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기] ㉘베어스 & KBO 구단별 최다 4사구 이야기

“누가 뭐래도 내 야구 지론은 많이 살아나가고 덜 죽는 것입니다.”
여전히 KBO 개인통산 볼넷과 4사구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는 ‘양신’ 양준혁이 한 말이다.
흔히 ‘타율 3할은 예술의 경지’라고 한다. 야구에 ‘안타’와 ‘아웃’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만 존재한다면, 타자가 3할의 타율을 올리기 위해선 7할의 아웃카운트를 대가로 지불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3할 이하의 타율이라면 그 대가는 더 커진다.
그러나 타자가 1루에 살아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꼭 안타만 있는 게 아니다. 볼넷(4구)과 몸에 맞는 공(사구)이 존재한다.
양준혁이 활약하던 시대엔 안타에 비해 4사구가 덜 주목 받았지만, 데이터 혁명이 일어나고 세이버메트릭스가 각광받는 현대야구에서는 출루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지표로 대접받고 있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많이 살아나가고 덜 죽기’ 위해 안타 못지 않게 중요한 볼넷(Base on balls)과 몸에 맞는 공(Hit by pitch)에 대해 살펴본다. 베어스 및 KBO 각 팀 프랜차이즈 4사구의 기록과 역사 이야기다.

◆KBO 최초 볼넷과 사구 주인공은?
KBO 4사구 역사의 뿌리를 찾으려면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82년 3월 27일 삼성 라이온즈-MBC 청룡의 원년 개막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퀴즈 하나.
선공을 펼친 삼성이 아니라 후공의 MBC에서 주인공이 나왔다. 정답은 송영운이다.
MBC가 0-2로 뒤진 1회말 역사적인 첫 공격을 시작했다. 1번타자 김인식은 삼성 선발투수 황규봉(작고)을 상대로 2구 만에 우익수플라이로 물러났다.
이어 타석에 등장한 2번타자 송영운(작고). 연속 3개의 볼이 들어오고 4구째 몸쪽으로 트라이크가 꽂혔다. 하지만 5구째 공이 비슷한 코스로 파고들었지만 볼로 선언됐고, 송영운은 1루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이렇게 황규봉은 KBO 최초로 볼넷을 허용한 투수, 송영운은 KBO 최초로 볼넷을 얻어낸 타자로 기록됐다.

삼성은 이날 볼넷 3개를 얻었지만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선수는 없었다. MBC 청룡은 2명의 선수가 몸에 공을 맞고 출루했다.
그중 최초의 사구를 기록한 선수는 MBC 6번타자로 선발출장한 이종도. 7-7 동점으로 진행되던 9회말에 1호 사구가 나왔다.
1사 후 5번타자 백인천이 먼저 볼넷을 골라 나갔다. 타석에는 이종도. 상대 좌완투수 이선희의 초구에 발을 맞았다. 몸쪽 슬라이더가 급격하게 꺾이면서 우타자인 이종도의 오른발 엄지발가락 위 스파이크를 때린 것. 이종도는 1루까지 달려간 뒤에야 오른손으로 발가락 부위를 만지며 통증을 참아냈다. 하지만 MBC는 9회말 계속된 1사 1·2루, 2사 만루 찬스까지 잡고도 끝내기 득점에 실패했다.
한편 이날 두 번째 사구를 기록한 선수는 1번타자 김인식이었다. 연장 10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이선희의 2구째에 엉덩이를 맞고 출루하면서 대역전 드라마의 씨앗을 뿌렸다. 이어진 2사 만루에서 이종도가 역사적인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려 영웅이 됐다.

◆베어스 최초 볼넷과 사구 주인공은?
베어스 구단의 최초 경기는 1982년 3월 28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전. 이날 베어스의 다양한 최초 역사들이 만들어졌다.
정답은 ‘날다람쥐’ 김광수다.
1-1로 맞선 3회말 1사 후 타석에 들어선 2번타자 김광수는 MBC 선발투수인 잠수함 이광권을 상대로 연속 볼 4개를 골라내면서 1루로 달려나갔다. 베어스 구단 역사상 1호 볼넷은 이렇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장식됐다.
김광수는 이에 앞서 1회말 1사 후 중월 2루타로 베어스 역사상 1호 안타를 때려낸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베어스 최초 사구(몸에 맞는 공)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구천서다. 구천서의 이름을 안다면 1980년대부터 KBO리그를 봐 온 올드팬일 가능성이 크다.
구천서는 이날 OB 베어스 선발출장 명단에는 없었다. 9번 유격수로 선발출장한 유지훤이 5회말 실책을 저지르면서 2번타자 송영운 타석 때 구천서가 유격수 자리에 대수비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5-2로 앞선 6회초 1사 후 구천서의 첫 타석이 돌아왔다. 상대투수는 하기룡(작고). MBC의 원조 에이스였다. 볼카운트 2B-2S에서 연속 파울 2개를 치는 끈질긴 승부를 펼치다 7구째 공에 몸을 맞고 1루로 살아나갔다. 이것이 베어스 구단의 1호 사구로 기록됐다.
구천서는 동생 구재서와 함께 KBO 최초 쌍둥이 형제 선수로 원년부터 OB 베어스에서 함께 활약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베어스 프랜차이즈 4사구 이야기
두산 베어스는 김광수의 1호 볼넷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43년간 통산 1만8912개의 볼넷과 2760개의 사구를 적립했다.
베어스 프랜차이즈 선수 중 가장 많은 볼넷과 사구를 기록한 선수는 누구일까. 역대 기록을 집계한 결과 ‘두목곰’ 김동주가 두 부문 모두 1위에 올랐다.
김동주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1998년 1차지명으로 OB 베어스에 입단해 2013년 두산 베어스 선수로 은퇴할 때까지 16년 동안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그러면서 개인통산 814볼넷과 147사구로 두 부문에서 모두 가장 높은 위치에 이름을 남겼다.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합친 4사구(961개) 역시 단연 구단 역대 1위다.
볼넷 부문만 놓고 보면 현역 선수인 김재환이 680개로 역대 2위다. 김동주에 134개 차이로 다가섰다. 최근 2년간 기록한 볼넷수가 135개(2023년 72볼넷+2024년 63볼넷)라는 점에서 내년 시즌을 마치면 김동주를 넘어 구단 역대 최다 볼넷 선수로 도약할 수도 있다.

