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흔들리는 KAI, 민영화는 해법인가

2026년 3월 25일, 경남 사천의 하늘은 KF-21 양산 1호기가 뿜어내는 웅장한 굉음으로 가득 찼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KAI 본사 회의실의 공기는 정반대로 냉랭했다. 2025년 말 사업보고서에 찍힌 숫자 때문이다.

KAI의 현금성 자산은 609억원이다. 이는 수년 전 2조원을 웃돌던 현금과 비교하면 대부분 소진된 것이다. 겉으로는 비상을 준비하지만 내부 유동성은 크게 줄었다. 여기에 부채비율은 446%까지 치솟았다. 숫자만 보면 KAI는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KAI는 올해 들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다. 1월에는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3월에는 5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추가로 발행했다. 불과 두 달 사이 1조원의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온 셈이다.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한 조치지만 자체 현금 흐름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한 재무 악화로만 볼 수는 없다. 국가 안보산업이라는 특수한 지위 속에서 정치적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아온 구조적 한계가 누적된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닌 '구조'다.

KAI는 대한민국 유일의 완제기 제작 업체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지배구조는 정치와의 연결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그 결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가 교체되는 이른바 ‘전리품 인사’ 논란이 반복돼 왔다. 초대 사장부터 현재까지 주요 경영진이 정권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은 업계에서 널리 지적돼 온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가 항상 부정적인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고위 관료 출신 경영진의 대관 역량은 예산 확보나 폴란드 수출과 같은 대형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가 역시 분명했다. 정권 교체 시 리더십 불확실성이 기업 전략을 단절시키고 장기 투자를 어렵게 한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KAI는 일부 핵심 사업 경쟁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전자전 항공기, 조기경보기, 위성 사업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던 영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내부의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는 기술력 문제가 아닌 일관된 전략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의 부재를 의문시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재무 리스크와 결합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채비율이 400%를 훌쩍 넘긴 상태에서 정부 예산 집행과 특정 수출 일정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업 구조는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이른바 ‘천수답 경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F-21 수출이나 예산 집행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재의 재무 구조는 빠르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틈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 확대와 맞물려 민영화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한화는 과거 KAI 지분을 보유했다가 매각한 이후 한동안 거리를 두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지분을 확보하며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방산·우주 사업을 축으로 수직계열화를 강화하려는 전략과 맞물린 행보다. 항공기 제작 역량을 확보할 경우 엔진·미사일·위성까지 이어지는 통합 방산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KAI는 한화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퍼즐 조각이다.

여기에 LIG넥스원까지 가세하면서 경쟁 구도는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정밀유도무기와 C4ISR 역량을 보유한 LIG넥스원 역시 항공 플랫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경우 시너지가 크다는 판단 아래 잠재적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기존 방산 강자들이 KAI를 두고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모습은 그만큼 KAI가 전략자산으로서 갖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민영화도 간단한 해법은 아니다. 수조 원에 달하는 인수 비용 부담은 물론이고 국가 예산으로 육성한 전략 자산을 특정 기업에 넘기는 데 따른 특혜 논란과 공공성 훼손 문제는 여전히 높은 장벽으로 남아 있다.

결국 KAI는 세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지금처럼 공공 중심 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민간에 넘겨 시장 논리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지배구조를 개혁해 전문경영인의 독립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것인가. 어느 길이든 쉽지 않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KF-21이 하늘을 날아올랐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그것이 KAI의 위기 극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제부터다. KAI는 누구의 논리로 움직일 것인가. 정치인가, 시장인가.

조종석의 주인이 5년마다 바뀌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세계 시장이라는 거친 환경을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민영화가 해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구조만으로는 해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길진홍 산업부부국장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