노인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그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물심양면으로 돌보고 있지만, 같은 병실의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일절 대답하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을 지녔다.
그런 그가 처음 입을 연 것은 자신과 아내의 곁에 다가온 다정한 '소녀'(박지희) 덕분이었다.
소녀도 병실에서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를 홀로 돌보고 있었는데, 학교까지 자퇴하고 엄마를 돌보는 데 집중하지만 하나뿐인 친척도 엄마의 유산을 빼돌리려는 생각밖에 없다.
각박하고 고된 삶에 지친 나머지 나쁜 선택까지 하려는 소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같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소녀에게 흘러 들어간 권총을 빼앗기 위해 '콧수염'(박훈영)은 '스포츠머리'(신철용), '뚱보'(탁기영) 같은 비리 형사들과 합세해 소녀를 쫓지만, 노인이 소녀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가로막는다.
알고 보니 노인은 본연의 실력을 숨기고 과묵하게 살아가는 칼잡이 '검치호'(왕호)였다.
'콧수염'은 '검치호'의 처리를 위해 '칠점사 애꾸'(원진)를 부른다. '칠점사 애꾸'는 오래전 '검치호'에게 한쪽 눈을 잃었고, 그 자신도 '검치호'의 딸 목숨을 앗아갔다.
그렇게 '검치호'와는 질긴 악연이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그가 자취를 감춰 복수는커녕 그의 머리카락도 보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드디어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얻었고, 칼을 내려놓은 원수를 위해 '칠점사 애꾸'는 칼 두 쌍을 챙기고 '검치호'를 찾아간다.

2022년 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아 판타스틱 장편' 부문 초청작인 <검치호>는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 늙은 액션배우의 여전하고 번듯한 등장, 그리고 맹수 '검치호'가 1만 년 전에 지구에서 멸종된 것처럼 그들의 퇴장을 담담하고 쓸쓸하게 담아내고자 한 이강욱 감독의 의도가 담긴 작품이다.
이 감독 역시 졸업 이후 개인 사정으로 영화 작업을 오래도록 못하다가 다시 영화를 하고 싶단 열망을 품고 <검치호>를 만들었다고.
이강욱 감독은 "해외에서는 사라진 노장 액션 스타들이 종종 오랜만에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라면서, "홀연히 잊혀간 그들이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다고 웅변하듯 복귀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영화계에서도 그렇게 잊혀져 간 액션 스타를 아이콘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라고 <검치호>를 만들게 된 계기를 전했다.
먼저, '검치호'를 맡은 왕호는 해병대 태권도 대표선수 출신으로, 홍콩으로 건너가 40여 편의 액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전설의 무술가다.
<사망유희>(1978년), <생사결>(1982년) 등에서 성룡, 홍금보와 함께 홍콩 액션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발차기 스페셜리스트로도 불렸다.
강력한 고공 발차기가 전매특허였던 그는 갓 연출을 시작한 홍금보가 특히나 총애하던 배우이기도 했다.
홍콩에서 왕성한 활동 중 휴가를 보내러 잠시 한국에 들를 때마다 지방 영화업자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고, 왕호가 주인공이라고 광고를 하면 지방에서는 문전성시를 이루었을 정도.
이후, 고국인 한국에서 제대로 된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오래된 꿈을 위해 왕호는 과감히 홍콩 생활을 접고 귀국해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무술 드라마, <비객>의 주인공으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왕호는 직접 제작, 감독, 주연을 맡아 액션 영화를 만들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충무로에서는 더 이상 찾지 않는 배우가 되며 서서히 잊혀 갔다.
'검치호'의 상대인 '칠점사 애꾸' 역의 원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진은 홍콩 영화 <가자왕>(1992년)에서 전갈 권법을 보여줬던 배우였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한국에서는 주로 무술 감독으로 활동했다.
신은경 주연의 <조폭마누라> 시리즈에서 무술 감독을, <용의자>(2013년)에서는 주연 배우 공유와 격투하는 간첩 택시 기사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 왕호와 원진이라는 왕년의 액션 배우가 좁은 골목길에서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이는 영화적 클라이맥스는 화려했던 시절의 홍콩 무협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클라이맥스가 오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지지부진하다는 것은 'B급 무비'를 표방한 <검치호>의 안타까운 지점이기도 했다.
2024/03/26 CGV 용산아이파크몰
- 감독
- 이강욱
- 출연
- 왕호, 박지희, 원진
- 평점
- 정보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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