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이태원 참사 원인’ 지목된 이유
“159명이 죽었습니다. 이 참담한 결과를 가지고 2주기를 어떻게 견뎌내야 합니까.” 박희영 용산구청장 1심 무죄선고 뒤,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고 이주영씨 아버지)이 절규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은 빠져나가려는 박 구청장과 막으려는 유가족, 경호 인력이 뒤엉키면서 일순 아수라장이 됐다. 박희영 구청장이 떠난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서로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도대체 용산구청이 하는 일이 뭐냐” “내 새끼 왜 죽은 거야”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
9월30일 10·29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참사 2주기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박희영 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았다. 관할 지역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구청 주요 관계자들이 사전 대비, 참사 임박, 참사 발생 이후 3단계에 걸쳐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해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용산구청에 구체적인 주의의무를 부여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설령 (용산구청 관계자들의) 조치에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태원 참사로 인한) 결과와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같은 날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에 대한 1심 재판 결과는 달랐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서장(금고 3년), 송병주 전 112치안종합상황실장(금고 2년), 박인혁 전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3팀장(금고 1년·집행유예 2년)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경찰법(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구체적인 주의의무가 규정됐다는 점에서 용산구청 관계자들과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
1심 선고 직후 박희영 구청장의 지지자들은 법정 문 앞에서 “이제 끝났다. 됐다, 됐어”라며 손을 맞잡았다. 유가족들은 “부당한 판결”이라며 항소를 요구하고, “법정과 법정 밖에서 이들의 죄를 끝까지 밝혀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와 달리 더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지난해 5월15일 열린 용산구청 관계자들의 첫 공판에서 이태원 참사 당일 당직을 섰던 용산구청 주무관 조 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때 재판장이 조씨에게 던진 질문이다. 1심 재판은 마무리됐지만,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지난 1년 6개월간 진행된 용산구청·용산경찰서 등 이태원 참사 주요 책임자들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을 짚어보았다.
■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없었다면
‘대통령실 이전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됐다.’ 야당의 주장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 나온 증언이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의 1심 공판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 참사의 원인이 됐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해 1월4일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1차 청문회에서 이태원 참사가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는 무관하다고 증언한 것과 배치된다. 윤 전 청장은 당시 “이번 참사에 대통령실 이전이 직접적으로 이유가 되는 것처럼 연관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참사 사흘 전인 2022년 10월26일, 용산경찰서 정보관 김 아무개씨는 2017년 작성된 보고서를 참고해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작성해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에게 보고했다. 보고서에는 2022년 핼러윈데이에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해밀톤호텔 골목에 많은 인파가 몰려 각종 위험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보관 김씨는 그러면서 자신이 담당하는 이태원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이기 때문에 현장에 나가봐야 할 것 같다고 김 전 과장에게 건의했다. 정보관이 현장에 있으면, 긴급하게 무전으로 위험성을 전파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과장은 정보관 김씨에게 ‘이거(보고서) 누가 쓰라고 했나, 주말이고 하니까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정보관이 축제에 나가서 할 게 뭐 있나, 이건 주최도 없고 그냥 크리스마스와 같은 거다, 누가 크리스마스 (같은) 때 정보관이 나가나’라고 말했다고,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정보관 김씨가 작성한 보고서 내용은 평소와 다르게 경비나 교통 등 다른 부서에도 전파되지 않았다.
정보관 김씨는 그 배경으로 2022년 5월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들었다. 이후 용산경찰서 업무가 과중해지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위험 요인 파악 등 지역 정보 활동보다는 집회 관리에 매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이태원 현장에 투입된 경찰 인력 137명 중 정보관은 한 명도 없었다. 김씨도 당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집회를 챙기느라 현장에 가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용산서 정보과장님의 마인드가 ‘용산 정보는 예전과 다르다. 지역 정보 활동은 필요 없다’고까지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지역 정보 활동을 하러 나가보겠다고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던 것 같다(2023년 5월22일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 등 경찰 정보라인 관계자 1심 1차 공판).”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과 김진호 전 정보과장 등 경찰 정보라인도 재판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대통령실 이전’을 언급했다. “대통령실 이전이 없었다면 용산경찰서는 여유 인력이 있어 다중이 모이는 이태원에 예년과 같이 충분한 경찰 인력을 배치했을 것이고, 이 사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박성민 측 변호인 의견서).” “용산서 정보관들이 매주 집회에 동원되어왔던 점,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으로 인한 업무 과중과 인력 부족 등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왔던 점을 고려해 (이태원 지역 담당 정보관) 김씨를 집회 현장에만 배치했다(김진호 측 변호인 의견서).”
