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원 “한강 시적인 문체”…한국문학, 이제 변방이 아니다
고은·황석영 등 꾸준히 물망
기대감은 번번이 실망으로
‘번역의 힘’ 등 K문학 두각
마침내 문학사 금자탑 세워
“한국 문학, 한국어는 변방의 문학이었다. 유럽 서구의 중심부에서 한국 문학이 더 이상 변방의 문학이 아니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주변부의 언어였던 한국어 문학이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나아가게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소년이 온다> 등의 작품을 통해서 “한강 작가가 여성적 언어로 역사적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방식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졌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는 매년 10월이면 여러 한국인 문인이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곤 했다. 주로 남성 작가들이었다.
한때 고은 시인이 한국 미디어를 중심으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고은의 시는 일찌감치 해외에 번역이 돼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매년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는 날이면 고은의 자택 앞은 기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다. 다만 고은이 과거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이후 고은의 노벨상 수상 기대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해마다 해외 노벨상 베팅사이트 등에 이름이 오르곤 했지만, 국내 출판계에서는 수상 가능성을 낮게 보곤 했다.
황석영 작가도 한때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 그의 작품 역시 다수가 해외에서 출간됐다. 당국 허락 없이 방북했다가 해외를 떠돈 이력도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기간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르 클레지오, 모옌, 오르한 파묵, 황 작가를 차기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하기도 했다. 실제 황 작가를 제외한 3인은 이후 모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올해 <철도원 삼대>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한 작가와 김혜순 시인 등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예측되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김 시인의 시 다수는 해외에 번역돼 소개됐고,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며 해외 독자에게 이름을 알렸다. 김 시인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전위적인 시풍을 보이는 시인으로 그의 부각은 서구 문학상의 ‘백인 남성’ 위주 관행에 대한 반성과도 맞물려 있다. 이광호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 여성의 예술에 대해서 관심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시인을 비롯한 여성 작가들의 세계 문학시장에의 진입이 있었고, 세계 문학계가 여성 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노벨상 수상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성찰하는 주제의식과 동시에 이를 전달하는 서정적인 아름다운 문체로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언젠가는 일어날 쾌거였다는 분석이 많았다.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정치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양쪽을 완미하게 잘 쓴다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한강 작가가 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며 “다만 한강 작가가 역대 노벨상 수상 작가들보다 젊기 때문에 올해라고 예측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강 작가가 시로 등단했기에 문체가 굉장히 아름답고 시적이다. 노벨상에도 한 줄로 선정 이유를 요약했을 때 ‘시적이다’라는 말을 넣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현자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역사적 비극을 마주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굉장히 아름답고 강렬하며 힘 있게 묘사해내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이 세계적인 정세를 성찰하게끔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해외에서 불고 있는 ‘K문학 열풍’과 이를 뒷받침하는 ‘번역의 힘’도 수상 배경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보도자료를 통해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28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총 76종의 책으로 출간되었다”며 “그동안 꾸준히 한국 문학을 해외에 소개해 온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자 국장은 “최근 들어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좋은 번역가들에 의해 소개되면서 현지에서 한국 문학의 평가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한국 문화 자체도 이전에는 이질적으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그 벽이 훨씬 낮아졌다. 자연스레 한국 문학도 좀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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