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란 직함이 부끄럽고 웃프다[메디칼럼](42)
나는 국립대학병원 의과대학의 교수다. 그런데 이 직함이 부끄럽다. 최근의 의·정 갈등하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의대 교수의 역할은 교육, 연구, 진료로 구분된다. 나는 진료영역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탁월한 진료, 새로운 치료 방법, 더 자세히 말하면 나는 외과의사니까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해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이 지상목표였다. 그래야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고, 의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교육은 가장 뒷전이었다. 뛰어난 과학적 역량을 갖춘 교수님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그 생각은 깊어졌다. 나는 그들처럼 교과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기존의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기평가 위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것 배워
의과대학생 교육에 관한 생각이 바뀐 것은 학생들을 만나 가르칠 기회가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지금처럼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힘들 때라면, 나는 아마 의과대학에 입학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뛰어난 학생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하고, 가르치고, 평가하면서 나도 교육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의대생일 때는 존재하지 않던 의학교육학교실에서는 의과대학생들을 한 명의 훌륭한 의사로 만들기 위해 늘 새로운 커리큘럼과 교수법을 연구했다. 나도 실기평가위원회의 위원으로 실기 문제를 내보고 국가고시의 실기평가에 직접 참여해보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진단이 끝난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외래에 오는 환자들은 자신의 병명을 알고 있고, 치료 방법도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의대생들은 의사면허를 따고 일반의가 돼야 하므로 그야말로 의학의 모든 부분에 대해 얕지만 넓은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학생들에게 맞는 실기평가 문제를 내는 데는 전문적인 대학병원 교수들이 오히려 부적합하다. 배가 아픈 환자가 왔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만들 때 외과의사들의 머릿속에는 복강 내 무슨 암이나, 복막염처럼 수술이 필요한 외과 질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배가 아픈 원인은 심장이나 폐의 문제일 수도, 신경질환일 수도, 중금속 중독일 수도, 심지어는 정신과적 문제일 수도 있다. 가능한 한 모든 질병을 생각한 뒤 하나하나 배제해가야 한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적절하고 다양한 질문을 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신체 진찰을 하고, 환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며 정확한 의학적 지식으로 적절한 진단 방법과 치료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실기 문제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다. 이러한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자 역할을 하는 배우에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 신체 진찰에 대한 반응을 교육해야 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과의 여러 교수와 같이 토의해보면서 내가 배운 것이 오히려 많았다.
의사국가고시에 실습시험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노력과 자본이 들어간다. 이 실습시험은 환자를 문진하고 신체 진찰을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반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술기를 다루는 시험도 있다.
작년에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의 채점위원으로 참여했다.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의과대학생들이 실기시험을 받으러 왔다. 나는 수혈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평가했다. 환자에게 인사하고, 적절하게 소독하고, 혈관을 찾아 (혈관 모델이 있다) 수혈하고, 수혈 부작용을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학교에서 미리 연습을 다 잘해서 그런지 못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실기시험이 의사국가고시에 포함된 것은 정말 잘된 일이라고 느꼈다.
예전에는 의과대학 3~4학년이 되면 응급실에서 인턴을 하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바로 환자들에게 필요한 시술을 했다. 비록 그리 위험하지 않은 시술이지만 만들어진 모델이나 동물에게라도 실습 한번 해보지 않고 환자들에게 바로 시술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의료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게 실제 일어나기도 했다
의대생 휴학 막는 등 법치주의 실종
의과대학은 한 학기에 수십 과목을 수학하고, 한 과목이라도 낙제하면 1년을 통째로 쉬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본과 1학년 2학기에 생화학에서 낙제를 받으면, 다음 해 1학기까지 쉬고 2학기에 아래 학년 학생들과 다시 수업을 들은 뒤 이를 통과해야 한다. 의대의 이러한 전통은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학문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모든 과목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한 과목도 허투루 배울 수 없다는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친한 내 친구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인지 유급을 많이 당했다. 예과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6명의 그룹이 있었는데, 본과 4학년이 돼보니 나 혼자 살아남았다. 유급당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기도 했다. 어느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F 학점을 받은 학생이 칼을 들고 연구실에 찾아와서는 교수님이 F 학점을 취소시켜주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자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자네 같은 학생이 의사가 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하는 것 보다 지금 내 앞에서 죽는 게 낫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가 모두 웃으면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느 정도 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수라면 1년을 쉰 학생을 다음 학기로 진급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 몫을 하는 의사가 될 때까지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하는 것이 할 일이고, 그것이 의학교육의 본질일 것이다.
그런데 의대생들의 휴학을 막고, 6년 과정을 5년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교육부와 정부의 역할이며 그들의 본질일까. 애초에 학생이 휴학한다는 것을 막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가. 사직은 헌법상의 권리가 아닌가. 이 나라는 법치주의가 지켜지고 있는가. 나는 교수라는 직함이 부끄럽고, 웃기고, 서글프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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