그 뒤로 김현수가 두산에서 597개의 볼넷을 얻어내 3위에 올라 있으며(KBO 통산 볼넷은 1014개), 베어스 한 팀에서만 활약하다 은퇴한 김재호(581볼넷)와 안경현(546볼넷)이 각각 4위와 5위에 포진해 있다. 6위인 정수빈도 현역 선수지만 현재 개인통산 볼넷은 543개여서 김동주를 넘어서기까지는 멀어 보인다.
개인통산 사구(몸에 맞는 볼) 부문에서는 구단 역대 2위가 허경민(137개)이지만 kt로 이적한 상황이라 김동주 기록이 당분간 유지될 듯하다. 현역 선수인 양의지는 KBO 개인통산 볼넷수를 놓고 보면 172개로 김동주를 넘어섰지만 베어스 구단 소속으로 119개, NC 구단 소속으로 53개를 기록했다.
현역 선수 중에는 정수빈이 볼넷에 이어 사구(80개)에서도 같은 자리인 6위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KBO 개인통산 최다 볼넷과 사구는?
KBO 역대 볼넷과 사구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올라 있는 선수는 대부분 강타자들이다. 선구안이 있기에 볼넷을 많이 골라내고 결국 높은 타율을 유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한편으로는 상대 투수가 두려워하는 존재이기에 몸쪽 승부의 빈도가 높고 이에 따라 사구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KBO 개인통산 볼넷 부문에서는 양준혁이 1278개로 여전히 1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2010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어 은퇴한 지도 어느덧 15년이 지났지만 후배들 중에 아직 이 기록을 깨지 못하고 있다.
2위 김태균 역시 은퇴선수. 선구안과 출루율을 바탕으로 정교함과 장타력을 갖춘 선수였지만 1141개의 볼넷으로 양준혁 기록에 137개 부족했다.

현역 선수 중에는 최형우가 1130개로 가장 많다. 역대 3위다. 최형우는 3년 정도 더 활약하면 양준혁의 통산 볼넷수를 넘을 수도 있다. 다만 1983년생으로 올해로 42세에 이르는 나이와 최근 해마다 볼넷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도전이기도 하다.
역대 4위는 장성호의 1101개이며, 현역 선수인 최정(1037볼넷)이 1037개, 김현수가 1014개로 각각 5위와 7위를 달리고 있다. 최정과 김현수는 앞으로 5년간 평균 50개씩의 볼넷을 기록한다면 양준혁의 기록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다.
KBO 역사에서는 박한이(1038볼넷)까지 총 7명이 1000개 이상의 볼넷을 골라냈다.

KBO 개인통산 사구 부문에서는 최정이 독보적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활약하면서 무려 328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이는 KBO 역사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MLB)와 일본프로야구(NPB)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기록이다.
MLB 개인통산 최다 사구 기록은 휴이 제닝스(1891∼1903년)의 287개다. NPB 개인통산 최다 사구 기록은 기요하라 가즈히로(1986∼2008년)의 196개다. 다시 말해 프로통산 300개 이상의 사구를 기록한 선수는 지구상에 최정밖에 없다.
KBO 역대 2위는 박석민의 212개로 최정과 100개 이상 차이가 난다. 3위는 나지완(181사구), 4위는 이대호(180사구)다. 현역 선수 중에는 양의지(172개)와 강민호(162개)가 각각 5위와 7위인데 공교롭게도 둘 다 포수다. 그 사이에 있는 6위 박경완도 포수 레전드다.
베어스 선수 중 최다 사구 기록 보유자인 김동주는 은퇴한 이성열과 함께 KBO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KBO 구단별 프랜차이즈 최다 4사구 선수는?
KBO 역대 12개 구단의 프랜차이즈 최다 볼넷과 사구 기록을 살펴보자.
삼성은 양준혁이 최다 볼넷(1278개) 1위이며, 김한수가 최다 사구(148개) 1위 주인공이다. 양준혁은 볼넷에서는 KBO 전체에서도 1위지만, 사구(102개)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KBO 개인통산 사구 부문에서 역대 39위다. 반대로 김한수는 의외로 볼넷이 많지 않다. 개인통산 341볼넷으로 순위권 한참 밖이다.
한화(빙그레 시절 포함)에서는 김태균이 볼넷(1038개), 장종훈이 사구(131개) 부문 1위에 포진해 있다. 김태균 역시 볼넷은 많이 고르지만 사구는 108개(KBO 32위)로 공에 많이 맞지는 않았다. SK에서는 최정이 볼넷(1037개)과 사구(348개) 모두 구단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KIA(해태 시절 포함) 구단 역사에서는 장성호가 볼넷(863개), 나지완이 사구(181개) 부문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장성호는 해태~KIA에서 14년간(1996~2009년) 활약한 뒤 한화~롯데~kt에서 6년(2010~2015년)을 더 뛰어 KBO 개인통산 1101볼넷(역대 4위)을 기록했다.