용산경찰서가 2022년 10월 핼러윈 축제 안전 문제와 관련해 작성한 정보 보고서는 총 4건이다. 2022년 10월7일 보고서(“작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20만명 이상 방문 예상”)와 10월26일 보고서(“방역수칙 해제 후 첫 핼러윈 축제인 만큼 많은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 등 용산경찰서 정보관들은 이태원에 대규모 인파가 운집할 것이라는 예측을 반복해서 보고했다. 그러나 보고를 받은 용산경찰서 지휘부와 서울경찰청 모두 인파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TF의 천윤석 변호사는 “경찰 내부적으로 특히 용산경찰서 일선 정보관들은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가 차단되면서, 사전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참사로 이어졌다. (이번 공판 과정에서) 그 원인으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과 대통령 심기 경호를 위한 집회·시위 경력 투입이 지목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 ‘대통령실 민원 해결’ 지시 없었다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용산구청의 참사 대응 자체에도 영향을 끼쳤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29일 오후 8시59분 직원들에게 ‘대통령실 관련 민원 해결’을 지시했다. 박 구청장은 비서실 직원들이 참여하는 SNS 대화방에 ‘(삼각지역 인근) 집회 현장으로 가서 전단지를 수거하라’는 취지의 지시 사항을 적었다(박 구청장 측은 구체적인 요청은 용산경찰서가 한 것이고, 자신은 대략적인 내용만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시를 받은 김 아무개 비서실장은 같은 날 오후 9시경, 당직실 당직사령 조 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기념관 북문 담벼락에 붙어 있는 시위 전단지를 수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그때는 당직실 근무자들이 20분 전인 오후 8시40분 ‘이태원 차도와 인도에 차량, 사람이 많아 복잡하다’는 민원 전화를 받고 현장 출동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조씨는 ‘새벽에 상황을 봐서 하겠다’라고 거절했지만, 비서실장은 이후에도 재차 제거를 지시했다. 결국 용산구청 당직실 직원 5명 중 재난관리 담당 직원 등 2명이 이태원 현장 대신 전단지를 수거하러 가면서 인파 밀집 신고 대응이 어려워졌다. 앞선 재판장의 질문(“다시 돌아간다면, 그때와 달리 더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에 대한 조씨의 대답은, “저 혼자라도 골목에 가 들어가지 말라고 말려야 되지 않았을까”였다.
최종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TF)는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연쇄작용이라고 본다. 핼러윈 축제로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모였다는 게 참사 전날에도, 당일에도 명확했는데 인파 관리가 후순위로 밀렸다”라고 말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당직실 직원이 집회 현장에서 전단지를 수거한 것이 당직실 업무에 구체적으로 어떤 차질이 발생됐는지 그리고 이 사건 사고에 대한 대응이 실제로 지연되었는지 등에 대한 검찰의 충분한 입증이 부족해 전단지 수거와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박희영 구청장을 포함한 용산구청 주요 관계자들은 공판 내내 ‘핼러윈데이 주말에 이태원 일대에 안전사고가 발생할 정도의 인파가 몰릴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핼러윈으로 난리라 신경 쓰인다(오후 9시6분)” “인파가 많이 모이는데 걱정이 된다. 계속 신경 쓰고 있겠다(오후 9시30분)”라는 메시지를 남긴 건, “방역이나 소음, 주취 소동, 쓰레기, 시설물 사고 등 통례적인 행정 문제에 대해 신경 쓰인다고 말한 것일 뿐, 이례적으로 대규모 압사 사고가 일어날 것 같다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 아니다(박희영 측 변호인 의견서)”라고 밝혔다.
■ 용산구 재난안전상황실이 작동했다면
용산구청은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에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용산구청 당직실은 재난 예방 및 관리 기능을 해야 하는 재난안전상황실로 작동하지 않았다. 당직실 당직사령 조씨를 포함한 당직실 직원들은 당직실이 재난안전상황실로 운영되는 걸 몰랐고, 사고 조짐도 인지하지 못했다. 조씨는 박 구청장에게 핼러윈과 관련해 근무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도 받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당직실은 오후 10시20분 서울소방재난본부로부터 상황 전파 문자메시지(“이태원 와이키키 앞 골목에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있어 다칠 것 같다, 질서유지 및 통제 요청, 부상자도 있다 함”)를 받고도 접수했을 뿐, 보고나 출동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민애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TF)는 “용산구청은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거라는 게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참사 이후에도 조치가 미흡했다. 재판은 주의의무를 어디서 찾느냐의 문제였다. 1심 재판부가 박희영 구청장에게 부여되는 의무를 소극적으로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이임재 전 서장을 포함한 용산경찰서 관계자 3명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태원 참사가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고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거나 그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책임을 경찰에게만 물을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이와 더불어 국가 사회 직역 각각의 미미한 듯 보였던 안전의식의 결여가 켜켜이 중첩되면서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 막대한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이태원 참사 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9월30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태원 참사 2주기 ‘기억과 애도의 달’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했다. “특별법이 통과됐고 분향소도 정리했으니 이제 다 해결된 게 아니냐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그러나 우리의 대답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이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있도록 앞으로 부딪쳐야 할 싸움이 더 많을 거다. 우리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멀고 험할 거다. 그 길에 여전히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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