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이 관 속 같았다" 무대미술 그만두고 고향 내려간 청년의 근황은?
본격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상상한 사회인으로서의 내 모습과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 사이에는 얼마나 차이가 있나요?
최근 예능프로 '유퀴즈온더블럭'에는 6년 전 BTS 노래에 맞춰 강당에서 춤춘 영상이 조회수 700만을 기록하며 화제가 된 일명 'BTS여고생' 김정현 양의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대학교에 진학한 정현 양은 1학년 1,2 학기 전과목에서 올 A+ 성적을 기록하면서도 취업을 위해 휴학을 하고 교외 활동 경력을 쌓아아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바라는 30대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커리어우먼을 꿈꾼다"라고 말했는데, 업무와 관련된 전화를 받고 급하게 약속을 정한 뒤 차에 올라타 가방을 내던지고 한숨을 쉬며 "아 할 일이 너무 많아"라며 쉴 틈 없이 바쁜 30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아마 정현 양이 꿈꾸는 '30대의 나'는 업무능력이 워낙 뛰어나 모두가 자신을 원하고, 마치 '내가 없으면 회사도, 사회도 돌아가지 않는' 멋진 모습 아닐까요? 다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 상상 속의 내 모습이 어쩐지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미술을 전공한 청년 이종효 씨도 대학시절부터 키워온 꿈이 있었습니다. 충북의 농촌 출신인 종효 씨는 대학 졸업 후 자연스럽게 대전에서 벽화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접고 상경했습니다. 오랜 시간 꿈꿔온 무대미술을 해보고 싶어서였지요.
실제로 뮤지컬 무대미술 일을 시작한 종효 씨는 공연 시간을 맞춰야 하는 무대미술의 특성상 밤샘 작업을 하는 일이 잦았고 새벽에 퇴근해서 작은 고시원 방에서 잠들면서도 행복했습니다. 당시에 대해 종효 씨는 매거진 '산사랑'과의 인터뷰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나면 다음날 내가 설치한 무대에서 배우들이 공연하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었다"면서 "육체적인 고통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코를 풀면 페인트가 묻어 나올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다른 직업에 비해 돈도 많이 벌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힘든 줄 모르고 반복된 일상을 살아가던 중, 종효 씨는 우연히 자신의 마음속 깊이 있던 진짜 감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녘에 퇴근해서 창문도 없는 고시원 방에 누운 종효 씨가 갑자기 '관 속에 있는 느낌'을 받은 것. 결국 그날 종효 씨는 밤새 잠들지 못한 채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인가'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하는 즐거움에만 빠져 지내는 동안 종효 씨는 건강이 나빠졌고 여유를 잃었습니다. 10만 원 더 싼 방을 찾기 위해 창문이 없는 1.5평 남짓 고시원에서 지내는 삶은 퇴근 후에도 늘 '쉰다는 느낌'이 없었고 그렇게 반복되는 서울생활에서 종효 씨는 혼란스러웠던 것입니다.
공간이 주는 폐쇄감과 답답한 느낌은 비단 고시원의 물리적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게 해준 서울이었지만 넓은 서울 어느 곳에도 종효 씨는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했고 갇힌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종효 씨는 고시원이 관 속처럼 느껴진 그 다음날 바로 일을 그만두고 짐을 싸서 고향으로 갔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종효 씨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에 대한 계획이나 기약 없이 그저 '당장 쉬고 싶다'라는 마음만 가지고 충북 옥천에 있는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갔지요.
집에 가자마자 "바람소리만 들어도 엄청 행복했다"는 종효 씨와 달리 두 달 동안 침대 누워있기만 하는 아들을 본 부모님은 걱정이 쌓였습니다. 이에 다 큰 아들이 대학까지 나와서 백수로 지내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던 종효 씨의 부모님은 "딸기 농사나 도우라"라며 아들은 등 떠밀었고 종효 씨는 2년가량 딸기 공부를 하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딸기 농사를 운영할 방안을 찾았습니다.
이후 상황에 대해 종효 씨는 "딸기 농사를 지을수록 몸이 아프더라. 병원에 가보니 딸기 알러지가 있었다"라며 농담을 섞어 농사를 포기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사실 힘들게 농사지은 딸기가 헐값에 팔려나가는 농촌의 현실을 보면서 보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딸기를 활용한 음료를 개발해서 카페에서 팔아보자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나선 것.
먼저 종효 씨는 이발소가 있던 자리에 5~6년간 비어있던 가게를 빌려서 1년 동안 혼자 작업해 외관과 내부를 꾸몄습니다. 무대미술로 날고기던 실력을 발휘했지요. 이렇게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을 주고 임대한 자리에서 종효 씨는 인테리어 비용으로 300만 원, 집기 50만 원, 상수도 끌어오는 비용 50만 원까지, 총 500만 원을 들여 카페 창업을 했습니다.
창업 첫 달 종효 씨는 66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카페 입지 상 주변 마을 몇 개를 거쳐도 카페가 없었던 덕분에 종효 씨의 카페는 독점이나 다름없었는데요. 에스프레소 머신도 없이 100% 핸드드립 커피만 판매한 종효 씨는 하루 80~100잔의 커피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생딸기주스, 허니딸기라떼, 스무디 등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딸기를 재료로 음료를 판매할 수 있었고, 제철에는 생딸기 판매도 하면서 사업의 안정성을 높여갔습니다.
또 종효 씨는 다방인 줄 찾아와서 믹스커피를 찾는 어르신들을 위해 맥심화이트모카에 우유와 얼음을 섞어 만든 '시크릿 메뉴'를 개발했고 동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아끼던 오락기도 설치했습니다. 거기에 마을 초등학교 벽화작업을 하고 어르신 치매예방을 위한 미술교육과 어린이 그림 교사로도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종효 씨는 마을의 1호 카페 사장이자 선물 같은 그림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한편 카페를 통해 종효 씨에게도 선물 같은 인연이 찾아왔는데요. 마을의 유일한 카페인 종효 씨의 가게에 자주 드나들던 여자 손님이 알고 보니 초등학교 4년 후배였고 그 인연으로 연인 사이가 된 두 사람은 얼마 전 결혼해 부부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보다 오히려 시간적인 여유가 더 없을 만큼 바쁘게 살고 있는 종효 씨는 건강과 여유를 되찾았고 인생의 반려자까지 만나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은 모습입니다. 다만 사업가로서 종효 씨에게는 여전히 나름의 고충과 위기가 늘 찾아오곤 하는데요. 지난 9월에는 임대 중인 가게의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건물주가 임대 기간 연장을 거부하고 인수를 제안하는 바람에 '가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할지'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바로 옆 건물에 규모가 큰 카페가 들어오면서 독점으로 운영 중이던 카페 매출에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다행히 건물주와 잘 절충한 끝에 종효 씨는 월세를 20만 원으로 올리고 재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생일선물로 마련해 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핸드드립 외 커피의 판매까지 시작했다고 하네요.
오랜 시간 꿈꾸고 계획하던 무대미술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보다 아무 생각 없이 고향에 내려와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지금의 카페 사업이 훨씬 행복하다는 33살 이종효 사장님.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가끔은 계획이나 목표에서 벗어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보는 것도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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