두산은 앞서 설명한 대로 김동주가 볼넷(814개)과 사구(147개) 모두 1위이며, 롯데에서는 손아섭이 볼넷(800개), 이대호가 사구(180개) 부문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LG에서는 박용택이 볼넷(793개), 채은성이 사구(100개) 1위다.
박용택(통산 2505안타)과 이대호(2199안타, 745볼넷)는 양준혁이나 김태균과 달리 적극적인 타격을 하면서 통산볼넷은 1000개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둘 다 700개대다.
KBO리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쌍방울에서는 ‘보스’ 김기태가 볼넷(647개), ‘철인’ 최태원이 사구(60개) 부문에서 역사를 남겼다.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현대(삼미~청보~태평양)에서는 이숭용이 볼넷(626개)과 사구(105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에 창단한 팀 중 히어로즈에서는 박병호(614볼넷, 98볼넷), NC에서는 박민우(502볼넷, 113사구), kt에서는 박경수(445볼넷, 51사구)가 프랜차이즈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4사구의 시작과 변천사
타자가 한 타석에서 볼 4개를 얻으면 자동적으로 1루에 출루하는 규칙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136년째에 접어든다.
메이저리그에서 ‘베이스 온 볼스(Base on balls)’라고 명명된 이 규칙은 원래 볼 4개가 기준점이 아니었다. 1876년부터 볼 9개일 때 타자에게 1루까지 자동출루권이 주어졌다. 이후 1880년에 8개로 줄고, 그것이 다듬고 다듬어져 1889년에 오늘날과 같은 볼 4개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포볼(four-ball)’, 우리나라에서는 ‘볼넷’이라고 직관적인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포볼이라는 용어가 없다. ‘베이스 온 볼스(BB)’다. 이는 볼 4개가 아니라 볼 9개부터 타자에게 1루 자동출루권이 주어지는 규칙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볼넷은 ‘걸어나간다’는 뜻으로 ‘워크(walk)’로도 불리며, ‘공짜티켓’, ‘공짜 여행’ 등의 의미를 담아 ‘프리 티켓(free ticket)’, ‘프리 패스(free pass)’, ‘프리 트립(free trip)’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의 내셔널리그 기준으로 볼 때 ‘베이스 온 볼스’의 볼 개수 변천은 다음과 같다.

야구에서 타자가 투수의 투구에 맞을 때 1루 자동출루권이 주어지는 것을 ‘히트 바이 피치(Hit by pitch)’ 또는 ‘히트 바이 피치드 볼(Hit by pitched ball)’이라 부른다. 줄여서 HBP라고 한다.
HBP 규칙이 처음 시행된 해는 1884년이다. 그 이전엔 타자의 몸에 맞는 공이 나와도 볼과 같이 취급했다. 그런데 투수들이 타자를 홈플레이트에서 멀찍이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몸에 공을 던지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그러자 1884년부터 타자가 몸에 맞으면 자동으로 1루 진출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의 대항마였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서 먼저 이 규칙을 시행했다.
하지만 당시엔 심판의 판단에 따라 1루 진출권이 부여됐다. 투수가 고의로 타자 몸을 맞혔는지 여부가 판단의 핵심이었다.
이듬해인 1885년부터 심판의 재량과 상관없이 타자가 투구에 맞으면(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을 일부러 맞거나 타격하는 과정에서 맞을 때는 제외) 자동적으로 출루하는 규칙이 시행됐고, 1887년 내셔널리그도 이 규칙을 채택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영국이 낳은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 등장하는 명대사다.
하지만 이는 비단 연극 무대에서만 이루어지는 독백이 아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오늘날 야구라는 무대에서 매우 중요하게 적용되는 경구다.
타자가 살기 위해서는 안타를 치는 게 가장 화끈한 방법이지만, 실속을 따진다면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는 것도 안타와 다를 바 없다.
양준혁이 “누가 뭐래도 내 야구 지론은 많이 살아나가고 덜 죽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볼넷과 사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